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과 잡았던 손을 놓으려나 했던 투자의 신(神)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이번에는 쿠팡을 덥석 안았습니다.
2015년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으로부터 1조1천억원이 넘는 투자를 받았던 쿠팡이 약 3년 만에 또 한 번 2조2천500억원에 달하는 자금 수혈에 성공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쿠팡은 소프트뱅크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등과 함께 구성한 기술펀드인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부터 추가 투자금을 받게 됐습니다.
산더미처럼 불어난 적자와 격화된 유통 경쟁 환경 탓에 위기설에 시달렸던 쿠팡은 이번 투자 유치로 대내외 불안 요소를 한 번에 날린 모습입니다.
로켓배송에 대한 신뢰를 키운 쿠팡맨들에 대한 부당 처우 문제라든지, 외국 임원들의 채용 과정에서 나온 잡음 등도 이번 투자 유치로 잠잠해질 전망입니다.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한차례 혁신을 주도했던 김범석 대표의 리더십도 다시 한 번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 주부 마음 순식간에 사로잡은 쿠팡
2010년 설립된 쿠팡은 빠른 배송 서비스인 로켓배송과, 지나칠 만큼 친절한 쿠팡맨으로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을 뒤흔들었습니다. 아무렇게나 던지거나 주인 몰래 놓고 갔던 택배 상품에 익숙했던 소비자들은 쿠팡의 라스트마일 서비스에 큰 감동을 느끼고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습니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초보맘들의 전폭적인 응원이 쏟아졌습니다.
쿠팡은 자체 물류창고와 배송 차량을 이용한 깨끗한 배송 서비스로 기저귀나 분유가 떨어진 주말 발을 동동 거리게 될 때 주문 다음날이면 상품을 배송해줬습니다. 집에 사람이 없을 때는 물건을 문 앞에 두고 메모를 남기거나, 문자로 사진을 보내 상품 배송 완료를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서비스 초기엔 ‘훈남’ 쿠팡맨이 찾아왔다는 미담 사례도 커뮤니티를 통해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쿠팡은 김범석 대표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를 고객들이 끊임없이 상기하도록 했습니다. 전통적인 유통 대기업들도 “쿠팡 좀 보고 배우라”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 빠른 성장만큼 컸던 쿠팡의 성장통
그렇게 승승장구할 줄 알았던 쿠팡에게도 큰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쿠팡이 자체 배송 차량을 이용해 로켓배송에 열을 올리자 기존 택배 시장이 들고 일어난 것입니다. 불법 유상운송행위로 규정, 고소 고발로 쿠팡 배송 서비스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택배 업계 입장에선 쿠팡 때문에 고객들에게 비교 당하고, 밥그릇 뺏긴다는 위기의식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회사의 빠른 성장에 따른 성장통도 겪었습니다. 창업 당시 합류한 멤버들과, 외부에서 온 경력자들과의 괴리가 생기게 됐고 이에 실망한 기존 인력들이 퇴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가까이서 비전을 제시하고 소통했던 경영진들이 회사가 커지면서 직원들과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자 초창기 함께 성장한 직원들에겐 서운함이 컸습니다. 스타트업 조직 같았던 회사가 대기업 조직으로 재편되면서 생긴 갈등과 불화가 회사 밖으로 흘러나왔습니다.
쿠팡에 대한 위기감을 가장 크게 불러일으킨 요인은 바로 대규모 적자였습니다. 매출과 거래액은 큰 폭으로 성장했지만, 3년 연속 5천억이 넘는 적자로 쿠팡에 대한 시장의 우려는 점점 깊어졌습니다. 3년 동안 1조7천억이 넘는 적자가 생기고 자본잠식에 빠지면서 쿠팡의 상징이었던 로켓배송도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쿠팡맨들의 처우 문제가 불거졌고, 이로 인한 반발로 배송에 차질이 잠시 생기기도 했습니다. 고객들을 위한 주말 배송 서비스도 직원들 입장에선 열악한 업무환경이란 지적을 낳았습니다.
