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난에 빠진 일본 도시바가 과거 회사에 영광을 안겼던 사업들을 하나둘 내보내고 있다. 돈이 안 되는 사업을 전부 매각해 재무 건전화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도시바의 전략은 최근 재기에 성공한 소니의 구조조정과 닮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전날 TV사업을 중국 하이센스 그룹에 매각한 도시바는 이번엔 PC사업부 매각을 서두르고 있다. 최종 목표는 내년 3월 자사 영업이익의 90%를 차지하는 반도체 사업 매각이다.
■ TV이어 PC도…돈 안되면 모두 버린다
현재 구조조정의 칼날을 손에 쥐고 있는 인물은 히라타 마사요시 도시바 최고재무책임자(CFO·전무)다. 그는 지난 9일 도시바 실적발표 기자회견에서 "현재 자본확충안을 검토하고 있고, TV·PC 등 적자를 면치 못하는 사업은 전면 재조정할 것"이라며 곧 강력한 구조조정이 도래할 것임을 시사했다.
닷새 후인 14일 도시바는 '레그자(REGZA)' 브랜드로 TV를 제조·판매하는 자회사 '도시바영상솔루션' 지분 95%를 중국 하이센스에 약 129억 엔(약 1269억 원)에 넘기기로 했다. 내년 2월 말 매각 작업이 완료될 예정이다.
레그자 TV는 한국, 중국 업체들의 가격 공세에 밀려 연간 약 60만대 판매에 그치고 있다. 이 마저도 자국 내 판매량이 대부분이다. '국산을 애용하자'는 애국(愛國) 마케팅 전략을 펼친 결과다. 지난 2014년에 도시바의 TV가 전세계에서 판매량 500만대를 넘긴 것과 대비된다.
이런 이유로 도시바영상솔루션은 지난해 회사 실적에서 약 118억 엔(약 1천148억원) 규모의 자본잠식에 빠진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올해도 손실을 볼 경우 7년 연속 적자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도시바가 이 회사를 매각했을 때 추산되는 이익은 총 250억 엔(약 2천434억원)에 이를 것으로 알려졌다.
히라타 전무의 다음 타깃은 도시바의 또 다른 자랑이었던 퍼스널컴퓨터(PC) 사업이다. 도시바는 세계 최초로 노트북을 상품화했다. PC는 그야말로 핵심 중의 핵심 사업이었다. 이어 히라타 전무는 사회인 야구나 럭비 등 기업스포츠팀 운영 등 소규모 사업까지 정비하겠다고 강조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10일 도시바가 PC와 TV 사업을 철수하기로 했다고 보도하면서 "현재 이 회사의 경영 상황이 어느 정도로 어려운지 가늠해볼 수 있다"고 보도했다.
■ 소니와 닮은 구조개혁…반도체 없이 회생 가능할까
업계는 도시바와 소니의 회생 전략이 비슷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른바 '선택과 집중'이다.
지난 1990년대 초반까지 일본의 경제 성장에 힘입어 전자업계의 최강자로 부상했던 소니는 2000년대 들어 TV, 음향, 영상사업 등 모든 분야에서 삼성과 LG 등에 밀렸다. 재기할 새도 없이 중국 업체들이 진입해 시장을 빼앗겼다.
한동안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소니는 2012년 히라이 카즈오 최고경영자(CEO)의 주도 하에 대규모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히라이 CEO는 노트북(바이오), 오디오(워크맨) 등 주력 사업들을 가차없이 분사했다. 그 대신 소니는 광학 이미징 센서 사업에 투자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쳤다. 애플과 삼성전자 등 주요 세트 업체에 이미지 센서를 공급하기 시작한 것.
그 결과 이 회사는 지난해 말 기준 글로벌 이미지센서 시장 점유율 45.8%를 기록, 2위인 삼성전자(19.8%)를 크게 앞서게 됐다.
실적도 대폭 개선됐다. 지난달 31일 소니는 올해 상반기 회계연도(4~9월)에 매출 3조9천206억 엔(약 38조2천억원)과 영업이익 3천618억 엔(약 3조5천억원)의 호실적을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영업이익은 지난해 대비 약 340%가 증가했다. 70여 년 역사상 최고 실적이었다.
그러나 도시바의 전략이 실제로 통할 지는 미지수로 남는다. 도시바는 향후 전자제품 사업에서 벗어나 4차 산업혁명시대 사회 인프라 사업으로 다시 발돋움하겠다는 계획이다. 발전 시스템과 엘리베이터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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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업계에서는 이러다가 도시바가 엘리베이터 회사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조롱까지 나온다. 반도체 같은 미래 먹거리 사업이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도시바는 소니의 구조조정 전략과 같은 노선을 걸으려고 하고 있지만 잘 될지는 알수 없다"며 "남은 사업들로만 어느 정도의 수익을 낼 지가 관건"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