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 없는 AI와 '호밀밭의 파수꾼'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공정한 플랫폼이란

데스크 칼럼입력 :2018/11/29 14:48    수정: 2018/11/29 15:12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호밀밭의 파수꾼’은 문학역사상 손꼽히는 고전이다. 1951년 첫 출간된 이 책은 세대를 뛰어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호밀밭의 파수꾼' 인기는 대단하다. 인터넷 교보문고 집계에 따르면 15년간 한 주도 빠지지 않고 팔린 유이한 고전 소설이다. (또 다른 작품은 미하엘 엔데의 ‘모모’다.)

잘 아는대로 ‘호밀밭의 파수꾼’은 16세 소년 홀든 콜필드의 방황을 다룬 책이다. 전형적인 성장소설이다. 주인공은 붕어빵 찍어내듯 획일적인 학교 교육에 저항한다. 그 과정에서 거침없는 말투와 반항아적 태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런 모습이 또래들에겐 시원한 느낌을 선사한다.

하지만 그건 표면적인 모습이다. 이 소설은 상처와 독립, 자유와 용기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혀진다. 진정한 어른이 되는 과정을 잘 묘사해주고 있다. 젊은 세대 뿐 아니라 기성세대들도 이 작품에 감동하는 건 그 때문이다.

'호밀밭의 파수꾼' 작가인 샐린저를 모델로 한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의 한 장면.

그렇다고 이 책이 긍정적인 담론만 만들어낸 건 아니다. 존 F 케네디, 존 레논 같은 저명인사 암살 사건 때마다 이 책이 거론됐다. 암살범들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가장 감동적인 작품으로 꼽은 때문이다. 1980년 존 레논을 암살했던 마크 채프먼은 “내가 바로 홀든 콜필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들이 왜 ‘호밀밭의 파수꾼’을 거론했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았다. 하지만 허위와 기만에 반항했던 콜필드에게 매료됐던 건 분명해 보인다. 다만 ‘허위와 기만에 대한 반항’이란 전체 메시지 중 ‘반항’에만 지나치게 무게를 뒀을 것이란 분석도 가능해 보인다.

왜 이런 해석을 하게 됐을까? 책 속에 있는 수많은 정보 중 자기 생각과 일치하는 것들만 선별적으로 받아들인 때문은 아닐까? ‘왜 반항하는지’엔 눈을 감은 채 ‘반항하는 행위’에 지나친 의미 부여를 한 때문은 아닐까?

혹자들은 이렇게 반문할 지도 모른다. “일탈 행위를 한 몇 명을 가지고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것 아니냐”고.

■ AI 플랫폼의 윤리와 투명성에 관심 갖는 이유는

인정한다. 과잉반응이자, 확대해석이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확대 해석을 하는 건 이 책 제목이 담고 있는 또 다른 메시지 때문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이란 책 제목을 설명해주는 구절을 직접 읽어보자.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민음사 번역판, 229~230쪽)

저 구절은 학교를 무단결근하고 방황하던 주인공 홀든이 여동생 피비와 만나는 장면에서 나오는 대사다. “좋아하는 것 한 가지만 말해봐”란 피비의 채근에 홀든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난 저 구절을 읽을 때마다 ‘플랫폼’이 오버랩된다. ‘건전한 질서 유지자’란 플랫폼 사업자의 책무을 연상하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요즘 화두로 떠오른 ‘인공지능(AI)의 윤리와 책무성’이란 또 다른 주제도 연상된다.

인공지능(AI)의 판단 근거, 과정, 결과가 투명성을 갖추고 사람들에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요구가 형성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AI 경쟁력의 핵심은 ‘풍부한 데이터’란 게 지배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데이터 편향’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한쪽으로 치우친 데이터는 오히려 AI 경쟁력에도 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형법상의 ‘독수독과’이론과 통한다.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MS)는 AI의 윤리를 강조한다. IBM은 ‘투명성과 신뢰’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설명 가능한 AI’는 그 바탕을 이루는 개념이다.

케케묵은 고전인 ’호밀밭의 파수꾼’이 21세기 최첨단 기술인 AI에 던지는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다. AI 플랫폼 역시 출발점은 ‘호밀밭의 파수꾼’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 다만 그 때도 편견 없는 데이터 리터러시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는 것이다.

지디넷코리아 주최로 12월 12일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리는 ATS 2018의 주제는 ‘AI, 이젠 플랫폼’이다. 그 중 중요한 개념이 AI 플랫폼의 투명성과 신뢰성이다. 어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그 출발점이 될 지도 모르겠다. (☞ ATS 2018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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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요즘 '호밀밭의 파수꾼' 저자인 J. D 샐린저를 다룬 '호밀밭의 반항아'란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이 영화는 은둔의 삶을 살았던 샐린저를 잘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호밀밭의 파수꾼' 팬이라면 한번쯤 볼만한 영화다. 좀 오래된 영화이긴 하지만 '파인딩 포레스터'도 샐린저의 삶에서 모티브를 가져 왔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