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증강 저널리즘'은 어떤 모습일까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AP 보고서가 던진 질문

데스크 칼럼입력 :2017/04/25 17:13    수정: 2017/04/26 07:38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소크라테스가 글자에 의존하려는 아테네 젊은이들을 질타한 건 널리 알려진 일화다. 그는 아예 “글자는 기억력의 적”이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세상은 소크라테스 생각과 다르게 흘러갔다. 글자 덕분에 기억의 한계를 넘어선 인류는 손쉽게 지식을 축적했다. 역설적이게도, 소크라테스를 후대에까지 위대한 철학자로 기억되도록 만들어준 것도 글자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글자를 경멸했던 소크라테스의 일화는 황당하기 그지 없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단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우리 주변에선 이런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언론 현장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유난히 ‘전통’을 강조하는 문화 탓에, 언론사들은 신기술 수용에 비교적 소극적인 편이다. 특히 인공지능(AI) 같은 자동화 기술에 대해선 강한 거부감을 갖는 경우가 적지 않다.

AP 보고서 표지.

■ 자동화된 기술, 사람 기자 역할 상당 부분 대체

미국의 AP가 최근 공개한 ‘스마트머신 시대 뉴스룸을 위한 가이드(A guide for newsrooms in the age of smart machines)’ 보고서를 관심있게 읽었다. 본문 20쪽이 채 안 되는 그 보고서엔 AI 같은 새로운 기술을 어떤 관점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에 대한 소중한 통찰을 담겨 있었다. (☞ AP 보고서 내려받기)

AI 저널리즘, 혹은 알고리즘을 활용한 저널리즘 영역에서 AP는 여러 얘기를 할 자격이 있는 언론사다. 지난 2014년 한 발 앞서 로봇 저널리즘을 도입하면서 많은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건 이 보고서가 담고 있는 관점이었다. 일단 AP는 AP를 활용한 자신들의 각종 실험을 ‘증강 저널리즘’(augumented journalism)이라 부르고 있었다. 이 명칭 속엔 인간과 AI의 유기적 결합이란 고민과 성찰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실제로 AP 보고서는 시종 일관 “AI를 배척하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환상을 갖지도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AI 역시 인간처럼 오류에 빠질 수도 있고, 때론 편견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엔 나오지 않지만

AP에는 부국장급 기자가 로봇 기자(?) 교육을 담당하고 있단 얘기도 들은 적 있다.)

일단 이 보고서에선 증강 저널리즘에서 주의해야 할 위험 요소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무엇보다 알고리즘 자체가 오류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증강 저널리즘에 나오는 각종 수치들도 사람 기자들이 쓴 것과 똑 같은 주의력을 갖고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큰 문제는 AI가 도입된 뉴스룸 내에서의 역할 규정이다. AI는 기자들이 하고 있는 단순 업무의 상당 부분을 대신해주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당연한 얘기지만 부가가치 높은 일에 주력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이 보고서에선 실적 보고에 로봇 저널리즘을 도입한 뒤 관련 기자들의 시간을 20% 가량 절약할 수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이렇게 시간을 절약한 기자들은 분석 기사나 좀 더 통찰력 있는 관점을 담아낸 고급 기사 작성에 활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인터뷰 얘기는 더 흥미롭다. AP 기자들은 인터뷰하는 데 한 주 평균 3시간 가량 쓴다. 그런데 녹취한 인터뷰 파일을 글로 옮기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 두 배 정도 된다. 음성인식 기술을 활용하면 이런 단순 업무를 상당 부분 덜어낼 수 있다는 것. 이렇게 절약한 시간은 훨씬 더 생산적인 일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AP 보고서는 전하고 있다.

이 외에도 드론을 비롯해 영상, 이미지 인식 기술 같은 것들도 증강 저널리즘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술들이다.

■ "너 자신을 알라, 그리고 기술도 함께 알라"

AP 보고서엔 증강 저널리즘의 밑거름이 될 기술들도 소개해주고 있다. 머신러닝, 자연어 처리, 음성인식, 영상 인식, 로봇 같은 다양한 기술들을 활용할 수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이 기술들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도 소개해주고 있다.

실제 기술 구현에 관심 있는 독자들은 이 부분이 더 흥미로울 수도 있겠다. ‘증강 저널리즘’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한 필수 기술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 투자가 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계나 기술이 어떻게 작동하느냐 보다 더 중요한 건 인간이 새로운 기술 환경에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스마트 머신 시대’ 저널리즘이 경쟁력이 결정될 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제법 상세한 기술 얘기 못지 않게 이 보고서 마지막 쪽을 장식한 결론 부분에 유난히 눈이 갔다. AP 보고서 저자들은 크게 다섯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1. 기술은 변화하는 데 저널리즘은 변하지 않고 있다.

2. AI도 인간처럼 편견과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3. AI는 만능이 아니다.

4. 저널리스트가 기술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AI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다.

5. 저널리즘에 AI를 활용할 때는 윤리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들이 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확 와 닿았다. 기술이 변화한다고 해서 저널리즘의 기본 가치마저 달라지는 건 아니다. 따라서 AI와 함께 일을 하게 되더라도 오랫 동안 유지해 온 저널리즘의 전통과 표준을 지켜나가는 건 여전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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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보고서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어떻게 될까? 소크라테스의 금언을 빌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너 자신을 알라. 그리고 기술도 함께 알라.”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