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혁신을 본격화하고 정도경영으로 초우량 LG를 만들어가겠습니다."
20일 향년 73세로 타계한 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1995년 그룹의 제3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강조한 말이다. 구 회장은 당시 취임사에서 '초우량 LG'라는 단어를 6번, '정도경영·공정·정직·성실'은 수차례 언급했다. 그만큼 고인은 LG가 초우량 제품을 통한 21세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를 꿈꾸면서도 LG家의 뜻을 이어받아 올바른 길로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LG가 지난 2003년 일찌감치 대기업 최초로 순환출자 구조를 끊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고 '노경(勞經)'이라는 새로운 노사문화 정착에 노력해 온 점은 재계에서도 오랫동안 평가받고 있는 일이다. 그런 이유로 LG 하면 '초우량', '정도경영'이라는 말은 낯설지 않다.
초우량 LG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고인의 약속은 오늘날 현실로 실현됐다. 구 회장이 원칙과 뚝심으로 LG를 이끈 23년 동안 LG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회장 취임 당시 30조원에 불과하던 그룹 매출액은 지난해 160조원으로 5배 이상 늘었다. 무엇보다 '인재경영'과 '미래 투자'를 꾸준히 해 오면서 그룹의 신사업 육성과 미래 준비에 노력해 온 점은 구 회장의 최대 업적이다.
▲'포스트 구본무' LG그룹 향배는?...구본준 부회장 역할론 주목
구본무 회장 타계 이후 세간의 이목은 이제 LG의 지휘봉을 잡을 외아들 구광모㊵ 상무에게 쏠려 있다.
㈜LG는 지난 17일 LG그룹 본사에서 이사회를 열고 구 상무를 등기이사로 추천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구 상무의 등기이사 선임 안건은 다음달 29일 열리는 임시 주주총회에서 확정된다. 구 상무는 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둘째 남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장자 승계 원칙을 고수하는 범LG가(家)의 전통에 따라 지난 2004년 구 회장의 양자로 입적해 경영승계를 준비해왔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구 상무가 LG의 후계자라는 사실은 현재로서 변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오늘날 LG그룹 경영에 오너가로 유일하게 참여하고 있는 구본준 부회장의 역할에도 재계의 큰 관심이 쏠린다. 구 부회장은 구 회장의 셋째 남동생으로 그를 빼놓고는 지금의 LG를 이야기 하기 어렵다.
51년생인 구 부회장(67)은 85년 LG반도체 부장으로 입사해 LG반도체 대표이사 부사장, LG필립스 LCD 대표이사 부회장 등 LG가 지금의 디스플레이와 전자 부품 사업의 기반을 닦고 B2B 사업 네트워크를 고도화하는 데 일익을 담당해 왔다. 2016년부터는 그룹 신성장사업추진단장 부회장을 맡아 LG의 미래 설계를 한 주역 중의 주역인 사람이다. 그야말로 LG 내에서 현존하는 인물 중 LG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가장 잘 꿰뚫고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LG 계열사 한 관계자는 "지금의 적자사업인 OLED와 전장부품 사업은 사실상 구 부회장이 구 회장을 보필하면서 그의 결단과 추진력으로 끌고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과거 마케팅에 치중하며 사업에 실기하던 LG를 지금의 기술과 R&D 기업으로 바꿔 놓고 한발 앞선 사업에 올인하는데에는 구 부회장의 영향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현 LG를 이끌고 있는 전문 경영인 6인(하현회 ㈜LG 부회장과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체제를 현장과 기술을 잘 아는 출신들로 포진시킨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구 부회장은 故 구본무 회장(11.28%)에 이어 ㈜LG의 지분 7.72%를 갖고 있는 2대 주주이기도 하다. 구 상무는 6.24%를 보유한 3대 주주다.
구 부회장은 와병 중인 구 회장을 대신해 사실상 지난해 부터 일선 경영을 책임져 왔다. 연초 임원 세미나를 비롯해 글로벌 전략 회의를 주도하며 인재양성과 기술혁신에 경영진이 적극 나서 달라고 다양한 경영 메시지를 전달했다. 최근 1조 4천여억원을 들여 오스트리아 자동차 헤드램프 제조 업체인 ZKW를 인수한 것도 오너가인 구 부회장의 결단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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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LG가 전자-화학-통신 서비스로 이어지는 3개 핵심 사업을 더욱 고도화 시키고 자동차 전장(VC)-에너지-바이오 사업은 LG의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안정화시켜야 하는 과도기에 서 있는 만큼 구 부회장의 역할론에 상당한 무게가 실린다. 구 부회장이 조카인 구 상무의 체제가 연착륙 하는 시점까지 그룹을 이끌면서 LG가 쉼 없이 사업 혁신을 이룰 수 있는 릴레이 주자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또한 반도체 사업이 없는 LG의 미래 사업에서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 등 선제적 행동에도 오너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에 구 부회장의 역할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례로, 핵심 계열사인 LG전자는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인 매출 61조4천억원, 영업이익은 2조5천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올해 연간 영업이익 60조원 시대를 바라보는 삼성전자와 비교하면 갈길이 멀다.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가 없는 LG 입장에서는 현 사업 구조만으로는 경영환경이 녹록치 않은 상황"이라며 "현재 진행 중인 미래 사업이 한두해만에 시장을 선도하고 캐시카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투자와 인수합병 등 큰 그림에 대한 결단에는 구 부회장의 역할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