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시바가 반도체 사업을 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연합'에 매각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SK하이닉스가 도시바를 인수하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전망이 나왔다.
도시바는 20일 이사회를 열고 반도체 자회사 '도시바메모리'를 한미일연합 컨소시엄에 매각키로 최종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액은 자그마치 약 2조4천억 엔(약 25조 원).
같은 날, 업계는 도시바의 이 같은 결정을 기쁨 반, 우려 반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중국계 업체에 도시바 메모리 기술이 넘어가지 않는 것에 환영하면서도, 각국의 독점금지법 심사와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의 방해 공작이 염려되는 까닭이다.
■ "반독점심사·WD 소송 결과…최대 변수될 것"
도시바가 이날 이사회를 통해 한미일연합의 도시바메모리 인수를 최종 확정지으면서, 인수 절차는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 웨스턴디지털이라는 변수가 존재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도시바가 이사회를 통해 한미일연합에 인수하겠다고 승인하더라도, 웨스턴디지털 측과 벌이고 있는 소송 결과가 다시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며 "최종 계약 이후 각국의 반독점심사가 길어질 전망도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웨스턴디지털이 도시바에 또 다른 파격 제안을 할 가능성도 무시 못한다"며 "도시바메모리 매각은 도시바 이사회보다 일본 정부와 채권단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상황이 반전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각국의 반독점심사 또한 SK하이닉스가 넘어야 할 큰 산이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이번 인수전서 아쉽게 밀려난 미국과 중국 측 심사다. 이들 국가는 도시바의 동종업체인 SK하이닉스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전망이다.
통상 반독점심사에 6개월 정도 소요되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중국과 미국에서 1년 넘게 계류될 가능성도 높다.
■ 투자 대비 실익 없을 가능성도 높다
이런 가운데, SK하이닉스가 한미일연합에 속한 기업들과 공동으로 도시바를 인수한다고 해도 투자한 금액 이상의 소득은 얻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약 2천억 엔(약 2조300억원)을 컨소시엄에 전환사채(CB) 형태로 투자한다.
그러나 일본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도시바는 도시바메모리의 지분구조를 베인캐피탈 49.9%, 도시바 40%, 일본 기업 10.1% 수준으로 설정했다. SK하이닉스에 할당된 지분율은 없거나 최대 15%에 그친다.
만약 SK하이닉스가 운 좋게 15%의 지분율을 가져가더라도, 향후 의결권 확보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 업계 "도시바 인수, 中 등 후발주자 진입 막는 것…일단은 긍정적"
이 같이 도시바 인수전을 둘러싼 우려 속에서도 일단은 긍정적이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업계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실리 경영과 박정호 SKT 사장의 추진력이 통했다는 평가다.
업계 한 관계자는 "SK하이닉스는 해외기업으로의 매각을 반대하는 일본 내 여론을 최대한 고려해 도시바의 마음을 돌렸다"며 "이는 웨스턴디지털처럼 경영권 확보만을 보지 않고 상생, 시너지 전략을 펼친 최 회장의 경영 감각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의 도시바메모리 공동 인수로 중국 등 후발주자의 맹공을 한동안 막을 수 있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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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낸드플래시 점유율 4위인 SK하이닉스는 당장 1위로 올라서는 것보다 '뉴 플레이어'들의 진입을 막는 것이 더 우선돼야 한다는 시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만약 중국계 업체가 도시바메모리를 인수할 경우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물량 공세에 나설 가능성이 높았다"며 "이는 아직 더 위로 올라가야할 위치에 있는 SK하이닉스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