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온라인에서 우연히 유기농 생리대 정기배송 서비스 '해피문데이'에 대한 광고를 봤다. 당시 생리대 유해물질 논란으로 떠들썩했던 터라 좀 더 유심히 살펴봤다. 해피문데이는 유기농 생리대를 생리 날짜 3일 전에 정기 배송해주는 월경케어 서비스였다. 이슈가 됐던 독성 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검사 결과도 눈에 띄었다. 어떤 제품인지 궁금해 바로 체험팩을 신청했다.
며칠 후 귀여운 스티커가 부착된 택배가 도착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찾아온 그날에 해피문데이 생리대를 사용해봤다. 제품이 화려하진 않았지만 부드러웠고 편안했다. 무엇보다 기본에 충실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몇 달이 흘러 새해가 됐다. 지난달 4일, 해피문데이가 네이버 계열 초기 전문 벤처 캐피털인 스프링캠프로부터 시드머니 투자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마 전 써본 그 유기농 생리대 스타트업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렇게 해피문데이 김도진 대표를 만났다.
- 어떤 이유로 직접 생리대를 만들 생각을 했는지 궁금했다. 창업 스토리를 좀 풀어달라.
"중학교 2학년때부터 사업을 하고 싶었다. 당시 조안 리가 쓴 책 '스물셋의 사랑 마흔아홉의 성공'이라는 책을 읽고 저자와 뭔가 통한다는 걸 느꼈다. 멋있어 보였다. 나중에 커서 글로벌 사업자가 되고 싶었다.
휴학하고(김도진 대표는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인류학과를 복수전공 했다) 21세 때부터 랙션이라는 회사에서 일했다. 학교에선 큰 기업의 경영 얘기만 하더라. 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을 직접 배워보고 싶었다. 오픈서베이 초기 멤버로도 합류해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했고, 졸업 후엔 어떤사람들이란 회사를 공동 창업하면서 책 추천 서비스 '썸리스트'를 만들었다. 처음으로 죽을 힘을 다해 노력했는데 잘 안됐다. 자신감을 잃고 의욕도 없었다. 다시는 창업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더네스트앤컴퍼니라고 시드 단계 투자하는 회사에 들어가서 투자 업무를 배웠다. 그곳에서 신규 투자를 하는 것보다 기존 포트폴리오사를 도와주는 업무에 더 흥미를 느끼며 다시 플레이어로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생리대 기부 프로젝트에 동참했는데 이때부터 생리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생리통이 심하고 피부가 예민한 편이지만, 그동안 생리대가 개선돼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기부를 하더라도 좋은 생리대를 기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생리대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2016년 12월부터 준비했다. 생리대는 전성분 공개가 안되고 있지만, 점점 파고들었다. 유기농 생리대 브랜드를 분석했고, 만드는 공장도 가봤다. 생리대 공부한다고 떠들고 다니니까 생리대 관련 특허도 갖고 있고, 중국 등 해외서 사업하고 있는 사람도 만나게 됐다.
알고자 노력 하니 길이 보였다. 모르면 관련 논문을 찾아 읽고, 화학전공한 친구들 찾아서 물어봤다. 이렇게 제가 만들고 싶은 생리대 원부자재를 완성시켰다. 생리대 공장에 가서 만들어달라고 했지만, 우리나라 생리대 유해성 논란이 있기 전까진 공장에선 이런 유기농 제품은 안 만든다고 했었다.
돈도 부족했다. 제조를 해야 하니 최소 1억원은 필요했다. 자체 브랜드를 만들기엔 불가능했다. 우선 만들고 싶은 가장 비슷한 스팩의 생리대를 찾아 브랜드만 입혀서 지난해 8월 20일, 정식 서비스를 런칭했다. 3일 후, 유해물질 사태가 터지면서 대박 났다. 매출 기준 월평균 200%씩 성장했다. 올해 1월 기준 정기 구독자 약 2천명을 확보했다."
- 기자가 해피문데이를 주문한 시기가 지난해 9월이다. 그 때 생리대 유해물질 논란이 가장 고조됐던 시기다. 잘 될 줄 알았나.
"시간이 걸려도 차근차근 성장할 수 있겠다고 봤다. 이미 거대 독과점 브랜드가 있는 시장이고 상품 자체가 로열티도 높은 아이템이라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화장품도 10년 전부터 전성분 공개를 시작했고, 화해라는 앱도 나오지 않았나. 소비자들이 상품을 구매할 때 믿을만하고 안전한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고, 생리대를 고를 때에도 언젠간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작하자마자 너무 빨리 시장이 형성됐다. 전 세계적으로 지사를 두고 있는 공인된 인증기관 SGS에 해피문데이 생리대 오레이디를 의뢰한 결과, 가장 이슈가 됐던 생식 독성 물질인 스타이렌, 톨루엔과 발암물질 벤젠을 포함해 모두 미검출 결과를 받았다. 생리대 완제품에 대한 VOCs(휘발성 유기화합물) 테스트는 기존에 진행되었던 적이 없는 실험이라 관련 교수님한테 부탁하기도 했다.
물류나 CS가 안정화 되기 전인데 문의가 너무 많이 들어왔다. 제품은 중국 공장에서 가지고 오는데, 관리도 힘들었다. 마케팅은 검색어에 걸릴 정도만 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투자는 네이버 자회사 스프링캠프로부터 9월 중순 정도에 받았지만, 발표할 정신도 없었다."
