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망중립성 폐지…“당장 큰 영향 없다”

오픈넷 토론회…“인터넷 공공재 가치 위한 장기 노력 필요”

인터넷입력 :2017/12/20 17:00

망중립성 원칙을 둘러싼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지난 14일(현지시간) 오바마 시절 확립된 강력한 망중립성 원칙을 사실상 폐기한 것이 계기가 됐다.

통신망 제공사업자는 모든 콘텐츠를 동등하고 차별 없이 다뤄야 한다는 것이 망중립성 원칙의 핵심. 이런 방어막이 사라질 경우 시장경제 논리에 따라 콘텐츠 사업자들이 차별 받아 그 피해가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의 망중립성 폐지가 미칠 파장을 살펴보는 오픈넷 주최 토론회에서 오승한 아주대 교수(가운데)가 발언하고 있다. 이 토론회에는 김익현 지디넷 미디어연구소장(오른쪽)과 이상욱 한양대 철학과 교수(왼쪽)도 자리를 함께 했다.

인터넷 진보단체인 오픈넷은 지난 19일 저녁 삼성동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엔스페이스에서 열린 ‘망중립성의 미래는?’ 토론회에선 이런 주제를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박지환 오픈넷 자문변호사 사회로 열린 이날 토론회에는 오승한 아주대 법학대학원 교수와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이 발제를 맡았다.

여기에 이상욱 한양대 철학과 교수가 토론자로 함께 참여해 미국 망중립성 원칙 폐기의 의미와 파장에 대해 논의했다.

■ 망중립성 폐기, 내년 3월쯤 발효...급격한 변화 없을 것

이날 참석한 전문가들은 미국발 망중립성 폐기 소식에 국내 언론과 업계가 지나치게 과열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을 제기했다.

하지만 향후 파장에 대해선 다소 엇갈린 분석을 내놨다.

이상욱 교수는 공공재인 인터넷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장기적인 관심과 노력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지금 당장은 큰 변화를 불러오진 않겠지만 원칙이 한번 무너지게 되면 장기적인 파장은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네바 학회 참석 중 화상통화로 토론에 참여한 고려대 법학대학원 박경신 교수 역시 망중립성 원칙 폐기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반면 오승한 변호사는 "망중립성 원칙 하에서도 이미 합리적 차별이 가능했다" 면서 "미국의 망중립성 원칙 폐기는 급진적인 결정이 아닌 통신 환경 변화에 따른 시대적 흐름"이라고 주장했다.

김익현 소장 역시 "국내 언론이나 업계, 정부가 미국 조치에 지나치게 과민 반응할 필요는 없다"면서 "FCC의 강력했던 규제 대신 연방거래위원회(FTC)를 중심으로 한 경쟁법 규제가 도입될 경우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 지 벤치마킹할 좋은 사례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디넷코리아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이날 토론회에서 김익현 소장은 ‘미국 망중립성 공방 전개 과정과 파장’이란 주제로 발제했다. 이 발제에서 김 소장은 FCC가 망중립성 원칙 폐기를 결정하게 된 배경과 과정들을 상세히 설명했다.

김 소장은 망중립성 공방의 중요한 근거 중 하나로 FCC가 2002년 내놓은 케이블모뎀 규칙을 꼽았다. 당시 FCC는 케이블 인터넷 서비스를 정보 서비스로 분류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2005년 FCC의 산업 분류를 합법적인 권한 행사로 인정했다.

김 소장은 "아짓 파이 FCC 위원장이 제안한 인터넷자유회복 문건에는 이 부분이 중요하게 강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결정의 또 다른 중요한 계기는 2015년 FCC가 내놓은 오픈인터넷규칙이다. 한해 전 항소법원 소송에서 패소했던 FCC는 인터넷서비스플랫폼(ISP) 사업자들을 타이틀2로 분류하는 강력한 조치를 내놨다. 이 조치로 ISP들은 강력한 커먼 캐리어 의무(망중립성 의무 근거)를 갖게 됐다.

이번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공화당 출신 위주로 꾸려진 FCC의 망중립성 폐기는 ISP들을 타이틀2에서 타이틀1로 원상복귀시키는 결정이다.

이런 조치가 갖는 의미는 뭘까? 이에 대해 김 소장은 FCC의 강력한 망중립성 원칙 대신 FTC가 중심이 된 경쟁법 규제가 발효된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정해진 절차를 거쳐 내년 3월경 망중립성 폐기가 발효되면 ISP들은 FCC의 강력한 사전규제 대신, 미국의 공정거래기구 중 하나인 미국연방통상위원회(FTC)의 사후규제를 받게 된다.

만약 이 과정에서 명백한 소비자의 피해가 발생하거나 불공정한 경쟁으로 폐해가 나타나면 독점규제법에 따라 경쟁당국인 FTC가 나서 규제할 수 있다.

먼저 ISP들의 망차별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후규제 기관인 FTC가 이를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느냐는 게 앞으로 관심사란 얘기다.

김 소장은 외신인 더버지의 보도를 인용 “ISP들이 달라진 상황을 조금씩 실험할 할 텐데, 과연 FTC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FCC가 2년 만에 망중립성 원칙을 완전히 뒤집으면서 미국 현지에선 소송 얘기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트럼프 행정부의 망중립성 원칙 폐기는 그대로 확정될 수 있을까?

