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은 세상을 신의 공간, 천사의 공간, 인간의 공간으로 구분하는 3단계 우주관을 가졌다. 신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받아 철학과 신학의 합일을 도모한 스콜라 철학자들이 만든 생각이다. 이러한 멘탈모델은 중세 사회에 그대로 투영되어 교회 집단, 귀족 집단, 농노 집단으로 구성된 3단계 봉건적 서열 시스템의 모태가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스콜라 철학자들은 사람의 몸까지 혼이 머무르는 머리, 명예를 지키는 가슴, 끼니를 책임지는 배(장)의 순서로 3단계 서열을 매겼다.
중세시대의 농노는 높은 성체에 사는 영주와 동떨어진 낮은 공간에 살았다. 성벽 뿐만 아니라 기울어진 경사가 귀족과 평민의 생활공간을 갈라놓았다. 어떤 평민은 죽는 날까지 영주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죽기도 했을 것이다. 현대세계에는 계층간의 물리적 성벽은 없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벽은 여전히 존재한다.
“넘사벽”이라는 말이 있다. 넘을 수 없는 제4의 벽이란 뜻이다. 이말은 연극무대에서 유래되었다. 연극 무대는 뒤 삼면이 막혀있고, 제4면인 관객 쪽에만 열려있다. 관객들이 말똥말똥 바라보아도 배우들은 태연하게 관객이 없는 듯이 연기한다. 뚫려 있지만 가상의 벽이 존재하는 양 행동하니 이를 디드로(Denis Diderot)가 “제4의 벽”이라 불렀다.
인류의 역사는 계층 간에 존재하는 넘사벽을 파괴하고 통로를 평평하게 만드는 활동의 기록이다. 우리도 많은 민주투사들이 넘사벽을 혁파하고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려고 몸 바쳐 경주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태생적 서열을 없애고 공평한 사회를 지속시키는 시민 주권의 메커니즘을 넓게 거버넌스(governance)라 부른다. 이말은 희랍어로 배의 키(방향조정장치)를 잡는다는 의미에 기원을 두고 있다.
거버넌스 개념은 지구상의 구성체들이 종속관계가 아니고, 서로의 생존을 돕는 대등한 관계라는 각성에 서 시작되었다. 사유할 수 있는 인간은 이 구성체의 영구한 생존을 보증해야하는 양도할 수 없는 책무를 가진다. 아울러 지구라는 배가 향하는 방향은 공동체의 투명한 합의로 결정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학자가 말하는 거버넌스의 핵심 목표에 지속가능성, 투명성, 책무성이 빠지지 않는다
거버넌스는 정치학, 글로벌 경제, 기업 도메인에서 사용하는 용례가 서로 다르다. 정치학에서는 “다스림” 혹은 “협치”로 민중의 정치참여를 내포한다. 글로벌 경제의 경우는 저개발 국가를 위한 공적 원조에 관계된다. 저개발국가의 뿌리 깊은 구조적 부패로부터 공적 지원자금 사용의 “투명성”, “지속가능한 성과지표”, “책무성”을 보증하는 검증활동을 거버넌스라 부른다.
한편 기업 도메인에서는 2000년대 초반의 미국 엔론의 회계부정 사건 이후로 조직 거버넌스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기업에서의 거버넌스는 기업 경영의 방향, 권한 관계, 기대치를 명확히 하는 일과 관계하며 기업 활동의 지속가능성, 책무성, 투명성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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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버넌스의 보편화가 사회 전반에 널리 전파되고 있지만 기업 내에는 불행하게도 계층 간의 넘사벽과 기울어진 경사가 여전히 존재한다. 이사회, 그들의 대리인인 경영자와 관리자, 그리고 사원의 3단계 서열을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직원은 넘사벽 넘어 이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지 못한다. 회사의 미래를 좌우하는 큰 권한을 가진 이사님들의 얼굴도 알지도 못한다. 직원들의 의견이 이사회의 의제로 반영되는 경우도 드물다. 제4의 벽 넘어 이사회 멤버들이 없는 것처럼 직원들은 일하며, 이사회 역시 직원의 퍼포먼스를 관객처럼 구경할 뿐 쌍방의 교류는 없다. 마치 기업이 서열식 봉건제도의 시스템 모양과 똑 같다. 문제는 이러한 구식 시스템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으로 봉건제도가 무너졌듯이 기업 시스템도 바뀌지 않으면 지속가능하지 않다.
기업이 오래도록 살려면 혁신해야 한다. 그 변화의 단초를 다시 연극계에서 찾아보자. 갑자기 연기자가 넘사벽 밖의 관객에게 말을 건다. 관객도 연기자와 대화를 나눈다. 때로는 연기자가 관객 자리에 내려가서 구경꾼이 된다. 앉아있는 관객을 무대에 끌어올려 연극에 참여시킨다. 대학로 극장가에서 자주 벌어지는 풍속이다. 이같은 접근이 기업에서 시도해야 할 혁신적 모델이다. 일부 학자는 이러한 접근을 “홀라크라시”라 부른다. 아직은 초기 단계라 보편적 성공을 말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미국의 자포스, 브라질의 샘코, 일본의 메이난제작소가 이미 홀라크라시 공연을 시작했다. 조직의 넘사벽을 허물고 전 구성원의 집단 지성에 의한 회사경영의 모델이다. 민주화된 기업문화의 시도 들이다. 젊은 청년 창업가라면 처음부터 틀을 새롭게 짤 일이다. 오래된 봉건적 기업시스템을 흉내 낼 필요가 없지 않은가?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