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내 클라우드 시장 확대에 맞춰 기술과 서비스 산업 발전을 꾀하고 있지만, 지금의 규율 체계로는 그런 기대를 실현할 수 없다는 시각이 있다. 군소 한국업체보다 해외 대형 클라우드 제공 업체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인터넷 망 접속료 산정 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다.
한국호스팅도메인협회 김병철 이사가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정부가 진흥법으로 국내 클라우드서비스 업체의 수요를 촉진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고가의 네트워크 비용 부담을 감수하게 하는 제도가 그 효과를 상쇄해 버린다는 견해를 폈다.
김 이사는 "정부가 상호접속고시를 개정하면서 국내외 사업자간 망이용대가를 차별하는 문제가 불거졌다"고 말했다. 차별은 어떻게 발생할까. 말 그대로 같은 서비스를 다른 가격에 제공한다는 의미다. 그는 특히 국외 대형 업체들이 무료 또는 훨씬 저렴한 수준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전용회선 사용시, 트래픽에 따라 발생하는 접속료를 오히려 규모가 작은 국내 업체가 비싸게 무는 일이 벌어져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발생한 차별 사례 하나를 소개했다. 지난 2017년 국내 한 기간통신사업자 A사는 국내 한 클라우드서비스 제공업체 B사를 대상으로 40기가(G) 및 100G 전용회선 가격정책을 설명했다. 당시 A사는 B사에 '망사업자간 인터넷교환국(IX) 접속료 정산이 시작돼, A사로부터 타사업자(기간통신사업자 C·D사) 망으로 향하는 트래픽에 G당 월 500만원 가량의 접속료가 발생한다'고 안내했다.
김 이사는 "B사는 A사로부터 G당 접속료를 500만원으로 책정받았지만, 글로벌 업체인 아마존은 G당 100만원으로, 구글은 무료로 적용받았다"면서, 접속료가 A사의 사업 규모나 수익성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지를 논외로 하더라도 실제로 차별적인 비용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A사보다 이전에 한국에서 콘텐츠서비스를 운영하던 E사 역시 같은 피해를 본 사례라고 덧붙였다.
E사는 십여년전 미국에서 시작된 인터넷방송 스트리밍서비스 업체다. 2012년부터 한국 법인을 두고 국내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2014년말 갑자기 한국사업 운영을 중단하고 국내 시장에서 철수했다. 김 이사는 E사 한국 법인이 앞서 언급된 국내 기간통신사업자 C사와 일본 대형 인터넷업체 투자까지 받아 서비스를 시작했음에도, 다른 업체들처럼 "비싼 회선료 때문에 국내 사업을 포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이사는 E사와 별개로 '틱톡'같은 영상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기 전 회선비용을 컨설팅해 줬던 일화도 설명했다. 그는 "그들의 영상서비스 사업에 40G 회선 20개가 적정할 것이라 보고 A사로부터 견적을 받았는데, 발생할 비용이 월 2억원 정도 들 것이라는 답이 왔다"며 "결국 국내서는 운영이 불가능할 것이 확연해, 포기를 권했다"고 말했다.
국내외 클라우드사업자, 콘텐츠사업자가 통신사업자로부터 차별적인 망이용대가를 적용받는 이유가 뭘까. 김 이사는 앞서 언급한 '상호접속고시'를 근본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가 지적한 제도는 지난 2014년 11월 당시 미래창조과학부가 개정해 2016년 1월부터 시행한 '전기통신설비의 상호접속기준' 고시다. 고시 제3장 '인터넷망 상호접속'의 제4절 '접속료'에 규정된 '접속통신료'와 '접속회선비용' 내용이 핵심이다.
