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사, 정부, 시민단체, 알뜰폰 업계 간에 보편요금제 논의가 시작됐지만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
이통사와 알뜰폰 업계는 정부가 통신요금을 결정하는 보편요금제가 시장경쟁을 실종시키고, 경영악화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소비자 시민단체는 통신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보편요금제를 법으로 도입하자고 요구했다.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는 22일 오후 서울 역삼동 국가과학기술회관에서 제5차 회의를 열고, 보편요금제와 관련한 이해관계자 입장을 논의했다.
■ 이통사 “정부의 과도한 시장개입”
이통사는 통신비 부담을 경감한다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보편요금제는 정부의 과도한 시장개입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보편요금제는 민간회사의 통신서비스 요금과 데이터 제공량을 정부가 정하는 방식이다. 또 한번 정해두는 것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정부가 요금설정권을 갖게 된다.
때문에 이통사는 정부가 추진해온 시장경쟁 활성화라는 정책 기조에도 역행한다고 반발했다.
과도한 규제라는 의견도 나왔다. 보편요금제는 외국의 규제 사례와 비교할 때 매우 과도하고 인위적인 가격 결정에 따라 시장 경쟁을 제한할 수 있다는 부분이 문제점으로 꼽혔다.
통신사의 적극적인 투자로 인프라 경쟁을 해왔던 것과 달리 보편요금제를 도입할 경우 경영악화에 따라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5G 통신이나 R&D도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통사와 함께 알뜰폰 업계도 보편요금제 도입에 반대 의사를 보였다.
알뜰통신협회 측은 보편요금제 도입할 경우 알뜰폰 사업자의 주력 요금제가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즉 정부가 도입하려는 보편요금제 수준을 이미 제공하고 있는데 정부의 입법 추진으로 알뜰폰 사업자의 경영이 불가능해질 것이란 설명이다.
협회는 또 보편요금제의 대안으로 알뜰폰 활성화를 추진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전파사용료 감면과 도매대가 산정 방식 개선, 유통망과 홍보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다.
■ 시민단체, 보편요금제로 통신비 부담 줄여야
협의회 위원으로 참가한 소비자 시민단체는 완전자급제에 이어 보편요금제 논의에서도 사전 통일된 의견을 냈다.
소비자 시민단체는 이통사들이 저가 요금제에서 경쟁을 강화하고 기존 요금제를 순차적으로 인하시킬 수 있는 보편요금제가 도입돼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나아가 월 2만원에 음성 200분, 데이터 1GB 선에서 논의되고 있는 보편요금제의 데이터 제공량이나 음성통화량을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협의회에 참여한 정부 위원은 고가요금제에만 치중되고 있는 경쟁이 저가요금제에서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시장 경쟁이 제한적이고 이용자 차별이 심화되면서 소비자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아 시장실패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에 따라 통신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취지에서 보편요금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 보편요금제가 불러온 알뜰폰 딜레마
정부가 진행중인 보편요금제 입법안이 이뤄질 경우 알뜰폰이 사실상 경영이 불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때문에 정부도 이 점은 고려하고 있다.
회의 종료 직후 전성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정책국장은 “법 안에도 알뜰폰 사업자의 도매대가 특례를 도입하는 조문이 들어있고, 이 고민은 정부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전성배 국장은 또 “(알뜰폰을 도입해 저가요금제로 경쟁을 유도한 것보다는) 이동통신 산업이 설비 중심 경쟁을 하는데 자연독점에 의한 진입장벽이 굉장히 높다”며 “경쟁이 제한적이다 보니 설비가 없이도 접근할 수 있는게 알뜰폰이었다”고 덧붙였다.
강병민 협의회 위원장 역시 “알뜰폰 기반이 무너지면 시장 구성이 무너지는 것”이라며 “특례도 정부가 고려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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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협의회는 보편요금제 추가 논의를 내년 1월12일에 다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이해관계자에 따라 의견 폭을 좁히는 것보다 보다 상세한 입장을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8월 과기정통부가 입법예고한 보편요금제 도입 근거인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현재 규제개혁위원회 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규개위의 심사는 협의회에서 나온 논의를 바탕으로 다시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