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담론’이 확산되면서 ‘작지만 강한 기업’들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물론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들은 여전히 한국 경제의 한 축을 든든하게 지탱하고 있다. 20세기 고도성장을 이끌었던 그들은 지금도 세계 시장에서 한국을 대표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 패러다임이 달라지면서 그들의 틈새를 메워줄 강소기업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컴퓨팅 기술과 모바일 플랫폼 확산으로 인한 초연결사회의 도래. 또 다른 하나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같은 새로운 기술이 몰고올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다.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선 대기업 중심의 수출주도형 모델을 보완해줄 또 다른 성장 동력이 필요하다. 그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것이 강소기업들이다.
여기에다 전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일자리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강소기업들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 어떤 기업이 강소기업인가?
강소기업이 미래 성장 동력이란 명제엔 누구나 동의한다. 하지만 막상 강소기업이 어떤 기업이냐고 질문하면 선뜻 대답하기 쉽지 않다.
강소기업은 ‘작지만 강한 기업’을 지칭하는 용어다. 작다는 건 매출액 규모로 쉽게 규정할 수 있다. 국내에선 매출 5조원이 준대기업집단과 중소기업을 가르는 기준이다.
그렇다면 강소기업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인 ’강한 기업’이란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할까? 이 질문에 답하는 건 간단하지 않다.
단순히 돈 잘 번다고 강소기업으로 분류하는 건 적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이 제시한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에서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지몬은 1996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게재한 ‘히든 챔피언’이란 논문을 통해 중간 규모 회사들 중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을 분석했다.
지몬은 이 연구에서 ‘히든 챔피언’의 조건을 크게 여섯 가지로 제시했다.
1. 전 세계 시장을 지배할 것.
2. 눈에 띄게 규모가 성장하고 있을 것.
3. 생존능력이 탁월할 것.
4.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제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할 것.
5. 진정한 의미의 다국적 기업과 경쟁할 것.
6. 성공하고 있지만 기적을 이루는 기업은 아닐 것.
지몬은 히든 챔피언의 매출 기준도 제시했다. 처음엔 연간 매출 30억 유로란 기준을 제시했다가 나중에 50억 유로까지 확대 적용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지몬의 히든 챔피언은 요즘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 강소기업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해도 크게 그르진 않을 것 같다.
실제로 지몬이 제시한 ‘히든 챔피언’은 작지만 강한 기업을 통칭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인더스트리 4.0이란 국가 차원의 제조업 부활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독일에선 히든 챔피언이 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몬은 2012년 히든 챔피언 조건에 해당하는 세계 기업 2천700여 개 중 독일 기업이 1천298개에 이른다고 밝혔다.
많은 학자들은 지몬의 연구를 토대로 자기 나라 강소기업 현황 연구를 수행했다. 이런 연구들은 중소기업 정책의 이론적 바탕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따라서 히든 챔피언은 강소기업을 논의하는 중요한 이론적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 왜 강소기업인가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왜 다시 ‘강소기업’에 관심이 쏠리는 걸까?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일자리 문제다. 탄탄한 중소기업이 많을수록 일자리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중견기업연구원의 김경아 연구원은 2016년 발표한 ‘국내 글로벌 강소기업들의 특성에 관한 연구’에선 이런 현상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 논문에 따르면 독일의 ’히든 챔피언’들은 지난 10년 동안 양질의 일자리 100만 개를 새롭게 만들어냈다.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전체 기업 수의 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이 일자리의 88%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상황을 표현하는 ‘9988’은 일 자리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위치를 그대로 보여 준다.
하지만 강소기업이 중요한 건 일자리 때문만은 아니다. 국가의 장기 경쟁력이란 또 다른 관점에서도 강소기업 육성은 반드시 해결해야만 할 과제로 꼽힌다.
이와 관련해선 홍장표 부경대 교수가 지난 2015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주최 정책 엑스포에서 발표한 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홍 교수는 “소수 수출 대기업 주도 경제성장이 한계에 달하면서 소득(임금)주도 성장전략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소득주도 성장전략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선 탄탄한 중소기업을 적극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홍 교수 주장의 골자였다.
달라진 경제 패러다임 역시 ‘강소기업 역할론’에 힘을 실어준다.
AI와 IoT 같은 첨단 기술은 기존 경제 패러다임을 뒤바꿔놓을 만큼 파괴적이다. 기존 산업군에 속하지 않는 새로운 영역의 강자들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경제 질서 자체를 뒤흔들어놓고 있다.