고시는 인터넷 접속을 제공하고 이용하는 여러 사업자간 '접속조건'을 직접 정의하고 사업자별 계위(tier)를 가려 서로 비용을 물게 했다. 계위는 사업자의 통신망 규모, 가입자 수, 트래픽 교환비율로 평가되고, 사업자간 정산방식은 양쪽의 계위가 같은가 다른가에 따라 나뉜다. 사업자간 계위가 같으면 트래픽을 보낸 쪽이 그걸 받은 쪽에 돈을 낸다. 그런데 계위가 다르면 낮은 쪽이 높은 쪽에 돈을 낸다.
고시에 따라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3사는 '1계위'다. 가장 높다. 드림라인, 세종텔레콤, 온세텔레콤은 '2계위'로 그 다음이다. 1계위와 2계위에 들지 못하는 유선방송사업자, 자체 데이터센터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네이버나 호스팅을 제공하는 클라우드업체 등을 '3계위'로 볼 수 있다. 3계위 사업자는 콘텐츠나 호스팅 서비스가 인기를 끌어 트래픽이 많이 발생할수록 그에 비례해 많은 접속료를 내야 한다.
공식적으로 글로벌 사업자의 망 사용료가 공개된 적은 없다. 김 이사는 "1월말 페이스북과 SK텔레콤이 망 사용료 협상 타결시켰다는 소식이 나왔던데, 양사간 (트래픽 발생에 따른 접속료는) G당 100만원, 어쩌면 50만원 수준으로 짐작한다"며 "국내 사업자로부터는 G당 500만원씩 받고 구글 유튜브나 페이스북같은 글로벌 사업자에게는 더 저렴한 접속료를 받게 하는 제도적 근거도 상호접속고시다"라고 주장했다.
글로벌 사업자의 비용이 저렴해 보이는 이유도 있긴 있다. 이들은 한국 통신사업자 인프라에 '캐시서버'를 구축한다. 글로벌 사업자는 국내 캐시서버에 한국의 인기 콘텐츠를 두고 이용이 뜸한 콘텐츠만 해외에서 가져올 수 있게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캐시서버를 유치한 통신사는 글로벌 서비스 이용자가 발생시키는 해외 트래픽 부담을 줄였고, 캐시서버를 제공한 글로벌 업체는 국내 망사용료를 아꼈다.
그는 현행 상호접속고시로 만들어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고시가 시행된 2016년 이래로 국내 클라우드사업자, 콘텐츠사업자가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해외 사업자보다도 많은 접속료를 치르는 건 부당하다는 생각이다. 하지 못하면 정부가 클라우드발전법을 통해 추진 중인 국내 클라우드 시장 발전과 한국 ICT기업의 해외진출 정책도 실패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올해부터 2021년까지 추진하는 제2차 '클라우드컴퓨팅 발전 기본계획'은 세계 클라우드시장에서 아마존웹서비스(AWS)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기업이 클라우드에 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을 융합해 경쟁력과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반면 국내선 글로벌 기업의 한국 진입 확대와 시장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김 이사는 "아무리 클라우드발전법이 제정돼 있고 발전 기본계획이 추진되고 있다더라도 이미 지금의 접속비용 산정 근거는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작용하고 있어 제 역할을 할지 의문"이라면서 "정부가 상호접속고시를 개정해 '강한 망중립성'을 확보하는 방안이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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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이사는 강한 망중립성을 실현하기 위한 상호접속고시 개정 방향을 6가지 요구사항으로 제시했다. 먼저 "국내에서 망을 운영하는 모든 통신사는 타 통신사가 인터넷 데이터망 연동을 거부할 수 없고, 망연동시 상호 평등한 물리적 비용 분담을 원칙으로 삼아야 하며, 정부가 그 비용을 고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모든 통신사는 데이터 교환 내역, 전송량 관련 별도 비용정산을 요구할 수 없고, 인터넷데이터센터(IDC)업체는 이용자 통신회선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정부는 IDC 업체의 타사 회선 사용 기술지원 관련 비용을 고시하고, 중립적인 인터넷데이터익스체인지(IDX)를 구성해 1·2계위 사업자 연동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