- 이젠 투자 소식을 발표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나? 어떻게 투자를 받았나
"지난해엔 택배 보내느라 정신 없었는데 이젠 물류 서비스가 안정화 됐다. 사업 초반에 생리대 부작용을 겪었던 사람들이 불안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오는걸 보고 '마케팅 할 때가 아니다. 더 신중하고 까다롭게 하자'고 마음먹었다.
생리대 스타트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다들 대기업끼리 싸움에서 버틸 수 있겠냐고 말했다. 사실 IR하러 다닐 시간도 없었다. 투자는 남홍규 스프링캠프 부대표가 주도했는데, 해피문데이의 비전과 방향성에 대해 굉장히 공감했다. 진정성이 있으면 이런 기회가 올 거라 생각했다."
- 투자 받고선 어떤 점이 달라졌나.
"투자 받은 후 중국 공장에서 완성품을 갖고 오는 대신 국내 공장에서 직접 생산하기 시작했다. 당초 중국에서 보수적으로 물량을 갖고 왔는데, 금방 동이 났다.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선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투자받은 자금은 마케팅보단 R&D에 쏟아 부었다. 마케팅 비용은 크게 안 잡았다. 통기성 필름을 생분해성 필름으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 가격대가 비싸서 제품 적용이 힘든 부분이었다. 결국 원부자재 싸움이다. 제품을 발전시키는 게 중요하다."
- 유기농 생리대를 만들면서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 같다.
"생리대를 만드는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서 디시즌 메이커(의사결정권자)는 남성이다. 공장장들이 "김사장이 아직 몰라서 그러는데, 이렇게 하는 회사 없어"라고 말했다. 유난 떤다 했다. 다들 잘 쓰고 있는데 왜 여기만 다르게 하려고 하냐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유통 마진 다 줄이고 또 줄인 가격으로 좋은 원자재를 쓰려고 했다. 안정화가 될수록 가격을 더 낮출 수 있는 방향을 찾고 있다. 퀄리티를 포기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생리대는 생필품이다. 좋은 제품을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 홈페이지에서 초경 가이드북 기부에 대한 내용을 봤다. 초경 가이드북이라니, 생소하다.
"월경 문화가 여성 주체성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생리대를 기부하면서 느꼈는데, 생리대가 필요한 어린 친구들은 부모님으로부터 케어를 잘 못 받는 경우가 많다. 어렸을 때를 생각해봐도 생리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생리통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있듯이 증상도 다 다르고 스팩트럼도 정말 넓은데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초경 가이드북 어바웃 문데이는 한부모 가정 소녀들을 위한 책이다. 생리대 구매뿐만 아니라 생리를 시작할 때 이를 어찌 받아들이고 또 어떻게 적응해가야 하는지를 안내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실용적이고 실질적인 월경 가이드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작가팀 7명을 모아 텀블벅에 펀딩을 진행했다. 월경용품에 대한 소개와 사용방법에 대한 안내로 시작해, 월경의 원리와 주의사항, 여러 가지 증상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담았다. 또한 월경을 둘러싼 담론도 소개했다.
펀딩으로 초경 가이드북의 인쇄 제작비 마련과 함께 450권의 기부용 책이 준비됐다. 소셜 데이팅 서비스 아만다를 운영하는 넥스트매치에서 동참 의사를 밝혀 100권의 책이 추가돼, 총 550권의 책을 기부할 수 있었다."
- 해피문데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나
"생리라는 단어는 생리 현상에서 온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칭하고 싶었다. 월경, menstruation(멘스트레이션) 등 모두 달과 연관 지어 있으니 문데이라는 이름을 생각해냈다. 아쉽지만 문데이닷컴 도메인은 주인이 있었다. 이 날 만은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에 앞에 ‘해피’를 붙여 해피문데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 해피문데이를 어떤 회사로 만들고 싶나
"메이드인 코리아 제품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 한국처럼 나라 전체가 들썩이며 생리대를 검사한 곳도 없다. 외국 브랜드 낀 합작 법인이 아닌, 우리나라 순수 브랜드로서 우리만의 철학을 갖고 사업하고 싶다.
이를 위해 먼저 해피문데이 생리대를 중동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중동은 날씨도 덥고, 습하기 때문에 그날 피부 트러블이 더 심하다고 한다. 한국만큼 여성들의 표현이 적극적이지 않고 제품 개선도 잘 안되는 시장이다. 마트에 가서 생리대를 사려고 해도, 생리대를 집어든 순간 남자가 지나가면 제품을 두고 돌아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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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빅이라는 카타르 국영 비즈니스 엑셀러레이터 센터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 곳에서 유기농 생리대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했는데, 발표 후 문의가 많이 왔다. 중동은 생리대 옵션도 없고 정보도 부족하다. 일단 오프라인 유통 채널 중심으로 수출 하기 시작했다. 쿠웨이트랑 카타르를 시작으로 정기 배송 서비스도 준비중이다.
앞으로 할 일이 많다. 부인과 정보를 책보는 느낌으로 데이터베이스화 해 제공하고 싶기도 하다. 패드가 하나 팔릴 때마다 1원씩 모으고 싶다. 제품 가격을 높이지 않고 기부하고 싶다. 월경에 대한 문화를 선도할 수 있는 그런 기업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