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정부가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중국 기업 화웨이에 대해 통신장비 판매와 사용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한지 곧 한달을 맞는다. 미국 내 구글 등 주요 IT기업들이 제재에 동참하자 5G 등 차세대 통신산업에서 승승장구하던 화웨이는 전례없던 위기에 직면했다. 유럽 등 세계 기업들도 이같은 제재에 동참하려하자 중국 정부는 이를 자국 산업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강경 대응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장기 국면이 예상되는 미·중 경제무역과 기술 패권 경쟁이 불러올 영향과 우리의 대응책을 핵심 부품, 스마트폰, 소프트웨어 분야 등 3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주]
미·중 무역갈등이 확전되면서 화웨이의 스마트폰 사업이 각국에서 봉쇄되고 있다. 미국이 화웨이를 거래제재 중단 리스트에 올리면서 스마트폰에 필요한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공급받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화웨이의 스마트폰 매출액 중 내수 시장 비중이 절반 이상에 달하는 만큼, 단기적으로는 해외 시장에서의 타격이 더 클 전망이다. 하지만 각국에서의 화웨이 제재가 장기전으로 이어질 경우 제품 경쟁력 저하로 내수 시장 사업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시장조사업체 캐널리스에 따르면, 지난 1분기 화웨이 스마트폰 출하량의 49% 이상이 중국 외 해외 지역으로 수출됐다. 화웨이가 지난해 부품 구매에 소비한 700억달러 중 110억달러는 거래가 중단된 퀄컴, 인텔, 마이크론과 거래한 비용이었다.
■스마트폰 두뇌 '칩셋' 거래중단…차세대 AP 개발도 타격
특히 화웨이는 미국 정부의 거래제한 조치로 스마트폰의 두뇌격인 칩셋 수급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화웨이 스마트폰 매출액 중 내수 시장 비중이 절반 이상에 달하는 만큼 단기적으로는 해외 시장에서의 타격이 더 크겠지만, 장기전으로 이어질 경우 제품 경쟁력 저하로 중국에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화웨이는 지난 달 미국 정부의 거래제한 조치로 스마트폰의 두뇌격인 칩셋 수급에 제동이 걸렸다. 화웨이는 지난 달 15일 미국의 제재기업 목록에 포함되면서 인텔, 퀄컴, 자일링스 등 미국 기업과의 거래가 중단됐다. 이후 지난 달 22일에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설계 라이선스를 보유한 ARM이 지원 중단에 동참했다.
화웨이는 이미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을 통해 AP, 무선통신(RF) 트랜시버, 전력관리반도체(PMIC) 등 주요 반도체 기술을 내재화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화웨이의 AP의 지역별 자급률은 60% 이상에 달한다. 화웨이는 칩셋의 점진적인 내재화를 위해 '1+1' 정책을 추진해왔다. 칩의 절반을 화웨이 하이실리콘에서 나머지 절반을 미국 기업의 제품을 사용하는 식이다.
하지만 화웨이 하이실리콘의 칩셋 역시 미국 기업들의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설계됐으며, ARM이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는 코어 칩 아키텍처가 사용된다. ARM의 기술에는 미국의 원천 기술이 다수 포함된다. 화웨이가 ARM의 차세대 아키텍처인 코어텍스 A-77을 사용하지 못할 경우 차세대 AP 공급이 어려워진다.
