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도입으로 헬스케어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은 규제에 막혀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뷰노, 루빗 등 몇몇 스타트업들이 의료용 AI 기반 소프트웨어를 출시했지만 복잡한 인허가 문제로 시장 출시 사례는 현재 전무하다.
반면 미국은 인허가 문제를 대폭 간소화한 제도를 선제적으로 내놓으며 세계 헬스케어 기업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전 세계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이 2년 뒤 약 400조원 규모를 이룰 것으로 예상되면서 구글, 애플, IBM 등 초대형 정보기술(IT) 기업들은 물론 해외 제약사들마저 이미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와 IT업계 관계자들이 모인 AI엑스포코리아(AI EXPO KOREA)는 9일 서울시 강남구 코엑스에서 ‘인공지능과 디지털 헬스케어’ 컨퍼런스를 열고 국내외 AI 기반 헬스케어 산업 현황과 실태에 대해 논의했다.
참석자들은 의료 데이터를 포함한 방대한 데이터를 신속하게 가공, 처리할 수 있는 AI가 등장하면서 진정한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이 열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AI는 정밀의료, 맞춤형 의료, 효율적인 신약 개발 등을 가능케 하는 핵심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서도 시장 추세에 맞춰 뷰노와 루닛, 마이다스 등 AI 헬스케어 스타트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해당 기업들은 AI로 전산화단층촬영장치(CT), 자기공명영상촬영장치(MRI) 등 의료용 데이터를 분석해 질병 판별을 돕는 보조적 역할을 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지만 복잡한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인허가 문제로 제품 출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식약처 허가를 받은 국내 AI 헬스케어 제품은 뷰노의 AI 기반 수골 엑스레이 영상 분석 소프트웨어인 뷰노메드 본에이지뿐이다. 그러나 해당 제품 역시 신의료기술평가라는 또 다른 절차 문제로 시장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준영 정보통신산업진흥원 ICT융합확산팀 팀장은 “뷰노의 소프트웨어가 지난 5월 식약처 인허가를 받았지만 신의료기술평가를 또 받아야 한다. 기업 입장에선 애로사항이 되는 셈”이라며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사전인증(Pre-Cert) 제도로 기업만 인증해 정보기술(IT) 발전에 맞춰 신기술을 투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이 국내 상황과 다른 부분이 있지만 헬스케어 산업이 세계적으로 경쟁이 이뤄지는 상황에선 해외 제도 등을 파악해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내 헬스케어 업계는 FDA 사전인증(Pre-Cert) 제도처럼 의료 소프트웨어나 기기별로 인허가를 내는 대신 기업, 개발자를 사전인증하고 해당 사업자가 제품을 출시하면 간소화한 인허가 절차를 적용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내 제도가 세계적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면 미국 등 친(親) 헬스케어 산업 국가로 선진 헬스케어 기업과 서비스가 몰릴 것이란 경고도 나왔다.
김남국 서울아산병원 교수는 “FDA 사전인증 제도는 전 세계 헬스케어 기업들에 미국에서 임상시험을 하라고 제안한 것”이라며 “정말 국내외 헬스케어 기업들이 미국으로 몰려가 임상시험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헬스케어 업계는 아직 첫 발도 제대로 떼지 못 한 상황에서 해외 기업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AI 헬스케어 산업을 키우고 있어 경쟁력 격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따랐다. 특히 헬스케어 시장 규모가 거대한 만큼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잠재성도 기대되면서 스타트업들을 넘어 초대형 IT기업은 물론 제약사들까지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IBM에 따르면 전 세계 헬스케어 시장 규모는 2020년 8조 달러(약 8천926조원),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규모는 3천600억 달러(약 402조원)으로 예상된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마켓(MarketsandMarkets)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을 15.9%로 내다봤다.
김남국 서울아산병원 교수는 “해외선 구글과 IBM,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대형 기업들은 물론 이스라엘의 AI 기반 의료영상 처리 전문기업 지브라 메디컬(Zebra Medical) 같은 스타트업들도 AI 헬스케어 시장을 보고 있다”며 “무서운 점은 아마존 같은 대형 기업들이 시도하면 정말 헬스케어 산업이 혁신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영우 메디리타 대표 역시 “AI는 의료영상 분석이나 처방과 치료, 신약 개발 등 분야에서 선택 비용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며 “글로벌 제약사들이 AI기업들과 협력, 제휴하면서 AI 기업들에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고 설명했다.
구글 계열사 베릴리(Verili)는 2016년 영국 최대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laxoSmithKline)과 생명전자공학 벤처기업인 갈바니 생체전자공학(Galvani Bioelectronics)를 설립하기 위해 제휴했다. IBM은 2021년 헬스케어 AI시스템 시장의 45%를 차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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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최대 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는 지난 2월 AI를 진단, 치료에 적용하기 위해 알리바바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미국 주요 바이오제약사 암젠은 지난 5월 의료 분야 전문 머신러닝 기업 오우킨(Owkin)과 협력하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이 팀장은 “한국은 IT 역량도 뛰어나고 인재도 의료업계에 집중돼있지만 국내 의료업계의 헬스케어 산업 대비는 세계 시장과 비교해 미비하다”며 “국민적 공감 아래 인허가 등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