이에 김익현 소장은 “법적 공방은 있겠지만 소송에 있어 입증 책임의 어려움, 미국 의회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공화당 세력, 주 단위 입법 금지 조항 등에 따라 FCC 결정을 뒤집는 건 사실상 힘든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김소장은 현재 미국에서 제기되는 움직임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뉴욕주 검찰 등이 주도하는 망중립성 폐기 관련 소송 ▲미국 의회가 ‘의회검토법’(CRA)에 따라 재심 추진 ▲주별로 망중립성 강제하는 입법 시도 등이 그것들이다.

하지만 현재 미국 의회 상황이나 FCC 같은 기관의 전문적 판단을 존중하는 법원 성향 등을 감안할 때 이번 결정을 뒤집는 건 사실상 힘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김 소장은 “연방관보 게재 후 60일 이후 정책이 발효되는 전례로 비춰봤을 때 망중립성 폐지 정책이 내년 3월을 전후해서 발효될 것"이라면서 "관심이 집중된만큼 당분간은 시장에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5명으로 구성된 미국 연방통신위원회. 가운데가 아짓 파이 위원장이다. (사진=FCC)

다만 시장 패러다임이 바뀌고 신규 서비스들이 출시되면서 망중립성 폐지 결정이 시장에 조금씩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또 플랫폼과 콘텐츠 간 결합, 서비스 품질 저하가 아닌 자사 우대로의 시장 재편 등은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현재 FTC가 AT&T와 진행하고 있는 소송 역시 변수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FTC가 패소할 경우 AT&T 같은 타이틀1 소속 기업들의 정보 서비스 행위에 대한 규제 권한을 상실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익현 소장은 “망중립성은 인터넷 환경변화에 따라 진화하는 개념으로, 현실을 감안해 탄력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 언론들조차 당장 큰 변화는 없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인데, 국내 언론보도와 업계 반응은 모두 과열된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한양대학교 이상욱 교수는 “망중립성 폐기에 따른 변화는 점진적으로 이뤄질 거고, 한국과 미국의 환경이나 법도 다르기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에 대한 고민은 장기적으로 해야 한다”며 “망중립성이 추구했던 정신과, 인터넷이 공공재로 남아있을 때 바람직한 요인들을 파악하고 이를 어떻게 지켜갈까 고민, 이에 맞는 보완장치들을 고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김익현 소장은 “인터넷은 글로벌 이슈지만, 인터넷 정책은 철저한 지역 이슈”라면서 “이번 FCC 결정은 강력했던 사전규제가 경쟁법과 소비자보호법 등 사후규제로 바뀌었을 때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살펴볼 좋은 기회”라고 강조했다.

■ 지금도 합리적 차별 가능…망중립성 폐지는 시대적 변화

아주대학교 오승한 경제법 전공 교수는 망중립성 원칙과 독점규제법을 비교, 설명한 뒤 통신 환경 변화에 따라 망중립성 원칙이 다르게 적용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언급했다.

먼저 오 교수는 충분한 권한을 주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면 규제하는 것이 독점규제법이라면, 망중립성 원칙은 일단 차별하면 금지한다는 차원에서 강력한 사전 규제라고 정의했다.

또 그는 망중립성 원칙 하에서도 특정한 항목에 한해 합리적 차별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네트워크 관리 목적이나 디도스 공격을 막기 위해, 또 소비자에게 큰 차단 효과가 없다면 비용을 줄이는 쪽으로, 아울러 사용자에게 미리 통지했음에도 해당 서비스를 선택했다면 차별 행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IPTV처럼 특화된 별도 망에서는 돈을 더 받고 초고속 서비스를 할 수 있어 합리적 차별이 이전부터 인정돼 왔다는 설명이다.

오승한 교수는 “망중립성 원칙 초기와 달리 합리적인 차별이 용인되는 분위기”라면서 “FCC도 통신사의 데이터 후원 서비스인 제로레이팅의 경우 사례별로 위법성을 판단했는데, 이는 결국 제로레이팅을 허용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또 오 교수는 미국은 케이블TV 회사가 방송망을 이용해 초고속 인터넷을 서비스하기 때문에 커먼 캐리어 규제의 어려움이 있고, 5G 시대에 다 똑같은 속도를 내라는 건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밝혔다.

오승한 교수는 “망중립성 폐지는 트럼프가 급진파라서기 보다는 시대적 변화로 보는 것이 맞다”며 “다만 급변하는 IT 시대에 사후규제 시 경쟁당국이 독점규제법으로 이를 신속히,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역량을 확보하는 게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그는 전기나 가스처럼 제공만 하면 끝나는 공공재 서비스와 달리, 인터넷은 고품질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업자들에게 의무만 부과할 것이 아니라 일종의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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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교수는 “인터넷 품질을 계속 높여야 하는 통신사들에게 인센티브 요소가 주어지지 않으면 사업자들은 기존처럼 캐시 서버 임차료든, 백본망 속도를 더 빠르게 하는 대가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며 “사회적 합의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최소 속도를 보장하고, 그 윗 단계는 사업자 간 논의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경신 교수는 “미국 상황에 관심을 가지면서 미국 망중립성 입법 목표는 무엇이었고, 우리나라는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면서 “우리 정부도 공정거래법 사고를 가진 인력을 보강하고 소비자 편익과 방송통신시장 정당성 등을 점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