하이투자증권은 "ARM의 대안으로 RISC-V가 거론되고 있지만 온전히 대체하기는 무리일 것"이라며 "화웨이는 결국 성능이 떨어지는 구세대 AP로 스마트폰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할 것이고 스마트폰 사업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통사들도 화웨이 폰 출시 유보…사후지원 우려 확산
화웨이의 미래가 점차 불투명해지면서 미국 기업뿐 아니라 영국, 일본, 대만 등의 주요 이동통신사들도 화웨이 신규 스마트폰 출시를 유보하며 등을 돌리고 있다. 국내 이통사 역시 이 같은 흐름에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웨이 스마트폰의 사후지원 등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화웨이와 구글의 안드로이드 라이선스 중단 역시 스마트폰의 보안 패치 업그레이드에 영향을 미친다. 해외 사용자들의 경우 구글의 지메일, 유튜브, 크롬 등의 사용 빈도가 높기 때문에 구매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구글 플레이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이에 화웨이는 자체 OS인 훙멍을 개발하는 데 속도를 내는 한편, 러시아 통신업체 로스텔레콤이 개발하고 있는 모바일 OS 아브로라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그럼에도 해당 OS들에서 안드로이드 앱을 실행시킬 수 있도록 호환되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스마트폰을 구매하면 제품에 대한 사후지원, 보안 패치 업그레이드를 지원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경우 소비자들은 제품에 대한 문제를 이통사에 항의할 수밖에 없다"며 "이는 소비자의 계약 해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통사들이 화웨이 제품을 보이콧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 출하량 급감…中 내수 시장에서도 뒤처질 듯
이처럼 미국의 제재 여파가 지속될 경우, 당장 올해부터 화웨이의 스마트폰 출하량은 급격하게 감소할 전망이다. 이르면 오는 7월에 출시될 화웨이의 5G 폴더블 스마트폰 메이트 X의 출시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하반기에는 화웨이의 플래그십 스마트폰 메이트40 시리즈도 출시될 전망이었다.
화웨이는 올해 스마트폰 판매 목표를 2억5천만대 수준에서 전년 수준인 2억1천만대로 하향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는 화웨이의 올해 연간 출하량은 2억대선이 무너질 것으로 예측됐다. 점유율도 지난해 14.4%에서 올해 12.1%로 떨어지게 된다.
그러면서 경쟁사들과의 격차도 빠르게 벌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화웨이는 이르면 오는 4분기부터 세계 스마트폰 1위를 차지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지만 어렵게 됐다. 화웨이는 지난해 눈부신 성장세를 보이며 2위인 애플을 제치고 1위 삼성전자를 턱밑 추격했지만, 미국 제재가 지속되면 다시 3위로 내려앉을 것으로 분석됐다.
2020년에는 3강 업체간 점유율은 더욱 벌어질 전망이다. SA는 2020년 삼성전자가 24.5%(3억4천340만대), 애플은 13.7%(1억9천240만대), 화웨이는 9.2%(1억2천960만대)를 기록할 것으로 분석했다.
장기적으로는 중국 시장에서도 여타 내수 업체들의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SA에 따르면, 화웨이 스마트폰 중 800달러 이하의 모델의 비중은 절반을 넘는다. 부품 수급이 중단되면서 중저가 시장에서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전략을 취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삼성증권은 이번 제재로 인해 화웨이의 스마트폰 출하량이 내년에 올해 대비 2배 가량 줄어드는 반면, 중국의 주요 스마트폰 업체인 오포와 비보, 샤오미의 출하량은 올해 대비 내년에 5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기술 내재화 당장은 어려워…화웨이, 거래재개 의지 피력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업체들은 미국과의 무역갈등 여파로 반도체 등 핵심 기술 내재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는 중국 산업 발전을 촉진시킬 수는 있지만 당장 각 기업에 영향을 줄이는 것엔 무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는 중국이 미국 기술에 대한 접근 없이 자체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10년은 걸릴 것으로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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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는 미국 제재 초기에 자체 개발력으로 이 같은 상황을 극복할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거래 중단이 각국으로 확전되면서 거래 재개에 대한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화웨이가 자체 칩셋을 개발하는 것은 완전한 내재화를 위한 게 아니라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이다.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은 "미국 정부와 미국 기업들이 화웨이에 칩 공급을 할 수 있도록 한다면 대량으로 구매할 것이다. 미국 기업과 화웨이는 공생 관계"라며 "화웨이가 자체 칩셋을 만드는 목표는 다른 회사를 대체하고 폐쇄된 시스템을 만드는 게 아니라 미래 기술을 더 잘 이해하려는 것이며 미국 칩셋을 완전히 대체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