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경제 현상에 굳이 혁명(革命)이란 단어를 쓰는 까닭은 그만큼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4차 산업혁명. 이 말은 이제 세계적인 화두가 됐죠. 인공지능(AI)을 비롯한 기술 발전이 경제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과거 1, 2, 3차 산업혁명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도 이미 그 파장 안에 있구요.
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에 비교적 잘 대응하는 나라를 몇 개 꼽으라면 그중에 독일이 빠지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독일의 ‘인더스트리4.0’ 정책입니다. 전통적으로 강한 제조업을 각종 IT 기술과 접목시켜 혁신함으로써 산업 기반을 더욱 더 튼튼히 한 모범사례로 여겨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정책 입안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이 헤닝 카거만 독일 공학한림원(acatech) 회장이지요.
지디넷코리아는 지난해부터 ‘한국형 4차산업혁명 모델’을 찾고 제안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해왔고, 29일엔 카거만 회장을 초청해 특별 강연을 들었습니다. 강연에 앞서 카거만 회장과 정관계 주요 인사 및 민간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참석한 조찬토론회도 가졌습니다. 지디넷코리아가 독일 인더스트리4.0에 주목한 까닭은 수출을 위한 제조 산업 중심의 경제구조가 비슷하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카거만 회장과 국내 주요 인사의 조찬토론회 내용을 간추려보겠습니다. 카거만 회장은 우선 한국이 4차 산업혁명에 잘 대응할 저력이 충분하다고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정보통신기술(ICT)이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 있고 국민적인 추진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더군요. 정만기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은 우리도 이미 2013년부터 스마트팩토리4.0을 시작하며 대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제조 분야 국내 대기업은 실제로 위기이자 기회인 것 같습니다. 조선 산업처럼 일부 제조업이 중대한 위기를 맡고 있지만 삼성전자 등은 공정·물류·상품기획 등 스마트팩토리 전 영역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게 사실입니다. 우리 대기업의 경우 어쩌면 4차 산업혁명보다 되는 분야와 안 되는 분야를 선별하고 되는 쪽에 사업을 집중하는 구조조정이 더 시급하고 중요한 화두일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카거만은 이와 관련 대기업과 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중요한 발언도 했습니다. 인더스트리4.0의 핵심 목표는 생산의 효율성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보다 기업이 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보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를 강조한 거죠. 기업은 조직의 기동성을 높이고 정부는 규제를 완화할 때 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카거만 회장은 특히 ‘균형 잡힌 4차 산업혁명’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4차 산업혁명을 논할 때 대부분 기술 이슈에 몰입되기 마련인데 카거만 회장은 2시간에 걸친 조찬토론회 중 “독일에서는 노조가 인더스트리 4.0 기획 초기단계부터 참여했고, 그 덕분에 일이 잘 풀렸다”는 말을 세 번이나 강조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은 이와 관련 노동 소외 문제를 집중적으로 물었습니다.
최재유 미래창조과학부 제2차관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 변화에 대해 묻자 역시 노조와 연결시켜 말하더군요. 노조가 초기부터 목소리를 낼 환경을 만들자 노조가 먼저 변했다는 겁니다. 단순 임금협상을 넘어 새 일자리에 맞게 재교육 받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고민하는 등 현재보다 미래를 설계하는 쪽으로 더 고민한다는 거죠. 노사정 대타협이 4차 산업혁명의 전제라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카거만은 중소기업에 대한 고민도 커 보였습니다. 독일도 우리와 비슷하게 중소기업이 고용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중소기업은 재정적으로 혁신을 위한 IT 투자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지요. 또 중소기업은 상품의 차별화와 빠른 의사결정이 경쟁력의 핵심인데 스마트팩토리가 과연 이 부분을 다 해결해줄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도 갖고 있었습니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의 고민이 그것이었습니다. 스마트팩토리가 공법의 상향평준화를 가져다주기는 하겠지만 차별화까지 해결해주지는 못한다는 거죠. 주영섭 중기청장은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강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산학연의 연계 플랫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카거만 회장은 체력이 약한 중소기업이 스마트해지게 하는 정부의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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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거만 회장은 또 교육과 관련해 주목되는 발언도 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좁고 정밀한 팩트에 밝은 전문가 능력보다 문제를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는 거였습니다. 전자(前者)는 컴퓨터와 기계의 영역이고 후자가 인간의 영역이라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의 정규 교육과정은 물론이고 직업인을 위한 재교육도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 화두로 등장하면서 국내 대선주자들도 담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중 정부 주도형(문재인)이 맞느냐 민간 주도형(안철수)이 낫느냐를 놓고 유력 주자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지요. 카거만의 답은 그 어느 한 쪽이 아니었습니다. 민간의 일과 정부의 일이 다르다는 겁니다. 카거만은 속도를 원하는 일은 민간이 타협과 통합을 원하는 일은 정부가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추상적이지만 의미가 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