전기차 전문업체 테슬라는 GM 같은 전통 자동차 강자들보다 더 많은 시가 총액을 인정받고 있다. 에어비앤비처럼 별다른 자산이 없는 공유업체들도 전통 산업의 빈 공간을 메우면서 강력한 실력자로 떠오르고 있다.
물론 대기업들 역시 끊임 없는 혁신을 통해 변신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선택과 집중을 통해 틈새 영역을 공략하는 강소기업들이 없다면 국가 경쟁력에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다.
김경아 연구원은 글로벌 강소기업들에 대해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서 다른 경쟁업체들이 모방하기 어려운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 지디넷은 왜 강소기업에 관심을 갖나
지난 해 3월 ‘알파고 쇼크’ 이후 ‘4차 산업혁명 담론’이 한국 사회를 강타했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첨단 기술이 몰고올 사회적 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지디넷코리아는 알파고 쇼크 이후 사회의 화두가 된 4차 산업혁명 담론을 차분하게 정리했다. 특히 지난 해 7월엔 한국형 모델이 필요하다는 주제로 전문가 좌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선 알파고 같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 성과에 집착하기보다는 한국적 상황에 맞게 차분한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후 인공지능을 비롯한 첨단 기술 시대의 규제 개선과 규제 인프라 마련 등이 꼭 필요하다는 시리즈 기사를 게재했다. 9월엔 정관계 관계자들과 업계 대표들 간의 간담회를 통해 소통 플랫폼 역할을 자임했다.
2017년 들어서도 이런 문제 의식은 계속 이어갔다. 지난 3월 독일 인더스트리 4.0의 산파 역할을 했던 헤닝 카거만 독일 공학한림원 회장을 초대한 대형 컨퍼런스를 마련했다.
당시 컨퍼런스는 독일 인더스트리 4.0을 통해 한국형 모델을 탐구해보는 의미 있는 자리 였다. 특히 국회 4차산업혁명 포럼을 이끌고 있는 송희경 의원(자유한국당)과 주영섭 당시 중기청장을 초대해 카거만 회장과 깊이 있는 논의를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하기 위해선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과 내실 있고 강력한 중소기업들이 든든한 양날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특히 선택과 집중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강소기업들이 한국 경제의 미래를 지탱할 든든한 축이라고 판단했다.
앞으로 ‘강소기업이 미래다’는 시리즈를 통해 작지만 강한 기업들을 발굴 소개할 계획이다. 이 기획 시리즈는 ‘4차 산업혁명’이란 조금은 추상적인 화두를 구체적인 실행 파일로 바꾸는 첫 단추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현재보다는 미래 가능성에 더 주목
모든 기사는 어쩔 수 없이 관점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어떤 기사를 보도하기 위해선 편집 방침에 따라 ‘취사선택하는 행위’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강소기업이 미래다’ 시리즈는 대상 기업을 선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강소기업을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발굴 소개할까? 출발점은 앞에서 소개한 헤르만 지몬의 ‘히든 챔피언’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몬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건 무리가 있다. 지몬의 기준 중 세계 시장 3위 이내, 혹은 해당 대륙 1위 같은 것들을 적용할 경우 지나치게 기준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완성형 못지 않게 ‘가능성을 갖고 있는 기업’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려 한다. 여기에다 상생 의지나 해당 기업의 문화 같은 정성적인 부분도 고려할 계획이다.
‘강소기업이 미래다’는 슬로건은 기업 소개 기획 시리즈로 머물진 않을 것이다.
한국형 강소기업들의 공통된 꿈은 글로벌 시장 진출이다. 우리는 발굴 소개하는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모색할 때 중요한 플랫폼 역할을 하려고 한다.
잘 아는 대로 지디넷코리아는 씨넷과 지디넷이란 글로벌 뉴스 플랫폼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글로벌 시장 진출의 충실한 동반자 역할을 하기엔 더 없이 좋은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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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해 4차 산업혁명 화두를 던질 때도 정관계와 업계 간 소통의 장을 마련했다. 당시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서로 간의 시각 차이를 줄이는 데 나름대로 공헌했다고 자부한다.
올해 하반기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할 강소 기업들에게도 이런 기회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그게 국내 대표 IT 언론사의 소중한 소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