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왕홍'들은 왜 허름한 성수동 골목 찾을까

어바웃블랭크 김기환 대표 "브랜드 스토리가 중요"

인터넷입력 :2017/02/14 08:55    수정: 2017/02/14 09:37

손경호 기자

성수역 2번 출구로 나오면 오래된 건물들이 반겨준다. 이 건물들 사이 골목길을 지나 10분 남짓 걸으면 빨간 벽돌로 지어진 창고 같은 건물과 만나게 된다. 여기서 '어바웃블랭크앤코'란 회사 간판이 보인다.

이 건물 2층에는 홍익대학교에서나 봤을 법한 옷이 전시된 쇼룸이 눈에 띈다. 그 안에는 이 회사가 직접 디자인, 유통, 마케팅까지 책임지고 있는 스테레오바이널즈, 화이트블랭크 브랜드를 단 티셔츠, 재킷, 모자 등이 배치돼 있다.

패션회사에 쇼룸이 있는 건 자연스런 모양새다. 그런데 이런 구석까지 구매자들이 찾아올까?

김기환 대표와 막 인터뷰를 하면서 든 의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삼삼오오 손님들이 몰려든다. 매장에 들일만한 상품을 보러 온 소매업자들이겠거니 했지만 이들은 대부분 직접 옷을 사가는 소비자들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성수동 구석진 골목까지 와서 옷을 사가는 건 대부분 중국인들이었다.

지난 9일 전자상거래플랫폼 카페24를 통해 온라인 쇼핑몰을 구축해 국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스테레오바이널즈, 화이트블랭크를 운영 중인 김기환 대표를 만났다.

김기환 어바웃블랭크앤코 대표.

스테레오바이널즈는 최근 중국 '왕홍(파워블로거)'들을 통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국산 브랜드다. MBC드라마 '역도요정 김복주'에서 김복주 역할을 했던 이성경이 입고 나온 심슨 캐릭터의 맨투맨 티셔츠가 중국 SNS인 웨이보와 같은 곳에 공유되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5천장이 팔렸다.

에피소드는 더 있다. 김 대표는 셀카봉을 들고 쇼룸에 온 중국손님들이 스마트폰 카메라로 생방송을 하면서 웃고 떠들며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전시된 옷들을 사이즈별로 모조리 입어보더라는 얘기를 전했다. 처음에는 황당해서 쫓아낼까도 생각했지만 나중에 보니 이들이 "이거 50개, 이거 30개, 이거 100개"라고 말하며 총 600만원어치를 사갔다. 이들은 방송을 하면서 실시간으로 구매자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이밖에도 미국 LA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온 손님으로부터 "쇼룸을 왜 여기다 만들었냐"는 핀잔을 듣는가 하면 최근에는 말레이시아 가족들이 와서 단체쇼핑을 하기도 했다.

김 대표 조차도 "원래는 선주문을 받기 위해 쇼룸을 만들었는데 이곳에서 구매해가는 외국인들도 많다"고 말한다.

어바웃블랭크앤코가 운영하는 쇼룸 전경. (사진=어바웃블랭크앤코)

■ "외국인들 공략 위해선 스토리가 중요"

외국인들이 즐겨찾는 국내 브랜드에 어떤 비결이 있을까? 김 대표는 "고객들이 단순히 옷을 잘 만드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누구와, 왜 만들게 됐는지 이런 스토리를 좋아하더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2005년부터 창업을 시작했지만 여건이 만만치 않았다. 주로 다른 회사 브랜드에서 디자인한 의류 생산을 대행해주는 업무를 해왔던 그는 2010년께 관련 사업을 정리한다. 현재 사업 파트너이자 영국서 유명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크리에이티브디렉터(CD)인 허재영 씨와 인연이 닿은 것은 그 이후다. 그동안 남의 옷만 만들어주다가 마지막으로 내 브랜드를 해보자고 해서 2013년 시작한 것이 지금의 회사다.

허재영 CD가 영국에서 기본 디자인 콘셉트를 정해서 보내주면 한국에서 어떤 원단에 어떤 자수가 들어갈지 등 세부적인 사항을 김 대표가 직접 챙겨서 샘플을 만든다. 그 뒤 국제택배로 다시 영국에 보내 제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최종적인 제작 결정이 나면 이를 발표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회사가 나이키처럼 한 가지 디자인을 미는 대신 주로 협업을 통해 그때마다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옷에 스토리텔링을 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소품종 대량생산 대신 자기 고유의 스타일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소품종 소량생산을 원칙으로 한다. 1년에 적게는 6개에서 많게는 8개까지 콜렉션을 발표한다.

