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업계의 지형이 변하고 있다. 대형 금융회사만 절대적 플레이어(Player)였다면, 최근에는 모바일과 기술 발전으로 핀테크가 새로운 플레이어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정부도 금융 생태계를 바꿔 누구나 질 좋은 금융서비스를 쓸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오픈뱅킹'이다. 은행이 보유했던 고객의 계좌·지급·결제 정보를 오픈 애플리케이션프로그래밍인터페이스(API)를 통해 그 은행만이 아닌 다른 은행과 핀테크도 공유할 수 있게 만들어 은행 간 경계를 낮춘다는 게 주 골자다.
예를 들어 우리은행 모바일 뱅킹 애플리케이션(앱)에서 KB국민은행이나 신한은행의 계좌 정보를 볼 수도 있고, 핀테크 업체의 앱에서 자신이 보유한 은행 계좌 정보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우리금융경영연구소에서 만난 전상욱 연구본부장은 오픈뱅킹은 기존에 볼 수 없었던 금융 서비스 모델을 가져올 것이며, 은행이 핀테크에 역전될 수도 있는 위기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전상욱 본부장은 "오픈뱅킹은 오픈 API로 고객 데이터를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된다는 면이 중요하다"며 "1단계는 계좌 조회 단계에서는 은행의 구분이 필요없어지는 것이고, 나아가 송금과 이체와 같은 지급·결제 데이터도 공유하고 이동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오픈뱅킹 체제에서는 계좌 조회·송금·이체·온라인 쇼핑 결제 등에서 내가 주로 거래하는 은행과 쓰는 모바일 앱이 달라도 금융 거래에 전혀 지장이 생기지 않게 된다. 월급을 우리은행 계좌로 받더라도 내 취향에 맞는 모바일 앱, 편한 앱을 선택해 쓰면되는 것이다.
모바일 금융 거래의 첫 관문은 결국 '선택받는 앱'이 돼야 한다. 전 본부장은 "고객 접점을 어떤 앱이 장악하느냐가 중요하다"면서 "내년부터 오픈뱅킹 본격 시행되기 전까지 '멍 때린다'면 선점하는 은행과 핀테크에 장악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은행이 아닌 핀테크가 오픈뱅킹의 고객 접점을 많이 확보할 경우, 은행의 지위도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 본부장은 "실제로 고객의 수요를 파악하고 개별 고객에게 맞는 상품을 설계하는 곳은 접점을 장악한 핀테크가 될 터인데 이 때 은행은 '우리 상품 싸게 줄테니까 팔아달라'고 하는 수동적인 기업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은행 입장에서 과연 우위에 누가 서서 협상을 하느냐, 은행이 갖고 있는 주도권을 잃지 않으면서 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며 "아직까진 고객 접점이 얕고 자본력이 떨어지는 핀테크에 은행이 투자하는 등 주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위 만큼이나 은행의 수익 구조도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전상욱 본부장은 "고객 접점 확보나 장악에 실패한 은행들은 예금을 만들 때도 많은 곳에 유통돼야 하니 조금이라도 높은 금리를 줘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것"이라며 "결국 이자로 돈을 벌어들이는 비즈니스는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수수료 수익은 얼마나 오픈뱅킹 체제라 하더라도 오픈API를 통해 금융데이터를 사용하는 업체들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상욱 본부장은 "오픈뱅킹서 뒤쳐지면 은행이 주도하는게 아니고 누군가가 주도하는 시장에 조금 싸게 품질 좋은 상품을 제공하는 것으로 전락하지만 돈을 적게 번다고 단언할 순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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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본부장은 금융산업이 국가 경제와 직결된 만큼 오픈뱅킹의 시행 속도는 조정될 수도 있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그는 "지급결제 시스템을 쉽게 결제하는 '편의성'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국가 경제 전체의 유동성과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파급 경로라는 점도 봐야 한다"면서 "일각에서 보수적인 의견을 내 오픈뱅킹의 속도가 조절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