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전 세계 휴대폰 시장 톱(TOP) 3에 진입한 것은 지난 2002년이다.
일본 도시바 무선전화기를 받아 무선 단말사업에 나선 지 어언 14년 만에 일이다. 당시 삼성의 휴대폰 판매 대수는 연간 4천300만여대. 세계 1위 휴대폰 제조사로 3억7천만대를 판매하고 있는 오늘날과 비교하면 초라한 숫자다. 하지만 그 당시엔 삼성전자, 아니 대한민국 기업이 해외에서 가장 많이 파는 최초의 범용 전자기기 제품이 바로 휴대폰이었다.
당시 전시회 취재 차 스위스 현지를 방문했던 기자에게 "삼성전자가 일본 기업이 아니라, 한국 기업이었느냐"고 되물었던 숙박집 주인의 얼굴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이후 유럽에서 이름도 낯설던 삼성은 공격적이고 역동적인 프리미엄 전략으로 2012년 결국 노키아, 모토로라를 제치고 세계 정상에 선다.
어느 덧 수 년이 흘렀다. 이제 중국이 삼성, 아니 대한민국을 턱밑까지 쫓고 있다. 우리가 미국과 일본을 쫓았던 것처럼 말이다.
최선두엔 화웨이가 있다.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는 2~3년 내에 스마트폰 시장 정상에 오르겠다고 호언장담한다. 이미 세계 2위에 올랐다는 조사 보고서도 있다. 문제는 이런 호언이 허풍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럽 시장에서 화웨이의 브랜드 파워는 이미 삼성, LG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오히려 디자인과 SW·HW 성능에서 뛰어나다는 평가도 받는다. 혁신 제품을 생산하는 시장선도 기업이라는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에도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화웨이는 최근 카메라가 세 개 달린 트리플 카메라폰(P20 프로)을 선보였다. 오는 11월엔 삼성보다 먼저 폴더블폰을 내놓고 '세계 최초' 타이틀을 차지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화웨이는 5G 통신 시대를 앞두고 통신장비 시장까지 공고히 하겠다며 세계 1위의 글로벌 IT기업으로 꿈을 키우고 있다. 화웨이와 장비도입 계약을 진행했던 전직 모 이통사 관계자는 "화웨이는 통신사 입장에서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가격과 조건을 제시한다"며 "이미 다른 장비를 구매했더라도 이를 철회하고 화웨이 장비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가격 경쟁력이 크다"고 말한다.
화웨이 뿐만이 아니다. 그 뒤엔 '중국의 좁쌀(小米)' 샤오미가 버티고 있다. 샤오미는 작년 4분기부터 인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을 따돌리고 1위를 차지했다. 인도는 중국 다음으로 떠 오르는 신흥 IT 시장이다. 샤오미가 내놓은 로봇청소기나 스마트워치 등은 이미 시장에서 가성비 좋기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또한 중국의 오포, 비보는 12억 내수 시장을 발판으로 힘을 키워나가고 있다. 해외 사정에 정통한 IT업계 관계자는 "수년 전부터 글로벌 기자간담회에 온 중국 기자들의 손에는 거의 오포, 비보가 만든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며 "중국에서 삼성 스마트폰이 시장점유율 0%를 기록하는 게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여러 시장 징후들을 보면 올해 역성장이 예상되는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더 이상 챔피온이 아니다. 또한 중국 업체들의 추격을 쉽사리 뿌리치기도 어렵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치적 이유로 미국 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 휴대폰 기업군단이 규모의 경제에서 삼성을 뛰어넘는 일은 시간 문제다. 아마도 노키아의 몰락을 지켜 본 삼성 자신도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중국의 추격이 스마트폰 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B2B 전자부품 산업의 쌀알이라고 할 수 있는 반도체와 LCD 분야에서 중국은 한국을 많이 따라 왔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이미 우리를 앞질러 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반도체 기술과 인력이 지금도 중국으로 빠져 나가고 있다는 것은 업계에선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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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방문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왕촨푸 비야디(BYD) 회장,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 레이쥔 샤오미 회장, 선웨이 BBK(비보 모회사) 등 중국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나 전장·부품 등 신성장 산업에 대한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모두 중국을 대표하는 IT기업이다. 현지 언론에는 샤오미 매장을 방문해 스마트폰 제품을 꼼꼼히 살펴보는 이 부회장의 모습도 포착됐다. 한동안 경영 일선을 떠나 있던 이 부회장이 이들 CEO와의 만남을 통해 아마도 격변하는 미래 IT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흐름을 읽고 많은 생각과 결심을 세웠으리라 짐작된다.
미래에 다가올 위기를 미리 헷징할 수 있는 대비책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도저히 뿌리칠 수 없다면 중국 기업에 내줄 것은 내주고 협력 체제를 구축해 더 큰 그림을 그리는 것도 하나의 방책일 수 있겠다. 삼성전자는 전장 부품과 인공지능(AI) 산업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세계 최대 자동차-AI 시장인 중국은 경쟁자인 동시에 협력자일 수 있다. 최선의 길은 중국이 단숨에 쫓아올 수 없는 고도 기술의 최첨단 산업에 빨리 진출할 수 밖에 없다. 가령 나노산업, 생명공학(바이오), 에너지, 기계·부품·소재 산업 등 미래 산업의 목진지에 한발 더 먼저 가 있는 것이다. 그래야 중국 기업들이 아쉬워 우리 기업들을 찾을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지금 한국 수출경제를 이끌고 있는 반도체 산업처럼 말이다. 물론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쥐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주저 앉을 수는 없지 않는가. 삼성전자가 우리 중소기업과 함께 미래 먹거리에 더욱 집중하고, 이 부회장에게는 과감한 결단이 요구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