그는 '서플라이체인매니지먼트(SCM)'라고 해서 공장에 지속적으로 제작의뢰를 하진 않는다고 설명한다. 대신 10개 디자인 중 3개가 인기를 끌면 해당 제품 생산량을 끌어올려 파트너들과 수익을 나눠갖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같은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공장도 중국 대신 국내 의류제작공장만을 고집한다.

어바웃블랭크앤코의 대표 브랜드 스테레오바이널즈는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장 줄리앙을 포함해 디즈니 미키마우스, 심슨, 코카콜라 등과 협업을 통해 스토리텔링을 한 제품들을 선보인다.(사진=어바웃블랭크앤코)

그가 강조한 스토리텔링은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인물 혹은 캐릭터들과 협업해 온 내역에서 엿볼 수 있다.

이를테면 2015년 이 회사는 화이트블랭크 브랜드를 통해 다람쥐를 모티브로 한 콜렉션을 선보였다. 월동준비를 하기 위해 도토리를 먹는 다람쥐 캐릭터를 옷에 활용한 대신 수익금의 10%를 독거노인을 돕는 재단에 기부했다.

국내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이 회사는 심슨 캐릭터로 유명한 20세기폭스사는 물론 코카콜라, 월트디즈니 등과 협업을 하게 된다.

이중 가장 먼저 협업하게 된 것은 월트디즈니다. 당시만 해도 국내 경쟁업체들이 가격을 10분의 1 수준으로 내려서라도 계약을 하려고 할 때였다. 김 대표도 결국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해서 2015년 제일모직이 운영하는 서울 청담동 소재 유명 편집숍 비이커에도 입점하게 된다. 이후 코카콜라, 디즈니 미키마우스를 활용해 미키마우스가 우주로 떠난다는 콘셉트의 디자인으로 한국지사에서 최우수 디자인상까지 받는다.

이밖에도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명한 장 줄리앙, 독일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유명 DJ 페기 굴드, 투팍, 노토리어스 B.I.G. 등 전설의 힙합뮤지션들이 거쳐갔던 포토저널리스트 치모두와 협업해 이들의 작품을 자사 브랜드에 녹여내는 작업을 해왔다.

현재는 홍콩 유명 편집숍인 아이티, 프랑스 꼴레드에도 입점했으며, 내년에는 홍콩 하비니콜스, 랜크로포드에도 진출한다.

■ "신진 디자이너 관리하는 플랫폼 만들겠다"

어바웃블랭크앤코의 대표 브랜드인 스트레오바이널즈는 말 그대로 스피커에서 나오는 스테레오 사운드를 모티브로 삼았다. 두 개의 스피커가 양쪽에 크고 작은 소리를 내면서 입체감 있는 사운드를 들려주듯 허재영 CD가 기본 디자인을 짜고, 김기환 대표가 디테일을 보고, 직접 생산해 판매하는 글로벌 브랜드를 만들어 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를 통해 마치 시대에 얽매이지 않고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음악처럼 "옷으로 좋은 음악을 들려주겠다"는 것이 그들의 포부다.

창업 초기 카페24와 인연이 닿게 된 것은 UX, UI 디자인에도 밝았던 허재영 CD의 적극적인 추천 때문이다. 김 대표는 "허재영 CD가 쇼핑몰을 운영하기에는 카페24가 제일 깔끔하다는 말에 활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반응형이고 시원하게 잘 보인다는 평가다.

카페24를 통해 이 회사는 스테레오바이널즈에 대한 2014년과 2016년에 각각 영문, 중문 온라인 쇼핑몰을 마련했다. 그 덕에 SNS를 통해 입소문을 탄 브랜드에 방문하려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중이다. 아직은 국내 매출이 7이고 해외 매출이 3이지만 중문 웹사이트에만 1억에서 8천만원~9천만원 정도 매출이 나온다.

관련기사

김 대표는 앞으로 쇼룸에 알리페이, 위챗페이를 통한 결제를 제공하고, 점원 없이 각종 상품을 들고나오는 것만으로 결제가 이뤄지는 아마존고와 같은 결제시스템을 설치해보려는 계획도 구상 중이다.

그는 "마치 YG나 SM엔터테인먼트처럼 신진 디자이너들을 매니지먼트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며 "노래를 잘하는데 괜찮은 엔지니어를 구하지 못해 음반을 내지 못하거나 춤을 잘 추는데 노래를 못하면 보컬트레이닝을 해주는 것처럼 디자인을 잘하는데 유통을 못하거나 생산처를 찾지 못한 후배들을 키워내는 것이 앞으로 큰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