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로 공방은 전초전…필수설비 전쟁 시작됐다

5G에선 유선 경쟁력 더 중요…개방 이슈 터지나

방송/통신입력 :2018/01/04 07:24    수정: 2018/01/04 07:31

지난 연말 KT와 SK텔레콤 사이 ‘관로 공방'이 전초전이었다면, 올해는 국정과제로 추진되는 ‘필수설비 공동 활용’을 놓고 양사의 전면전이 예상된다.

KT가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란 명분을 내세우긴 했지만, 경쟁사를 고소하고 내용증명을 발송하는 등 이례적인 행보를 한 것도 향후 필수설비 논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일종의 기선잡기였다는 게 업계의 해석이다.

SK텔레콤 역시 박정호 사장이 신년사에서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에 라스트 마일 확보 방안을 주문하면서, 향후 필수설비 공방이 격렬할 것임을 예고한 상태다.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5G의 전국망 조기구축을 위한 방안으로 올 상반기까지 ‘전기통신회선설비(관로나 전주, 광케이블) 공동 활용과 구축 제도개선’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통신사 간 중복투자를 방지하고 설비투자 유인책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과기정통부 측의 설명이다.

지난달 KT는 SK텔레콤이 IBC 센터 인근 방송통신 중계망을 절단했다며 고소했다

■ 정부 크림 스키밍 조장?

과기정통부는 가장 많은 필수설비를 보유한 KT의 반발을 최소화하고 사업자 간 설비 경쟁을 유지하기 위해 도심지역은 기존과 같은 정책을 유지하되, 구도심과 농어촌 지역에서만 통신설비 공동구축 활용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또, 무선설비의 경우에도 도서, 산간, 농어촌 등 취약지역에 공동 구축해 활용토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즉, 통신사 간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도심지역에서의 필수설비 경쟁은 그대로 두되 수익률이 낮아 사업자가 투자를 꺼리를 지역에서만 필수설비 개방이나 공동구축 제도를 적용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 취지가 불필요한 자원 낭비를 막고 효율적인 통신설비 구축이 목적이라면 필수설비 개방이나 공동구축 제도가 취약지역이 아닌 도심지역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정부가 통신사에게 소위 돈 되는 지역에만 설비를 구축하거나 상품 판매를 하는 '크림 스키밍(Cream Skimming)'을 조장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신축 건물이나 신도시의 경우에는 사업자들이 모두 경쟁적으로 설비투자를 하기 때문에 필수설비 개방 다툼이 적다”며 “KT와 경쟁사 간 다툼의 대부분은 오래된 건물이나 구도시, 인구가 적은 농어촌 지역에서 발생됐던 것인데 정부가 예민한 이슈만 피해가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필수설비 두 마리 토끼 잡는다?

정부가 이처럼 사업자 간 공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필수설비 개방이나 공동 구축 정책을 마련하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설비기반 경쟁과 공동 구축 활용 중 한 가지 정책에 무게중심을 두질 않고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투자 활성화와 5G 조기 구축 과제를 모두 달성하려다 보니 방향성이 모호해졌다.

과기정통부가 필수설비와 관련해 공동 구축 얘기만 꺼냈을 뿐 개방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 언급을 내놓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 하나는 각 통신사에서 일감을 받아야 하는 통신공사 하청업체들의 반발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이미 정부는 5년 전 KT의 관로 등 필수설비 개방을 위한 고시 개정을 앞두고 통신사들의 하청업체 간 다툼으로 홍역을 치룬바 있다.

당시 정부의 KT 필수설비 개방에 대한 고시 개정 초안은 ‘의무제공대상설비’와 관련, 관로의 여유 공간을 150%에서 120%로, 대상 설비를 2004년 구축 설비에서 3년 이상 된 구축설비 등으로 확대하는 안이었다.

하지만 필수설비를 공동 활용할 경우 일감이 줄어든다는 KT 하청업체들의 반발로 인해 관로는 135%(비인입구간 관로는 137%), 대상은 3년 이상 된 구축설비로 하되 2006년 이후 구축하는 광케이블은 의무제공대상설비에 제외되는 것으로 결정됐다.

■ 5G 무선보다 유선 경쟁력 좌우

각각 유무선 1위 사업자인 KT와 SK텔레콤이 필수설비 개방이나 공동구축 이슈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5G에서는 무선보다 유선 경쟁력이 좌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동안 황금주파수로 불렸던 800~900MHz 대역이나 3G와 4G에 쓰였던 1.8GHz, 2.1GHz, 2.6GHz와 달리 5G는 3.5GHz의 고주파대역과 27~29GHz의 초고주파대역을 사용한다.

주파수의 도달거리나 회절성이 크게 떨어지는 만큼 도심에도 기지국을 촘촘히 설치해야 한다. 여기에 무선에서 기가급 전송속도를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뒷받침할 광케이블의 설치 역시 중요하다. 5G에선 무선보다 유선 경쟁력이 우선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관련기사

하지만 정부가 5G 조기구축을 내세우면서도 유무선 모두 필수설비 개방이나 공동구축 논의를 도서, 산간, 농어촌 등 취약지역으로만 제한한 상태여서 어느 정도의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 미지수다.

업계 한 전문가는 “촘촘하게 기지국 설계를 해야 되기 때문에 돈이 안 되는 취약지역에 필수설비를 공동 구축하는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정부가 5G 조기구축을 기반으로 ICT 산업이나 4차 혁명을 선도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구도심이나 구건물에 대한 인입설비에 대한 공동 활용 문제, 이동망의 확장, 로밍 여부를 언급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