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장에서 프로세서나 SSD, HDD(하드디스크 드라이브) 등 PC 하드웨어 유통은 현재 일부 수입업체가 독점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각 유통 경로별로 적정 가격을 설정하고 일선 상인들의 판매 가격을 통제하고 있다.이 때문에 국내 시장 대신 미국이나 일본, 중국 등 해외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요 하드웨어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실제로 통계청이 집계하는 온라인 해외 직구 금액 중 '컴퓨터 및 주변기기' 관련 항목은 이미 100억원대를 넘어선 상황이다.■ '컴퓨터 및 주변기기 직구' 2분기에만 125억원
2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 2분기 온라인 해외 직구 금액 중 '컴퓨터 및 주변기기'는 125억원으로 지난 해 같은 기간의 68억원에 비해 80% 이상 늘었다
물론 이같은 수치는 PC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노트북 등 완제품을 모두 포함한 금액이다. 그러나 배틀그라운드나 포트나이트 등 고사양 게임 수요가 증가하면서 직구 금액 증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해외 직구 대상이 되는 주된 제품은 프로세서나 SSD, HDD(하드디스크 드라이브) 등 규격화되어 세계 어디서나 쓸 수 있는 부품들이다.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구입한 국가로 보내 교환을 받는 RMA를 이용해야 하지만 일부 제품은 글로벌 워런티를 제공해 제품에 문제가 생겼을 때 국내에서도 보증을 받을 수 있다.
최근 인텔 8세대 코어 프로세서 가격이 상승하면서 코어 i7-8700K 등 최상위 프로세서를 구매하려는 사람들도 늘어난 상태다. AMD가 국내 판매하는 라이젠 2세대 프로세서 일부 제품 가격을 해외보다 비싸게 책정하면서 해외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 2~3개 업체가 통제하는 시장 외면하는 소비자들
최근 미국 아마존닷컴도 국내까지 저렴한 배송비로 글로벌 배송을 실시하는 것은 물론 PC 하드웨어 해외 구매시 부과되는 부가가치세까지 아마존닷컴이 선납받아 대납에 나섰다. PC 하드웨어 직구에 나서는 소비자들은 앞으로도 더 늘어날 추세다.
국내 소비자들이 언어와 배송의 장벽을 감수하고 PC 하드웨어 직구에 나서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2~3개 수입업체가 판매 경로를 독점하고 사실상 가격을 통제하는 국내 유통 구조 때문이다.
용산전자상가를 위주로 유통되는 PC 하드웨어 가격은 환율 상승이나 품귀 현상 등 조짐이 보이면 급격히 오르지만 한 번 올라간 가격은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다. 여기에는 '총판'으로 대표되는 국내 수입업체들의 가격 결정 구조가 유무형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들은 대면판매는 물론 다나와로 대표되는 가격 비교 사이트, 오픈마켓 등 다양한 채널별로 설정한 내부 적정가를 이용해 일선 상인들을 제어한다. 지나치게 비싼 가격, 혹은 지나치게 싼 가격을 등록한 판매자를 발견하면 가격 변경을 요구하는 식이다.
물론 이런 유통 구조에는 순기능도 있다. 터무니없는 높은 가격으로 제품이 판매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정말 싼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하고 싶은 일선 상인들의 '돌출 행동'을 막는 일종의 암묵의 카르텔로 작용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공정위 "녹취나 문건 없이는 조사 어려워"
문제는 이처럼 수십 년간 왜곡된 시장 구조를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직구로 눈을 돌리면서 국내 시장이 위축되고, 시장 규모가 작아지면서 시장이 침체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소비자들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PC 하드웨어 시장을 조사하고 담합 등 문제가 있다면 시정 조치나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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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는 "독과점이나 담합 등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녹취나 문건 등 명확한 증거자료가 있어야 조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들이 이러한 증거를 입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현재로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직권으로 조사에 나서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