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원까지는 못 되더라도, 상당한 금액을 음향 장비에 투자하는 마니아들의 존재는 이제 그리 생소하지 않다. 음악 애호가인 그들에게 비(非)마니아 입장에서 궁금한 점은 하나였다. 비싼 기기는 아무래도 다르다는데, 무엇이 어떻게 다르다는 걸까. 이따금씩 인터넷 등지에서 보이는 그들의 "확실히 다르다"는 증언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직접 듣고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28일 저녁 청담동 셰에라자드에서는 2009년부터 무손실 음원 파일 형식인 플락(FLAC)을 제공해 온 NHN벅스와 영국 고성능 스피커 제조사 PMC 공식 수입원 다빈월드가 개최하는 청음회가 열렸다. 총 3억5천만원 상당의 음향 장비가 동원된다고 하는 만큼 촛점은 당연히 음질이었다.
■'원음과 최대한 가깝게' 벅스-PMC의 독자 노하우
고품격 음질이 무엇인지 체험해보기에 앞서, NHN벅스 서비스개발실 정진환 부실장과 다빈월드 오디오사업부 박진형 과장이 각각 벅스의 고음질 서비스와 PMC의 고성능 스피커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각사가 지닌 자부심의 핵심은 세밀한 음질을 표현할 수 있는 24비트 플락 파일과 설계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소리의 왜곡을 최소화하기 위해 만든 미로형 스피커였다.
현재 벅스에서 들을 수 있는 플락 음원 수는 약 940만곡에 이른다. 현재까지 발표된 자료를 참고했을 때 타 음원 서비스 업체 보유곡을 다 합쳐도 이에 못 미친다는 게 정진환 부실장의 설명이다.
정 부실장은 이처럼 고음질 음원 서비스에 역량을 집중한 계기에 대해 설명했다. 정 부실장은 "과거 모바일 음악 서비스 조사에서 이용자들이 음악 서비스 속성 중 음질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전에는 다른 분야에 눈길이 많이 갔는데, 해당 조사 결과가 서비스에 대한 가치관을 정리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플락 파일 확보에 매진한 만큼 우여곡절도 있었다. 정 부실장은 "정작 음원을 생산하는 기획사·유통사에서 플락 파일이 뭔지 모르는 경우도 많았고, 플락 파일이라며 보내준 파일이 아닌 경우도 많았다"며 "그 때마다 왜 고음질 음원이 필요한지 이유를 설명하고 플락 파일을 요청했다"고 언급했다.
음반업계에서도 고음질 음원이 생소했을 때부터 노력을 기울여왔던 만큼 이제는 고음질에 대한 벅스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정 부실장은 "기본적으로 플락파일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사전에 전수조사를 실시한다는 방침을 고수해왔고, 최근에는 플락 파일 검증 기술이 개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연내 서비스에 도입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벅스는 또 원음과 최대한 비슷한 품질을 위해 가장 높은 음질을 인코딩 소스로 활용하고, 일부 주파수를 삭제해 원음보다 음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MP3, AAC도 플락에서 변환해 최대한 원음과 가깝게 들리도록 했다. 음질향상 솔루션인 레드손을 적용해 잡음을 제거하고, 깨끗한 음질을 제공하며 이퀄라이저 이용 시 음질 손실도 막았다.
PMC 스피커의 성능을 설명하기 위해 박진형 과장은 스피커 제작의 진화 과정에 대해 먼저 언급했다. 박 과장의 설명에 따르면, 가장 기본적인 스피커 제작 방식인 밀폐형 스피커는 저음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치명적이었다. 그 이후 출시된 포트형 스피커의 경우 저음을 아래쪽 출구로 내보내 이전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지만, 음 높이에 따라 청자에게 도달하는 시점이 다르다는 문제점이 존재했다. 반면 PMC에서 제작한 미로형 스피커는 음역대에 따라 소리가 전달되는 시점을 계산한 결과를 토대로 스피커 내에 미로식 구조를 넣어 음원 왜곡을 최소화했다.