전국 곳곳에 구축한 대규모 물류센터 운영에 대한 부담도 적자폭이 커지면서 더욱 심각해 보였습니다. 고정된 인건비와 운영비가 쿠팡의 유통, 물류 혁신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처럼 비춰졌습니다. 김범석 대표가 위기 직전에 처한 쿠팡을 살리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녔지만, 대규모 적자와 높아질 대로 높아진 기업가치로 추가 투자 유치가 쉽지 않아 보인다는 얘기도 들렸습니다. 고액 연봉을 받는 외국 임원의 잇따른 영입도 업계와 일반 직원들 눈엔 회사를 더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보였습니다.
■ 멈추지 않는 쿠팡의 혁신
그럼에도 쿠팡은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에 새로운 시도들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난 10월 배송 상품 가격과 상관없이 무조건 무료 배송을 해주고 30일 이내 무료 반품해주는 ‘로켓와우클럽’을 선보였고, 신선식품을 자정까지 주문하면 다음날 7시 이전까지 배송해주는 ‘로켓프레시’, 식음료 사전주문 서비스인 ‘쿠팡 이츠’ 등을 출시했습니다. 아울러 일반인들이 원하는 시간에 배송근무를 할 수 있는 '쿠팡 플렉스'를 도입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쿠팡은 배송 전문 자회사 쿠팡로지틱스서비스(CLS)를 세우고 제3자 물류 배송 서비스의 길을 열었습니다. 지난 9월 국토교통부로부터 신규 택배사업자로 지정받아 정식 택배 사업에 뛰어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쿠팡은 기존 로켓배송 차량과 함께 정식 택배 차량으로 자체 물류 뿐 아니라, 다른 사업자의 상품까지 고객에게 전달함으로써 추가 수익 창출이 가능해졌습니다. 불법 유상운송행위란 비판에서도 자유로워졌습니다. 더불어 CLS의 대구 캠프를 통해 전기화물차와 인프라를 구축, 운영함으로써 물류 시스템의 효율화에 나선다는 전략도 세웠습니다.
이 밖에 서울을 비롯한 중국 베이징, 상하이, 미국 실리콘밸리, 시애틀에 R&D 센터를 두고 국내외 유능한 개발자들이 기술 집약적인 물류 혁신 서비스에 머리를 맞댄 것도 쿠팡의 잠재적인 경쟁력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1년 넘게 준비한 클라우드 이전으로 갑작스럽게 불어난 주문량도 커버하는 서비스 위기 대응력도 밖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인 결과물입니다.
■ 추진력과 성장세, 위기 대처 능력 인정
지난해 2조7천억원에 가까웠던 쿠팡의 매출은 올해 5조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규모 투자와 영업비용 등으로 적자 폭은 크게 줄진 않겠지만 성장폭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투자의 신으로 불리는 손정의 회장의 마음을 움직인 건 결국 위기의 시험대에 올랐던 쿠팡이 고객의 신뢰를 잃지 않았던 점, 대규모 적자 상황에도 유통 혁신을 강하게 밀어붙였던 추진력이 꼽힐 것 같습니다. 시장을 뒤바꾼 혁신적인 서비스만큼이나 몇 차례 찾아온 위기를 이겨낸 쿠팡의 체력과 정신력이 성공적인 투자 유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만약 쿠팡이 재정 악화의 이유로 로켓배송을 멈췄더라면, 서비스 고도화와 연구개발을 늦췄더라면, 나아가 유통 대기업들의 공세에 성장 궤도를 ‘모험’에서 ‘안정’으로 바꿨더라면 대규모 투자 유치가 가능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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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쿠팡의 유통과 물류 혁신의 실험은 더 큰 날개를 달게 됐습니다. 이베이코리아, 신세계, 롯데, CJ, SK 등 기존 유통 대기업들이 새 전략을 세워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 입장에 맞춘 유통 혁신과 물류 시스템의 효율화를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김범석 대표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OO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를 고객들이 스스로 떠올릴 수 있게 하려는 전략 수립이 국내 유통 시장 전반으로 확산되길 바랍니다. 쿠팡 입장에서는 더욱 빨라지는 혁신 과정에서 누락될 수 있는 구성원들과의 소통 능력을 좀 더 보완하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