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황이 고점(高點)에 다다랐다는 전망에도 글로벌 반도체 제조사들이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입해 증설 경쟁에 나서고 있다. 반도체가 데이터센터와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컴퓨팅 등 4차산업혁명의 핵심 부품이기 때문에 호황이 지속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주목할 점은 수익성이 높은 D램에 집중해 왔던 업계가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해 수익 다각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 특히 PC와 스마트폰뿐 아니라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분야의 반도체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점유율 4위인 미국 마이크론은 차량용 반도체 생산설비 확충을 위해 미국 버지니아주 마나사스 공장 증축에 나섰다. 투자 규모는 12년간 30억 달러(약 3조3천억원)다.
마나사스 공장엔 약 9천300 제곱미터의 클린룸이 들어설 전망이다. 현재 1천500명이 근무 중인 이 공장에 향후 1천100여개의 일자리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마이크론은 설명했다.
마이크론이 이번 투자를 결심하게 된 건 차량용 반도체 시장의 전망이 밝아서다. 마이크론은 증설 계획 발표에 앞서 오는 2021년 차량용 반도체 시장 규모는 약 60억 달러(약 6조7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미래형 자동차는 바퀴를 단 데이터센터와도 같다"며 "충돌 방지, 차선이탈 경고 시스템 등의 기능을 갖춘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높아져 설비 증설을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마이크론뿐 아니라 삼성전자·인텔·SK하이닉스 등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매출 상위 3개 기업도 잇따라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가 추산한 올해 글로벌 반도체 업계 시설투자 규모도 지난해 대비 9% 증가한 1천20억 달러(약 113조7천억원)에 달했다.
1위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 설비 증설 투자에 약 30조원을 투입한다. 앞으로 3년간 10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반도체 양산 거점인 경기도 평택캠퍼스의 생산력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2·3위에 오른 인텔과 SK하이닉스는 올해 각각 사상 최대 금액인 150억 달러(약 16조7천억원)와 지난해 대비 30% 늘어난 15조원을 투자한다. SK하이닉스는 3조5천억원을 들여 2020년까지 경기도 이천에 신규 공장도 설립할 예정이다.
반도체 시장에 새롭게 투입되는 '차이나머니'도 올해 최대치를 찍을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중국 반도체 업계의 올해 설비투자 규모는 4년 전보다 7배 증가한 110억 달러(약 12조3천억원)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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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쯔메모리(YMTC)·이노트론·푸젠진화 등 3대 중국 업체들은 올해 낸드플래시, 내년엔 D램 양산에 들어간다. 하반기부터 반도체 경기가 하락할 것이라는 업계 일각의 전망이 나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모건스탠리의 고점 전망이 여러 차례 논란이 됐었던 것과는 다르게, 가격이 아직 크게 떨어지지 않아 호황 추세가 유지되리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향후 대규모 투자와 가격 하락이 동반되면 치킨게임으로 번질 우려도 있는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