박 과장은 원음을 최대한 살리려 노력한 결과 세계 유명 뮤지션들이 PMC 스피커를 사용하고 있고, 방송 음향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받아 스피커 제조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에미상을 수상했다고 덧붙였다.
■"스피커와 음원에 따라 녹음 품질도 알 수 있어"
이번 청음회는 웹진 '하이파이 스타일'의 오승영 대표가 진행을 맡아 총 9곡을 듣고 선곡 이유와 곡해석을 발표했다.
오승영 대표는 다이애나 크롤의 How Insensitive, 즉 "얼마나 둔감한지"라는 곡으로 재치 있게 이번 청음회를 시작했다. 곡마다 감상포인트를 간략히 언급해 고품질 음원과 스피커가 제공하는 색다른 느낌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했다. 덕분에 음향 기기엔 별 관심이 없었던 기자도 청음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두 번째 곡으로는 팻 메스니의 Waltz For Ruth를 들었다. 청음회가 익숙하지 않아 다소 긴장한 마음으로 원래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던 것과 지금이 무엇이 다른지 찾느라 애를 쓰며 약 3분의 시간을 보냈다.
분명 평소에 듣던 음악과 다르게 들리긴 했다. 그러나 전문성의 부재로 인해 원래 듣던 음악보다 '확실히 더 깔끔하게 들린다'는 것 외에는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곡은 높은 음과 낮은 음이 서로 섞이지 않고 똑바로 나아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오 대표의 설명이 기자를 비롯한 참석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이번에는 실용음악도 들어봐야 한다는 취지로 에드 시런의 Shape Of You를 감상했다. 이번 곡의 감상 포인트는 작은 소리와 큰 소리가 어우러지는 소위 '다이내믹스'를 PMC 스피커가 어떻게 표현해내는지였다. 또 그 사이에 여러 가지 악기가 등장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었다. 확실히 작은 소리가 큰 소리에 묻히지도, 그렇다고 존재감이 너무 부각되지도 않게 들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평소 음악 감상할 때는 몰랐던 소리의 '뭉개짐'이 무엇인지 이번 곡을 청음하면서 알 수 있었다.
이어 마이클 잭슨의 Will You Be There을 듣고 난 이후 청음한 곡은 전람회가 부른 기억의 습작이었다. 국내 곡은 어떻게 들리는지 느껴보자는 것이 선곡 의도였다. 이번 곡은 특별히 청음 후에 오승영 대표가 일반인 참석자에게 바로 전에 들었던 마이클 잭슨의 노래와 어떤 점이 다른지 질문했다. 이전 곡보다 주변 음이 좀더 많이 들린다는 답변에 오 대표는 "정확한 표현"이라는 대답과 더불어 "음악 파일의 품질이 좋으면 녹음 품질의 구분도 가능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후 오 대표는 악기의 질감을 잘 드러냈다는 관악기와 팀파니로 이루어진 곡(이지 오우에/미네소타 심포니 - Copland ‘Fanfare For the Common People')과 각 소리의 밸런스 조절을 잘한 클래식(피에르 푸르니에 - 바하 무반주 첼로 모음곡 2 -3. Courante), 오페라 곡(롤란도 빌라존&안나 네트랩코 - 푸치니 : [라 보엠] 중 '사랑스러운 아가씨')을 소개하면서 청음회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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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보티의 임마누엘을 마지막으로 청음회 행사는 끝이 났다. 이번 청음회는 참가 신청한 800명 중 30명을 모아 진행했다. 참여 열기가 뜨거웠던 만큼 차후에 또 이번 청음회 같은 행사가 열릴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벅스 측 관계자는 "협력업체와 논의만 잘 이루어진다면 추후에도 이런 행사를 가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고성능 스피커의 성능에 대해 소위 '돈값'할 만큼 일반인들이 체감할 수 있는지도 주된 관심사다. 청음회 행사가 끝나고 진행된 인터뷰에서 다빈월드 오디오사업부 박진형 과장은 "20만원 정도의 헤드폰에 30만원 정도의 디지털 오디오 플레이어를 갖추면 일반인도 mp3와 플락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