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겨냥한 초강력 규제 태풍 몰려온다

[이슈진단+] FATF 암호화폐 권고안 영향 진단(상)

컴퓨팅입력 :2019/06/20 15:01    수정: 2019/06/21 17:48

세계 암호화폐 산업이 '바람 앞 등불' 신세가 됐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와 각 지역 금융 규제 기관들이 초강력 규제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FATF가 준비하는 권고안은 암호화폐를 다루는 모든 업체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지디넷코리아는 2회에 걸쳐 FATF 권고안이 암호화폐 산업에 미칠 영향을 점검한다. [편집자 주]

세계 암호화폐 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초강력 태풍이 몰려온다. 태풍의 진원지는 FATF다. 'FATF발 태풍'은 거래소, 커스터디(수탁업체), 투자펀드를 포함해 암호화폐를 취급하는 모든 업체들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어서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FATF는 오는 21일 암호화폐 업체에도 기존 금융권에 준하는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하는 권고안을 확정하고, FATF표준으로 채택할 예정이다. 1천달러 이상 거래에 대해 암호화폐 취급업소가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정보를 모두 수집해야 한다는 게 권고안의 핵심이다.

FATF는 권고안이 실효성을 가지도록 각 지역 금융 기관이 '암호화폐 취급업소 등록제(또는 면허제)'를 실시하고, 문제가 되는 업체에 대해서는 사업 중지에 해당하는 강력한 제재를 내릴 수 있게 했다.

문제는 암호화폐 거래가 기본적으로 익명 디지털 지갑 주소(일종의 계좌)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암호화폐 취급업체가 FATF 요구대로 송·수신인 정보를 모두 파악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송신인은 서비스 가입 과정에서 고객신원확인(KYC)을 거쳐 알아 낼 수 있지만, 수신인은 지갑 주소만 가지고 알아내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FATF 지침을 준수하지 못하는 업체가 속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거래소를 포함해 암호화폐를 취급하는 모든 업체들이 FATF 권고안 발표와 각 지역 금융 당국의 규제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암호화폐 자금세탁방지가 강화되면서 산업에 먹구름이 드리웠다.(이미지=픽사베이)

FATF 따라 특금법 개정 추진..."제도화 아닌 강력한 제재 장치 될 것"

FATF 권고안 확정을 앞두고 우리나라에서도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금법)에 암호화폐 자금세탁방지 관련 내용을 포함하기 위한 입법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국회 계류중인 관련 법안 중 금융위원회와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의견이 가장 적극적으로 반영된 것은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특금법 개정안이다. 암호화폐 취급업체에 대한 신고제를 도입해 관리 감독한다는 게 개정안의 주요 골자다.

얼핏 정부가 암호화폐 산업을 제도권 안에 포함시키는 것으로 보이지만,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제도화라기 보다 강력한 '제재 장치' 마련에 가깝다.

신고 업무를 담당하는 FIU는 취급업체가 '정보보호 관리체계인증(ISMS)'을 획득하지 않았거나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을 이용하지 않을 경우 신고 수리를 거절할 수 있다. 또, 자금세탁방지나 테러자금지원방지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 신고를 말소할 수 있다. 신고를 하지 않고 영업하는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개정안대로라면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등 주요 4개 거래소를 제외하고 국내 존재하는 대다수 거래소가 신고 수리 요건을 갖추지 못해 영업할 수 없게 된다. 4대 거래소라고 안전한 것만은 아니다.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빌미를 잡혀 신고가 말소 되면, 역시 영업 활동이 불가능해 질 수 있다.

정부가 사실상 암호화폐 취급업소의 '생사여탈권'을 쥐게 되는 셈이다. 그동안 정부가 암호화폐에 대해선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 왔기 때문에, 업계는 특금법 개정안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한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대표는 "특금법이 통과되면 지금 법인계좌로 집금하는 거래소들은 셧다운해야 하고 4개 거래소도 여차하면 실명계좌 제공이 중단돼 사업을 못할 수도 있다"며 "생태계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특금법이 암호화폐 산업 제도화로 이어지려면 기업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공청회 한번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 부치고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금융위와 FIU는 암호화폐 산업을 규제하거나 또는 제도화하겠다는 어떤 의도도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금융위와 FIU 관계자는 "국제적으로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의무를 다하는 차원에서 특금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라며 "더 이상 해석을 확대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전세계 금융 당국 규제 강화 움직임..."20세기 규칙 21세기 적용"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유럽연합(EU), 일본도 FATF 권고에 따라 암호화폐 자금세탁방지를 위한 규제 마련에 나섰다.

미국 재무부 산하 금융 범죄 단속국 '핀센(FinCEN)'은 최근 공개한 30페이지 분량의 가이드라인을 통해 암호화폐 산업이 기존 자금세탁방지 및 테러자금지원방지 규제에 어떻게 적용 받는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EU는 지난해 5월 암호화폐 자금세탁방지에 대한 규정을 포함한 최신 자금세탁방지지침(5MLD)을 채택했다. 이에따라 EU 회원국들은 내년 1월까지 관련 입법을 완료해야 하는 상황이다. 영국 재무성도 5MLD를 준수하는 입법을 추진 중이다.

일본은 이미 2017년 4월부터 암호화폐 자금세탁방지를 위해 자금결제법상 '거래소 등록제'를 시행하고 있다. 최근엔 거래소의 보안 의무를 강화하는 법안도 통과시켰다.

FATF 지침을 필두로 세계 각국에서 암호화폐 규제가 강화되자, 업계에선 규제가 과도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술적으로 암호화폐 거래 당사자를 추적하는 일이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업체들이 규제를 맞추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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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렉스의 존 로스 규정 준수 및 윤리 담당자는 지난 12일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암호화폐 지갑 주소는 보통 익명이라 현재 암호화폐 거래소는 자금 수령자가 누구인지 알 방법이 없다"며"(권고안에 맞추려면) 근본적으로 블록체인 기술의 구조를 바꾸거나 전세계 200여 개 이상의 암호화폐 거래소가 병렬적으로 연결되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미국 암호화폐 거래소 크라켄의 메리 베스 뷰캐넌 고문 변호사는"완전히 이 규제를 준수할 기술적 해결책 없다"며 "(FATF가) 향상된 기술 없이 20세기 규칙을 21세기 기술에 적용하려고 하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