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韓 헬스케어산업, 도전만 하다 끝날까 두렵다

데이터 활용·의료수가 문제 산적...정부 정책지원 마련돼야

기자수첩입력 :2018/11/23 14:15    수정: 2018/11/23 15:06

요즘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폐암, 유방암, 성조숙증, 치매 등 질환을 빠르고 정확하게 진단하거나 효과적으로 치료하도록 도와주는 토종 소프트웨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같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루닛, 뷰노, 뉴로핏, 제이엘케이인스펙션, 코어라인소프트 등 기업들은 연혁이 평균 5년 내외인 스타트업들이지만 기술력은 세계적 수준으로 꼽힌다.

해당 회사들 외에도 디지털 헬스케어업계에는 새로운 시도를 준비하는 기업들이 많다. 이들의 공통적인 목표는 기술로 환자들에게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기업들은 장밋빛 전망을 품고 시장에 나서고 있지만 국내 시장에 대한 우려도 깊다.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의 원천인 데이터 활용과 수익으로 직결되는 의료수가 책정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업계에서 가장 유망한 분야로 꼽히는 AI 헬스케어 분야는 특히 데이터가 생명이다. 미국, 일본, 중국 등 다른 나라들은 이점을 알고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고 데이터 활용을 열어놓고 있다. 후발주자인 중국기업들은 정부가 돈과 데이터를 쏟아 부으면서 기술 추격 속도가 무시무시하다는 평도 나온다.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인정보 보호 및 활용 당정협의가 진행됐다.(사진=뉴스1)

지금까지 국내에선 개인을 특정할 수 없는 비식별화된 정보라도 사전 동의 없이는 활용이 어렵고 비식별 정보 개념도 모호했다. 이렇다 보니 공공데이터나 오픈데이터, 임상 연구 등을 협력하는 병의원의 익명화된 데이터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제한된다. 문제는 이 정도만으로도 사회적 시선이 좋지 않아 새로운 시도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취재 때마다 “익명화된 진단 결과 데이터만 활용해도 개인정보를 사용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업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시선 자체도 일단 부정적”이라는 하소연이 곳곳에서 나오는 배경이다.

또 다른 문제인 의료수가에는 기업 경영의 지속성이 걸려있다. 기업이 더 좋은 제품, 서비스를 시장에 내놓으려면 무엇보다 돈을 벌어야 한다.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의 상당수는 일반 소비자가 아닌 병의원이 고객이다. 의료수가가 적용되지 않은 제품은 병원에서 굳이 돈을 들여 구매할 이유가 없다.

기업 입장에선 의료수가가 필수적이지만 책정 여부를 결정하는 정부부처는 산업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것이 업계 지적이다. 기술의 우수성, 혁신성보다 얼마나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는지, 유사 사례 유무 등을 기준으로 의료수가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많은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들이 의료수가 문턱에서 좌절하고 사업 모델을 포기한다.

업계는 정부가 디지털 헬스케어라는 신산업 특성에 제대로 공부하고 활성화 정책을 마련해주길 바란다. 나아가 개인정보 활용에 민감한 시민단체 역시 무작정 반대하기 보다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의료비용도 줄이는 방향으로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이 클 수 있도록 함께 제도를 고민해달라는 부탁이다.

마침 최근 국회에서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는 가명정보 개념을 도입한 개인정보 관련 법률 개정안을 내놨다. 개정안이 국회 통과되면 적절한 안전조치를 따른 가명정보는 사전 동의 없이 새로운 기술과 제품, 서비스 개발 등 산업적 목적을 포함한 과학적 연구에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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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간에 모두가 만족하는 해결책은 나오지 않겠지만 늦기 전에 산업과 사회가 모두 발전할 수 있는 결과가 나와야 한다. 지난 22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발표된 ‘스타트업코리아! 디지털 헬스케어’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이후 설립된 스타트업 중 누적 투자액 기준 글로벌 상위 100개 기업에 국내 업체는 1곳도 포함되지 않았다. 해당 100개 기업 중 63곳이 현재 한국에 진출하면 규제 탓에 사업이 제한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기술력을 갖춘 국내 기업들이 시도만 하다 끝나지 않도록 정부와 사회가 전향적인 시각을 가져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