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삼성 보고서 공개', 더 큰 고비 남았다

디스플레이·배터리도 흔들…'산안법' 개정안에 업계 '전전긍긍'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18/04/20 16:38    수정: 2018/04/20 17:31

고용노동부가 결정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작업환경측정보고서' 공개가 보류되면서, 보고서 공개 여부는 이제 법원의 최종 판결에 맡겨지게 됐다. 법원의 최종 판단까지는 6개월에서 1년 가량 소요될 전망이다. 따라서 삼성전자는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영업비밀 공개라는 급박한 상황은 피하게 됐다.

다만, 법원의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새로운 정보공개 청구 요청이 이어질 수도 있어 업계가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반도체 외에도 디스플레이와 배터리 업계에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 불씨 남은 반도체 정보공개, 언제든 논란 재개

삼성전자 10나노급 8기가비트(Gb) DDR4 D램. (사진=삼성전자)

19일 수원지방법원 행정3부(당우증 부장판사)는 삼성전자가 고용부와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경기지청장 등을 상대로 낸 정보부분공개결정 취소소송의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고용부의 삼성전자 기흥·화성·평택 반도체공장의 작업환경보고서 공개 결정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수원지법은 이날 "신청인이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보고서를 공개할 경우, 신청인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수 있어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인정된다"며 "집행정지로 인해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자료도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에 따라 작업환경보고서의 공개 여부는 본안 소송의 확정판결에 따르게 됐다. 즉, 해당 보고서들은 정보부분공개결정 취소소송 선고가 날 때까지 공개될 수 없다. 통상 1심에 수개월이 걸리고 이후 심까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종 판결은 해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사진=삼성전자)

상황은 지난 17일부터 반전을 이루면서 산업계에 유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날 국민권익위원회 산하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삼성전자 온양·기흥·화성·평택공장과 구미 휴대폰 공장의 보고서 정보공개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같은날 반도체 학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산업통상자원부 반도체전문위원회도 해당 보고서에 30나노 이하급 '국가 핵심기술'이 포함돼 있다고 판정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일단은 큰 고비를 넘기게 됐다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황철성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교수는 "이 문제(반도체 정보공개)는 고용부에서 오랫동안 끌고 있었던 것인데, 그동안 산업 분야에선 방어 논리를 잘 세우지도 못했고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가 상황이 급박해져 문제가 된 것"이라며 "시간을 벌었으니 이제 이 문제를 충분히 토의해 결론을 내려야 한다. 일단은 지금처럼 (정부가) 일방적으로, 막무가내로 가는 것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전자도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사태를 예의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 한 관계자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 사안인 만큼, 또 다시 정보공개 신청이 들어오면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우려도 있다"며 "법원이 합리적인 판결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디스플레이·배터리 업계도 우려…더 큰 문제는 산안법"

삼성디스플레이 플렉시블 OLED. (사진=삼성디스플레이)

더 큰 문제는 디스플레이와 배터리 업계도 반도체 업계와 같은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에 이어 삼성디스플레이도 고용부의 작업환경보고서 공개 결정에 반발하고 법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 것. 같은 삼성전자 계열사인 삼성SDI도 비슷한 상황이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와 삼성SDI의 작업환경보고서에는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2차전지의 제조 공정에 대한 영업기밀이 기록돼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17일 대전지방법원에 대전고용노동청 천안지청을 상대로 아산 탕정공장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 공개를 막아달라는 내용의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 회사도 산업부에 보고서 내용이 국가 핵심기술에 해당하는 지 확인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삼성SDI는 다음달 14일 천안공장 보고서 공개에 앞서 집행정지 신청과 본안소송 등 구체적인 대응에 나섰다.

다만 디스플레이·배터리 업계는 법원과 산업부의 판단에 기대를 걸고 상황을 조심스럽게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앞서 법원과 산업부의 결정으로 제동이 걸린 반도체 업계의 정보공개 논란이 선례로 남았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OLED와 2차전지 역시 국가 핵심기술 여부를 가려볼 만 하다"며 "삼성전자의 행정소송 진행 상황을 지켜보면서 시의적절하게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업계는 법원의 판단으로 반도체 정보공개에 한숨을 돌리게 돼 일단은 다행이라면서도, 한편으론 더 큰 고비가 남아있어 우려된다는 반응이다. 고용부가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부개정안을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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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안법 전부개정안은 국내 기업체들이 사용하는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고용부에 우선 공개하고, 고용부는 이를 받아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온라인에 공개한다는 내용이다. 만약 개정안이 통과되면 그동안 국내 기업들의 핵심기술이라 할 수 있는 영업비밀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이어서 업계는 이를 주의깊게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개정안 내용대로라면 각 업체가 어떤 물질을 누구에게서 받아 어떤 식으로 공정하는 지 모든 게 알려지는 꼴"이라며 "기업의 핵심기술과 영업비밀 유출은 불 보듯 뻔한 일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