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프린팅은 제조 혁신이나 4차 산업혁명 화두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차세대 기술이다. 우리 정부는 2019년 3D프린팅 선도국가 달성을 목표로 2014년부터 발전전략을 펼쳐왔으며, 문재인 정부 역시 과학기술 정책으로 3D프린팅을 포함한 ‘고부가가치 창출 미래형 신산업 발굴·육성’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목표 달성 시기가 1년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국내 3D프린팅 시장 규모와 기술력은 여전히 후발주자 수준에 그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올해 여러 산업 분야에서 3D프린팅 수요를 창출하는 과제부터 3D프린터 구매 기업에 대한 세제 지원책 등을 내놓은 가운데 업계 전문가들은 3D프린팅 수익모델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기업들이 수익모델을 발견할 때 산업 현장에 3D프린팅 도입부터 전문 인력 양성까지 3D프린팅 산업 전 요소가 자연스럽게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올해 3년차 맞은 3D프린팅 산업 육성책
우리 정부의 3D프린팅 산업 육성 노력은 2014년부터 본격 시작됐다. 그해 관계부처가 함께 3D프린팅 산업 발전전략을 수립한 후 2015년 말 3D프린팅 산업진흥법이 제정됐다. 이 법에 따라 1년 뒤 4대 추진전략(수요 창출, 기술 경쟁력 강화, 산업 확산 기반 강화, 산업 육성제도 강화)과 12개 정책과제로 구성된 ‘3D프린팅 산업 진흥 기본계획(2017~2019)’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도 이 기본계획에 근거한 3D프린팅 산업 진흥 정책을 시행 중이다.
3D프린팅 산업 진흥 기본계획의 목표는 ‘2019년 글로벌 3D프린팅 선도국가 도약’이다. 구체적으로 ▲장비, 소재, 소프트웨어 분야 등 글로벌 선도 기업 육성(2015년 1개→2019년 5개) ▲글로벌 시장 점유율 제고(2015년 4.0%→2019년 6.0%) ▲국내외 특허출원 등 독자기술력 확보(2015년 9.9%→2019년 20%) 등의 성과를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이에 4대 추진전략 하에 ▲융합형 비즈니스 모델 발굴 및 시범사업 추진 ▲시장 확산을 위한 선도 사업 추진 ▲주력산업 제조분야의 수요창출 추진 ▲차세대 핵심 분야 기술개발 지원 ▲제조혁신 기술개발 지원 ▲3D프린팅 기술표준 선도 ▲3D프린팅 산업인프라 고도화 ▲3D프린팅 전문기업 육성 ▲3D프린팅 전문 인력 양성 및 현장형 교육 강화 ▲3D프린팅 장비 등 신뢰성 기반 마련 ▲산업육성을 위한 정책기반 강화 ▲안전한 이용환경 조성 등 12개 정책과제를 마련해 추진해왔다.
■ 3D프린팅 ‘시장규모·기술수준’ 여전히 후발주자
국내 3D프린팅 업계에서는 현재 우리나라 3D프린팅 시장 규모나 기술력이 여전히 후발주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2017년 세계 3D프린팅 시장에서 국내 비중은 4.1%로 8위에 그친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에 따르면 국내 3D프린팅 기술력은 미국의 78.3% 수준으로 3.3년의 기술 격차를 두고 있다. 지난해 3D프린팅 기업 수는 351개로 전년 대비 16.2% 늘었지만 직원 수가 10인 미만인 기업 비율이 68.1%(239개), 연매출이 10억원 미만인 기업 비율도 82.3%(289개)나 된다.
기본계획에서 제시된 올해 3D프린팅 선도국가 달성과 세계 시장점유율 6.0% 차지, 글로벌 선도 기업 5개 육성 목표와는 거리가 먼 상황이다.
안기찬 정보통신기획평가원 수석은 “3D프린팅 산업을 우리 제조업의 성장수단으로 육성하는게 필요하나 선택과 집중을 통한 육성 지원이 필요하다”며 “3D프린팅 산업 활성화를 위해 하드웨어 제작을 위한 기술 개발 및 시장 선점도 중요하나 3D 프린터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기 위해서는 아이디어를 이미지화하고, 3D 데이터를 오차 없이 전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기술 개발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국방 소프트웨어 기술개발을 지원해 2012년 98%에 달했던 외산 의존도를 2016년 90%로 낮춘 것처럼 3D프린팅 관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균형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안기찬 수석은 “단기적으로는 전문 인력 양성이 시급하며, 장기적 관점에서의 신소재 개발이 필요하다”며 “3D프린터 제조업체의 원료 매출이 전체의 약 20~30% 수준으로 기여도가 높은바 장비와 소재의 동시개발을 통해 기술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올해 3D프린팅 예산 593억원…‘수요·기술·확산’에 초점
정부는 올해 3D프린팅 산업 진흥 시행계획을 통해 올해 예산으로 전년 대비 16.8% 증가한 593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3D프린팅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3D프린팅 정책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가 주축이 돼 철도 분야와 국방, 발전, 의료, 항공, 자동차 등 9가지 주요 산업에서 일부 부품, 제품을 3D프린팅으로 제작하는 추진과제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 분야에만 전체 예산의 4분의 1 수준인 149억5천만원이 투입된다.
