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최대 시스템반도체 기업인 인텔이 10나노미터(nm) 이하 미세공정을 위한 극자외선(EUV) 신공정 도입을 3년 후로 연기한다.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대만 TSMC보다 수년 늦은 행보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인텔의 이 같은 결정으로 반도체 업계 미세공정 개발 경쟁은 앞으로 삼성과 TSMC 2강 구도로 굳어질 전망이다.
7일 업계와 인텔 내부 사정에 밝은 투자회사 번스타인(Bernstein)의 애널리스트 마크 리(Mark Li) 등에 따르면 인텔은 오는 2021년까지 EUV 공정 도입을 연기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인텔이 공정 개발 속도를 늦추는 이유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가장 유력한 설은 인텔이 10나노미터(nm) 공정 전환에 어려움을 겪어, 앞서 구상한 미세공정 포트폴리오의 타임라인 자체가 무너졌다는 분석이다.
현재 인텔은 10nm 공정 개발 과정 중 기술적인 난제를 극복하지 못해 대량 양산도 내년으로 미루는 등 차기 공정 개발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크 리 번스타인 애널리스트는 "EUV 공정은 193nm 불화아르곤(ArF) 광원을 이용한 리소그래피와 매우 다른 제조 조건, 허용 오차가 필요한 미세공정"이라며 "이미 경로를 벗어난 인텔이 2021년까지 7nm 노드 EUV 공정 도입을 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인텔은 지난 1990년 후반, 글로벌 반도체 제조사 가운데 처음으로 EUV 개발에 뛰어든 업체다. 2000년 EUV 로드맵 발표 당시에도 인텔은 '2004년 전후로 EUV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로부터 20년 후인 현재까지 로드맵을 여러 차례 수정해 온 인텔은 아직 EUV 공정을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인텔은 2016년에 10nm 공정 개발을 완료하겠다고 선언했다"며 "애초 목표 시기에 맞춰 10nm를 양산하기 시작했다면, 올해 7나노와 함께 EUV 공정 도입을 마쳤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일찍이 EUV를 도입한 삼성전자와 TSMC는 내년 말께 본격적으로 신공정을 이용한 양산 경쟁에 돌입할 전망이다.
삼성은 하반기부터 7나노 LPP(7LPP·Low Power Plus) 공정 제품의 시제품 양산을 개시했다. 7LPP 공정은 삼성이 EUV 장비를 적용한 최초 로직 공정으로, 내년 상반기 제품 양산이 목표다. 이 공정은 10나노 2세대 공정 대비 전력 효율은 35% 높이고, 면적은 40% 줄인다. 대만 TSMC는 지난 2분기부터 7나노 공정을 대량 생산체제로 전환했지만, EUV 도입은 내년으로 늦췄다.
10nm 이하 반도체 미세화의 필수적인 요소로 꼽히는 EUV는 반도체 원자재인 웨이퍼에 빛으로 회로를 그리는 포토 리소그래피(Photo Lithography) 기술이다. 극자외선 파장의 광원을 사용해 웨이퍼에 미세한 회로를 새기는 방식으로, 그간 공정에 사용돼 온 ArF에 비해 파장이 짧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EUV는 거울형 노광기술인 심자외선(DUV) 방식과 달리 반사형 장비라는 점에서 감광·식각 등 공정 전 분야의 변화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어서 반도체 업계가 '꿈의 기술'로 점찍은 상황이다. DUV는 해상도의 한계가 30nm에 불과하기 때문에 업체들은 정밀한 공정을 위해 2배, 4배 패터닝(정형화) 등 복잡한 기법을 사용해왔고, 자연스럽게 생산성 저하와 원가 상승이 동반됐다.
관련기사
- '魔의 7나노'…파운드리 시장 판 흔들린다2018.09.07
- SK하이닉스, 中 파운드리 시장 진출2018.09.07
- "7나노 선점 TSMC, 퀄컴과 다시 손잡아"2018.09.07
- '7나노' 속도내는 TSMC…대량생산 체제 돌입2018.09.07
EUV 장비는 네덜란드 업체인 ASML이 업계에 독점 공급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장비 가격은 대당 1천500억원이다. 장비 10대 이상을 사들이려면 1조5천억원을 웃도는 금액이 필요하다.
이러한 값비싼 가격에도 삼성과 TSMC, 인텔 등은 ASML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장비 구입에 나서고 있다. 미세공정화 실현엔 EUV만한 공정이 없기 때문이다. 반도체 장비업계 한 관계자는 "파운드리 기술 개발을 주도 중인 글로벌 반도체 제조사들은 EUV가 반도체의 트랜지스터 밀도를 높여 미세공정 한계 돌파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