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자동차가 해킹에 노출된다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청부살인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지난 21일 곽승환 SK텔레콤 융합기술원 퀀텀테크랩장은 양자암호통신 기술 확보에 공을 들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들면서 이같이 말했다.
다가오는 초연결 시대에 기존 암호체계의 통신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곽승환 팀장은 “일반 컴퓨터로 지금 암호체계를 해독하는데 수백만년이 걸린다고 하지만 소인수분해를 쉽게 하는 양자 컴퓨팅 시대에는 현재 암호체계가 붕괴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며 “기존 암호체계 재정비를 제안하고 있는 상황에서 양자암호통신이 주목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양자암호기술은 네트워크 단에서 도청을 방지하는 기술”이라며 “지금 쓰고 있는 광케이블의 도청이 어렵긴 하지만, 이마저도 가능한 것을 막기 위해 양자암호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고 강조했다.
양자암호통신은 말 그대로 암호를 만들 때 양자역학을 활용하는 기술이다.
20세기 들어 각광을 받은 물리학 이론 중의 하나가 정보통신기술(ICT)에 쓰이기 시작한 셈이다. 마치 19세기에 발견된 전자기법칙이 지난 100년간 전자공학의 발전을 이끈 것과 마찬가지다.
■ 현존 최강 보안 기술, 양자암호기술이 뭐길래
양자역학은 최근 들어 암호통신과 관련해 주목을 받는다. 상호작용을 하는 물리량의 최소 단위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단위를 뜻하는 양자가 가진 ‘무작위성’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수많은 비밀번호나 암호로 가득 차 있다. 신용카드의 PIN 번호나 도감청을 막기 위한 통신 전송에도 암호 기술이 적용된다.
다만 현재 쓰고 있는 암호기술은 수학적인 알고리즘을 이용한다. 무작위로 선택된 난수(Random number)처럼 여기고 있지만, RSA 암호로 대표되는 현대 공개키 암호 체계는 패턴으로 이뤄진 난수다.
즉, 수학적 알고리즘이 적용된 패턴은 컴퓨팅 연산으로 암호 체계를 풀어버릴 수 있다.
다만 지금의 컴퓨팅 연산 능력으로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다. 소수를 거듭 곱하는 연산은 디지털 신호로 금방 처리되는 연산이지만, 주어진 수를 소인수분해를 통해 두 개의 소수를 찾아내는 역연산은 컴퓨팅 연산으로도 복잡하기 때문이다.
반면 양자 난수로 만들어진 암호는 복제가 불가능하고 중첩이란 독특한 성질 때문에 현존 해킹 기술로는 뚫을 수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양자의 중첩이란 기존 컴퓨팅의 디지털 신호 처리 방식을 거스른다. 디지털 신호가 0과 1, 둘 중 하나의 상태로 이뤄진 반면 양자의 중첩은 0과 1 등 두가지 개별 상태 외에도 동시에 양쪽의 특성을 갖는 상태도 존재한다. 경우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동전을 예로 들면 양자함호기술에서 쓰는 큐비트(퀀텀 비트)는 동전 하나에 앞면과 뒷면이 모두 있을 수 있는 중첩 상태로도 존재한다.
■ SKT, 양자정보통신 시장 문 열었다
공상과학 영화처럼 들리는 이야기로 가득하고 가장 미세한 규모에서 세계를 설명하는 물리학 분야인 양자물리를 두고, SK텔레콤은 지난 2011년부터 500억원의 투자를 쏟아왔다.
물론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 사건 이후 양자정보통신 기술 개발에 국가적으로 투자를 진행하는 중국 등과 겨루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SK텔레콤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기술이란 판단이 있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양자 연구를 꾸준히 이끌어왔다.
덕분에 칩셋 단위로 양자난수생성기(QRNG)를 시제품 상태로 내놓기에 이르렀고, 최근에는 광통신망에서 양자를 통한 장거리 통신이 가능한 중계장치도 만들었다. 또 이미 분당사옥에는 양자암호통신 국가시험망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확보한 관련 특허도 50개 가량이다. 단순 기술 확보 수준이 아니라 다른 국가나 회사가 활용할 때, 공격할 수 있는 수준의 특허 내용이다.
특히 3분기 내에 양자 얽힘과 관련한 기술 발표를 앞두고 있다. 최종 검증 단계로 이른 시일 내에 발표될 전망이다. 회사 측은 이 발표가 물리학계에 반향을 일으킬 것이란 자신감도 내비치고 있다.
양자 얽힘 현상은 특정 양자상태에서 입자를 멀리 보낼 수 있다는 이론으로, 한 입자의 쌍이 서로 얽혀있을 때 하나의 상태가 변하면 즉각 멀리 있는 다른 하나에도 변화가 반영된다는 것이다.
이는 양자 전송 연구가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뜻한다. 최근 중국이 위성으로 양자통신을 했다는 것도 얽힘을 활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장 현재 SK텔레콤이 확보한 양자정보통신 기술은 공공, 국방, 금융, 의료 등에 먼저 쓰일 것으로 보인다. 그 어느 곳보다 네트워크 보안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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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셋 단위의 QRNG는 각종 모바일 디바이스, 완성차 시장에서 시제품 공급이 줄을 이을 전망이다.
물론 제조업계가 새로운 기술을 상용 양산 제품에 적용하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을 고려하면 당장 기존 제품에서 양자암호통신을 보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신규 서비스 경쟁이 치열하고 활발한 IoT 시장에서는 QRNG 칩을 활용한 애플리케이션이 깜짝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