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産·學·투자자 등 민간이 ICO 규제법 주도해야"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인터뷰

금융입력 :2018/05/23 09:30

박병진, 손예술 기자

"한마디로 너무나 한심한 조치입니다."

최근 서울 강동구 집무실에서 만난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이 정부의 ICO 정책을 두고 한 말이다. 국내 ICO에 제동이 걸린 기업이 해외로 나가게 되면서 국부·기술·일자리의 '3대 유출'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오 회장의 분석이다.

정부는 지난해 9월 29일 모든 형태의 ICO를 금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으나 현재까지 규제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사진=지디넷코리아)

■ "ICO 전면 금지는 국부·기술·일자리 3대 유출"

최근 암호화폐 허브 도시 '크립토밸리'로 주목받고 있는 스위스 주크를 직접 방문해 실정을 살펴보고 왔다는 오 회장은 해외 ICO는 국부유출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우선 해외에 법인을 설립하면 법인세·인건비·사무 운영비 등의 비용을 현지에서 지출해야 한다. 특히 스위스 주크의 경우 외국인이 법인을 설립하면 반드시 현지인을 5:5의 비율로 채용하도록 하고 있다.

오 회장은 "스위스는 우리보다 소득이 3배 높은 나라인데, 우리나라 사람 3명 고용하면 연봉 3배주고 스위스 사람 3명을 더 고용해야 한다"며 "스위스에서 100억 정도 ICO해서는 가지고 올 돈이 하나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다음은 기술 유출이다. 스위스·싱가포르 등 해외에서 법인을 설립해 암호화폐를 발행하려면 현지 규제당국에 기술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오 회장은 "현지에서 요구하는 보고서는 백서에 나와 있는 것 이상으로 상세하다"며 "현지의 로드맵을 따르는 과정에서 우리 기술이 다 유출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일자리 유출 문제가 있다. 기업이 해외로 나가면서 유출되는 일자리뿐 아니라, ICO를 금지함으로써 잠재적인 고용창출 기회마저 없애는 기회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오 회장은 "인구 12만 명에 불과한, 스위스 26개 칸톤(주·州) 중 하나인 주크에 크립토밸리를 조성하니 11만 개의 일자리가 생겼다"며 "ICO를 허용하는 게 일자리를 만드는 데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사진=지디넷코리아)

■ "무조건 금지, 투자자 보호 아냐…민간이 법 만들어야"

오 회장은 정부가 지금처럼 아무런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않으면서 ICO를 무조건 금지하는 것은 투자자 보호가 아니라 오히려 방치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현재 금지는 금융위원회 조치로 이뤄진 것으로,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다. 실제로 많은 내국인이 해외 ICO에 참여하고 있는데, 잘 모르고 투자했다가 피해를 보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ICO를 허용하되, 알맞은 제한을 두자는 것이 오 회장의 주장이다. 실제로 오 회장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ICO의 상당수가 사기성이 있다고 전했다. 비즈니스 모델이 완벽하지 않거나,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없는 기술을 과장하거나, 경영진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오 회장은 "(사기성 ICO의) 피해자가 많아지면 투자하는 사람도 줄어 결국 블록체인 산업이 죽을 수밖에 없다"며 "투자자 보호도 산업 활성화를 위해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제도화 방식은 민간주도의 '바텀업(Bottom-up)' 형태가 되어야 한다고 오 회장은 설명했다. 블록체인이 탈중앙화 산업이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산업 종사자·학계·투자자 등으로 구성된 민간위원회가 가이드라인과 법안까지 만들고, 정부는 구심점 역할만 맡는 게 바람직하다는 구상이다.

반면 현재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법무부 등으로 구성된 정부의 암호화폐 태스크포스(TF)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했다. TF에 블록체인 산업에 부정적인 규제 당국만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오 회장은 "TF는 이 산업을 어떻게 활성화할 수 있을까, 투자자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이 들어가는 것이 맞다"며 "우리나라 정부와 공무원들이 블록체인 산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과거는 정부가 주도해서 경제를 이끌어왔다. 지금은 민간의 창의성이 중요한 시대다. 잘 모르는 사람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며 사전에 허가 해주고, 문제가 생기면 사후에 규제하는 '샌드박스'식 규제를 제안했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사진=지디넷코리아)

■ "DMZ에 크립토밸리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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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회장은 한 발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 주크와 같은 '암호화폐 특구'를 만들 것을 제의하기도 했다. 전국 단위로 암호화폐 정책을 적용하려면 너무 많은 걸 바꿔야 하고, 기득권의 반대가 있을 수 있으니 범위를 좁혀보자는 얘기다. 오 회장은 "우리는 초고속통신망이 깔려 있어 환경은 스위스보다 좋다"며 "특구를 만들어 세금도 싸게 해주고, 규제 없애주고, 외국인을 위한 생활여건만 만들어 주면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크립토밸리를 조성할 장소로는 북핵의 완전폐기를 전제로 비무장지대(DMZ)를 꼽았다. 국내에 '아시아의 크립토밸리'를 만들면 양질의 일자리가 1백만 개 이상 생겨 청년실업 문제를 완전히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 오 회장의 전망이다. 그는 특히 "DMZ를 크립토밸리로 육성하면 남북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가져갈 수 있다"며 "우리나라에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이 조성되는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