특히 산업부는 의료 3D프린팅 시장의 부가가치를 고려해 맞춤형 3D프린팅 의료기기를 시생산하고 임상, 사업화(인허가, 보험 적용 등)하는 실증지원체계 구축 과제를 시행할 계획이다. 투입 예산도 지난해 5억6천만원에서 52억원으로 크게 늘렸다.
제조 현장에 3D프린팅 전문 인력이 부족한 점을 고려해 26억8천만원을 들여 6개 대학과 협력해 석·박사 전문 인력을 60명 키우고 단기 전문성 강화교육도 운영하기로 했다. 이 과제 예산도 지난해 20억원에서 올해 26억8천만원으로 늘었다.
올해 새롭게 추진되는 과제도 있다. 업계 의견을 반영해 기업들이 최소 수억원에서 10억원 이상인 3D프린터 구매 시 세액 공제를 지원하는 ‘3D프린터 구매 기업의 세제 지원’을 비롯해 ▲소상공인 대상 3D프린팅 제품화 지원 ▲3D프린팅 서비스 이용하는 중소기업에 바우처 발급 ▲사업자 신고 등 규제 완화 등 8가지 과제가 올해 시행계획에 포함됐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국내 3D프린팅 업계 의견을 반영해 과제를 기획했다”며 “3D프린터 구매 시 세제 지원에 대해선 기업들이 직접 의견을 주기도 했다. 제도적 지원이 정부 역할인 만큼 규제 완화도 추진한다”고 말했다.
■ 3D프린팅 선도국가 도약 위한 해법, 결국 ‘수익모델 마련’
정부의 3D프린팅 발전 전략은 이제까지 수요 창출부터 인프라 확대, 인력 양성, 규제 개선 등 전 영역에 걸쳐 진행돼왔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정부 정책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3D프린팅 발전의 핵심은 결국 ‘수익모델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업들이 3D프린팅 활용을 결정할 만한 수익모델이 찾지 못한다면 시장, 기술력, 전문 인력, 인프라 등 제반 요소 모두 후발주자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진국 전자부품연구원 3D프린팅사업단장은 “국내 3D프린팅 산업이 가진 문제의 출발점은 구체적인 수익모델이 없다는 것”이라며 “기업들은 수익모델을 찾지 못하니 장비, 전문 인력 양성 등에 투자를 하지 않는다. 현재는 전문 인력을 필요로 하는 곳도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3D프린팅 업계에서는 실제로 수익모델을 최대한 빨리 찾을 수 있도록 정부가 수요 창출형 국책과제를 더 늘려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진다. 국책과제를 통해 자동차, 발전, 우주항공 등 규모가 큰 산업에서 3D프린팅을 활용한 사례들이 지속 쌓인다면 기업들이 3D프린터 도입과 관련 연구 개발에 적극 나설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강민철 3D프린팅연구조합 상임이사는 “현재 사업비는 (업계 수요에 비해) 너무 적다. 뿌리산업 쪽에서 (3D프린팅 관련) 좋은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오지만 예산이 적으니 밀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3D프린팅 업계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부가 먼저 국책과제를 통해 3D프린팅을 활용한 애플리케이션(제품) 사례를 발굴하도록 지원해준다면 대기업들도 3D프린팅 도입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며 “과제에 참여해 포트폴리오를 확보한 기업은 국내외로 수익 창출할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수익모델을 찾을 수 없다는 지적도 따른다. 국내 3D프린팅 산업계가 형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수익모델을 발굴하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과 고민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내 산업계가 대기업 중심으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대다수 대기업들이 수익모델 모색에 의지가 없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결국 기업과 정부가 함께 산업 분야, 기업 사업 영역별로 적합한 수익모델을 꾸준히 연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신진국 단장도 “3D프린팅 강국으로 꼽히는 해외에선 30여년 가까이 3D프린팅에 대해 연구한 후 수익모델을 찾았다. 국내 업계는 연구한 기간이 짧다보니 경험이나 역량이 부족해 수익모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사실 3D프린팅 수요처인 국내 기업 의사결정권자들 의지도 부족하다. 국내외서 새로운 사례가 나오면 기술 시도나 수익성을 고민해야 하지만 제대로 하고 있는 곳이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준화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3D프린팅 수요자인 기업의 경영진과 실무자, 일반국민 3D프린팅에 대해 적극적·긍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3D프린팅산업 진흥법 내 3D프린팅 산업 활성화 및 이용화경 조성을 위한 정부의 활동에 3D프린팅 인식 개선·확산 사업을 추가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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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역시 수익모델 창출 방안을 고민 중이다. 올해 말 3D프린팅 산업 진흥 기본계획(2020~2023년)을 수립하는 데 있어 수요 창출형 국책과제에 대한 업계 기대감이 높은 점을 고려한다는 입장이다. 산업부는 신 단장과 국내외에서 기존 공정 대신 3D프린팅을 활용해 부품, 완제품을 출력한 사례들을 모아 기업들이 수익모델 연구에 참고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국내 3D프린팅 시장을 키우는 것이 정부부처의 가장 중요한 과제인 만큼 수요 창출 방안에 대해 계속 고민 중”이라며 “업계에서 3D프린팅 도입 사례를 발굴할 수 있는 사업 확대를 요구하는 것도 알고 있다. 이 같은 민간 요구가 향후 정책에 더 잘 반영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