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출고가 인하 논쟁 길을 잃다

[이균성 칼럼] 아이폰을 어찌 하나

데스크 칼럼입력 :2018/11/02 12:14    수정: 2018/11/16 11:09

#1일 한 매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폰’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출고했다. 뜬금없는 제목이지만 스마트폰 시장의 현상을 단 11개의 글자로 표현해냈다. 더 압축하면 일곱 글자로도 가능하겠다. ‘그럼에도, 아이폰’. 대부분의 독자가 짐작하겠지만 이 말은 아이폰 판매가격이 200만원에 육박하지만 그래도 잘 팔린다는 뜻이다. 신제품이 초고가 논란을 빚었지만 예약판매가 더 늘었다는 것이다.

#애플은 요즘 ‘더 적게 팔고 더 많이 버는’ 비즈니스 재미에 푹 빠진 듯하다. 3분기에 팔린 아이폰은 4천690만대다. 전년 동기와 비슷한 수준이다. 매출은 372억 달러다. 전년 동기 대비 29% 늘어났다. 이는 아이폰 평균판매가격이 29% 높아졌다는 뜻이다. 당연히 소비자는 1년 전보다 29% 비싼 가격에 아이폰을 샀다는 이야기가 된다. 실제로 작년에는 이 가격이 618 달러였고 올핸 793달러다.

#아이폰은 ‘혁신의 상징’이다. 그런 대접을 받기에 충분하다. 아이폰이 나온 뒤 지난 10여 년 동안 IT 시장은 급변했다. 유선 인터넷을 모바일로, 웹을 앱으로 바꾸어버렸다. 글로벌 IT 생태계를 완전히 뒤집어버린 거다. 그 과정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진 기업이 한 둘이 아니다. ‘파괴적 혁신’이란 그런 거다. 낡은 걸 죽이고 새 것을 꽃피운다. 이를 칭송하는 매니아들은 기꺼이 두둑한 현금을 쏜다.

출고가 인하 논쟁을 무색케 하는 아이폰XS(사진=애플)

#애플이 이렇게 즐거운 휘파람을 부는 사이 국내에서는 출고가 인하 논쟁이 한창이다. 소비자는 가계통신비가 높다고 아우성이고, 정부와 국회는 시민단체를 지원군 삼아 각종 제도적 장치를 준비 중이다. 이동전화 서비스 회사들은 가계통신비가 높은 건 이동전화 요금 때문이 아니라 단말기가 비싸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어찌됐건 스마트폰 가격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인 셈이다.

#보조금 분리공시와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대책으로 제기되고 있다. 분리공시는 이동전화 사업자가 공시하는 보조금의 지급 주체를 명확히 하라는 것이다. 서비스 사업자가 주는 돈과 단말 제조업체가 주는 돈을 나누어 밝히라는 의미다. 그렇게 되면 단말기 출고가가 내려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단말 제조업체가 보조금을 줄 것을 감안해 단말기의 출고가격을 높게 책정했다는 의심에서 비롯된다.

#문제는 애플이다. 이 제도는 아이폰과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애플은 보조금을 주지 않는다. 애플이 정한 그 값 그대로 소비자는 사야 한다. 분리공시가 제도화한다 해도 아이폰 가격을 내릴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다. 세계 시장에서 가격을 주도하는 건 애플이다. 아이폰 경쟁력 때문이다. 애플이 가격을 내리지 않는 한 손익분기점을 오가는 기업들이 가격을 내릴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보조금을 지급하는 국내 업체와 관련해서 분리공시 주장에 논리적 모순도 발견된다. 보조금 때문에 출고가에 거품이 끼었다는 뜻인데, 이 거품을 빼고 출고가를 내리면 보조금은 사라지는 게 당연하다. LG전자 스마트폰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도 14분기 연속 적자다. 이미 2조6천억 원이나 날려먹었다. 이런 상황에서 출고가를 내리고 보조금은 보조금대로 주는 경영이 과연 가능한 일이겠는가.

#분리공시는 이런 이유로 단말기 값을 실질적으로 내리는데 기대만큼의 효과를 가져 오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다. 효과는 없으면서 국내 기업의 영업기밀 만 까야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인터넷 분야에서 극심하게 나타나고 있는 국내 기업과 미국 기업 사이의 역차별이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하나 더 추가될 뿐이다. 오히려 지금 제도 때문에 소비자는 국산 폰을 조금 더 싸게 사는 것일 수도 있다.

#완전자급제의 경우 취지가 좋지만 그게 당장 출고가를 내릴 것으로 기대하는 건 섣부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길거리 이동전화 대리점에선 아이폰을 살 수 없다. 못 팔기 때문이다. 애플은 새롭게 전국 유통망을 구축해야 한다. 제휴를 하든 자체적으로 하든. 비용이 추가될 수밖에 없다. 그게 가격에 반영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국내 업체들도 애플을 따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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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자급제는 소비자 민원을 당장 해결해줄 수 없다. 그러나 장기적인 효과는 기대된다. 이 제도는 규제지만 사실 시장원리를 강화하는 의미가 크다. 지금은 하나인 시장을 둘로 나눠 각각의 영역에서 경쟁을 강화하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효과가 언제 나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경쟁이 가격을 내린다는 건 이론일 뿐이고, 서비스 회사 보조금이 사라지는 건 현실이라는 걸 알 필요가 있다.

#출고가에 거품이 끼어 있을 수도 있지만 이런저런 제도가 출고가를 내리게 할 것이라는 기대는 '심리적 거품'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