일본 정부의 핵심소재 수출규제 조치가 애플의 차세대 아이폰 출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들이 애플에 공급하는 메모리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가격인상을 검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1일 증권가와 국내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최근 반도체 단가인상을 염두에 두고 메모리 반도체(D램, 낸드플래시) 생산라인에 대한 가동률 조정에 돌입했다.
이는 일본 정부의 핵심소재 수출규제 조치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수요가 증가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
실제로 최근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은 반도체 재고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구매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의 수출규제가 국내 메모리 반도체 생산에 끼치는 실제 영향과 관계없이 수요자의 심리적 불안감을 자극, 수요자들이 향후 규제 영향에 대비해 일단 재고를 늘리는 방향으로 구매 전략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지난 9일 D램 익스체인지 기준 D램 현물가격이 1년 7개월 만에 처음으로 상승했다. 전체 D램 수요가 개선되고 있다”고 전했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시장의 수요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예컨대 반도체 초호황기로 평가받는 2017년과 2018년에는 페이스북, 아마존, 구글, 텐센트, 알리바바 등의 글로벌 인터넷 업체들이 데이터센터에 대한 대규모 투자에 나서자 서버D램에 대한 수요확대로 서버D램 가격이 폭등한 바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일본의 핵심소재 수출규제 조치가 메모리 반도체 가격인상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수요둔화로 인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막대한 재고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처리할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보유한 메모리 반도체 재고가 10조원 이상인데 일본 수출규제 조치로 인해 헐값에 이를 처분하지 않아도 되는 호재를 맞았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5G 상용화로 인해 스마트폰에 채용되는 메모리 반도체 용량도 늘어나는 추세인 만큼 가격인상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디스플레이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전체 OLED 디스플레이 시장의 90%(삼성디스플레이 독점)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인해 OLED 생산물량이 줄어들게 되면 단가인상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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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애플은 중국의 BOE로부터 OLED 디스플레이를 공급받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BOE의 OLED 디스플레이가 품질과 수율 면에서 삼성디스플레이와 큰 격차를 보이고 있어 공급비중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전자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해 삼성전자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고, 삼성전자도 하반기 전략 스마트폰을 출시할 예정인 상황에서 애플에게 우호적인 조건으로 부품을 공급할 수는 없다”며 “애플이 최근 몇 년간 고가 아이폰 판매 전략을 고수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는데 올해는 일본 수출규제라는 또 다른 복병을 맞게 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