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싸움을 위해 눈앞의 전투를 포기했다. 멀찍이 도망간 경쟁자를 따라잡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퀄컴과 분쟁을 끝낸 애플이 처한 상황이다. ‘5G 아이폰’이란 대의를 위해 얄미웠던 파트너의 손을 다시 잡았지만 올해 중 5G 아이폰을 내놓긴 힘들 전망이다.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은 때문이다.
애플과 퀄컴은 16일(현지시간) 2년 간 계속된 법정 소송을 일괄 타결하기로 합의했다. 6년 간의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재개하고, 애플이 퀄컴 칩을 다시 구매하는 등 종전 관계를 그대로 회복했다.
■ 모뎀 뿐 아니라 RF 칩 등 다른 부품도 최적화해야
물론 이번 합의의 핵심은 퀄컴의 5G 칩이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경쟁사들이 5G 폰을 앞다퉈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애플도 마냥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애플 입장에선 이번 합의로 5G 모뎀칩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많은 것을 양보했지만, 더 큰 승부를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애플은 언제쯤 5G 아이폰을 내놓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애플과 퀄컴 모두 뚜렷한 해답을 내놓지 않았다.
미국 씨넷에 따르면 애플은 5G 아이폰 출시 계획에 대해 언급을 피했다. 스티브 몰렌코프 퀄컴 최고경영자(CEO)는 “애플의 제품 계획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면 올해 중 5G 아이폰을 내놓는 건 힘들 전망이다. 미국 씨넷은 5G 아이폰 연내 출시가 힘든 이유를 몇 가지로 설명했다.
스마트폰에 모뎀을 탑재하는 것은 부품을 구매하는 것처럼 간단하지는 않다. 모뎀 연결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스마트폰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이 모뎀 제작사의 소프트웨어에 접속해서 작업해야 한다.
그 뿐 아니다. 기기 속도를 향상시키기 위해선 대용량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송수신할 수 있는 RF 칩을 비롯해 다른 부품도 최적화해야만 한다.
스마트폰 대량 생산하기 전에 모뎀 테스트 작업도 해야만 한다. 통신사들의 스마트폰 인증 작업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는 5G가 새로운 표준이란 점이다. 그러다보니 인증 및 테스트 작업이 4G LTE 때와는 다른 부분이 많다.
그 동안 애플은 아이폰 새모델 공개와 동시에 바로 판매에 들어갔다. 게다가 처음부터 대규모 물량을 쏟아내야만 한다.
테크어낼리시스 리서치의 밥 오도넬 애널리스트는 “애플이 가을에 아이폰을 출하하기 위해선 봄에 디자인 작업을 완벽하게 끝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모든 통신사업자를 대상으로 디자인, 테스트, 평가 작업을 끝내야만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과정이 통상 몇 개월 걸린다.
■ "내년 가을 출시 위해선 올 4월부터 5G 아이폰 착수해야"
애플은 그 동안 아이폰 새 모델을 9월에 출시해 왔다. 지금부터 5개월 남짓 남았다. 이 기간 동안 퀄컴 5G 칩을 탑재한 디자인을 완성하고, 통신망 테스트 및 인증작업까지 마무리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통상적으로 안드로이드 업체들은 새 모뎀 샘플을 받은 지 8개월 여 만에 새 스마트폰을 출시한다. 애플은 그보다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씨넷이 설명했다.
지난 1월 애플과 연방거래위원회(FTC) 소송 때 이 부분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당시 애플 물품조달을 담당하고 있는 토니 블레빈스 부사장은 “아이폰 첫 모델 출시 때는 2년 전에 모뎀을 받았다”고 밝혔다.
물론 지금은 그 때처럼 많은 시간은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하면 애플과 퀄컴이 지금 당장 공동 작업에 착수하더라도 빨라야 2020년 가을경에나 5G 아이폰을 내놓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카나코드 제뉴이티의 마이크 월크리 애널리스트는 씨넷과 인터뷰에서 “애플과 퀄컴이 2020년 9월에 5G 아이폰을 내놓기 위해선 4월부터 작업을 시작해야만 한다”고 전망했다.
올해 출시된 5G 폰들은 대부분 퀄컴 X50 모뎀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 모뎀은 5G 망만 연결할 수 있다. 따라서 4G, 3G 연결을 위한 별도 모뎀이 함께 필요하다. 그 뿐 아니다. 현재 나온 5G폰들은 특정 통신사에서만 5G를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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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는 퀄컴이 올 하반기에 내놓을 X55 칩이 출시될 이후에나 해결될 전망이다. 따라서 내년이 명실상부한 5G폰 경쟁 원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애플이 퀄컴과 분쟁을 서둘러 끝낸 것도 이런 로드맵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