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은 대기업을 상대로 거래하는 때가 많습니다. 유명한 대기업과 거래를 하면 안정적이기도 하고, 또 거래했다는 사실을 마케팅으로 활용할 수도 있어 여러 모로 좋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상대방 상호를 보면 대기업의 이름을 쓰고는 있는 것 같은데 그 대기업 그룹에 속해 있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고, 그룹에서 가장 유명한 회사(예를 들면,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상식의 일종으로, 그리고 나를 알고 상대방을 알아야 한다는 거래의 기초상 대기업은 무엇인지, 계열회사란 무엇인지 알고 있으면 쓸데도 많고 좋은데요.
우리나라 모든 법에서 계열회사에 대한 정의는 공정거래법을 기본으로 하고 있고, 또 종종 ‘재벌'이라고 불리는 대규모기업집단 역시 공정거래법에서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계열회사의 정의가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회계나 세무적인 개념과 조금 다르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때가 있습니다.
회계적으로는 연결재무제표를 쓰는 회사, 즉 보통 지분율 50% 이상인 회사를 우리 회사의 계열회사로 인식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 기준은 물론, 지분율 50% 이상이면 주주총회에서 그 회사 마음대로 임원을 변경하거나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예전부터 우리나라의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회장님 말씀'이나 ‘오너'들의 한 마디는 그들의 지분율과 상관없이 모회사와 관련되어 있는 많은 회사들의 경영상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쳐 왔죠.
그래서 공정거래법은 이렇게 규정하게 됩니다.
“동일인이 사실상 그 사업내용을 지배하는 회사들은 하나의 기업집단으로 묶는다.”
여기서 ‘동일인'이란 쉽게 떠오르는 ‘같은 사람'이라는 그 뜻이 맞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같은 한 사람이 사실상 사업상의 결정을 하는 여러 회사가 있다면 그 회사들은 하나의 기업집단으로 묶어서 본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원래 일반 명사였던 ‘동일인'이 마치 고유명사처럼 쓰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어떤 기업집단(그룹)의 ‘동일인'이 누구냐? 이렇게 물어보게 된 것이죠. 보통 ‘총수’나 ‘오너'라고 불리는 기업집단의 최고 의사 결정자를 법적으로는 ‘동일인'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입니다.
결국 쉽게 말해 총수가 같은 여러 회사들, 같은 회장님을 모시는(?) 회사들은 같은 기업집단에 속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법입니다. 물론 미국이나 유럽의 회사법에는 없는 개념입니다. 어떤 한 사람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우리나라의 현실을 반영하다보니 이런 법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중에서 특별히 큰 그룹은 ‘대규모기업집단'으로 지정해서 특별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규모기업집단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소속 회사들의 자산총액이 5조원이 넘는 그룹은 ‘공시대상기업집단'이고, 또 그 중에서도 자산총액이 10조원 이상인 그룹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라고 합니다. 2018년 기준으로 공시대상기업집단은 60개, 뒤의 것은 그 중 31개 그룹이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런 큰 기업집단들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매년 공개하기 때문에 기사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https://bit.ly/2S4qSiF). 이제 이 기사의 표에서 왜 ‘동일인'이라는 표현이 쓰이고 있는지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어쨌든, 우리나라에서 상대방 회사의 임직원이 어떤 기업집단에 속하는지, 다른 회사와 같은 기업집단에 속하는지 알아보는 방법은 쉽습니다. 이렇게 물어보면 됩니다.
“귀사는 회장님이 누구세요?” 대답이 같다면, 빙고~ 서로 계열회사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같은 기업집단에 속하는 계열회사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1.계열회사 사이의 주요 거래에 대해서 금융감독원 사이트(http://dart.fss.or.kr/)에 공시를 해야 합니다 (5조원 이상).
2.계열회사 사이에 서로 출자를 하거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순환출자를 하거나, 채무보증을 하면 안됩니다 (10조원 이상).
3.특히, 계열회사 사이에서 거래를 할 때 서로 특정회사에게 너무 유리한 조건으로 밀어주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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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규정들은 우리나라가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에 대기업들이 너무 계열회사들 사이에서 서로 밀어주는 소위 ‘선단식 경영'으로 IMF 구제금융 사태를 초래했다는 반성적 고려 하에 만들어졌습니다. 요즘도 경제 민주화라는 구호 아래에서 점점 강화되고 있기도 합니다.
대기업과 거래하는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라면, 상대방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안다는 의미에서도 이런 공정거래법상 계열회사나 대규모기업집단의 개념은 기본적으로 알고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