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진짜 클라우드SW 시대 판별법

'옛날 아주 먼 옛날, SW라이선스 초과 사용자가 살았어요 …'

기자수첩입력 :2017/01/01 08:40    수정: 2017/01/04 09:48

2016년은 소프트웨어(SW) 라이선스 감사(audit)에 대한 다국적SW회사들의 상반된 의지가 뒤엉킨 해였다. 모두가 클라우드 시대를 외치는 가운데 SW라이선스 감사를 부득부득 하려는 곳과 더 이상 안 하려는 곳이 공존하는 흥미로운 국면이 연출됐다. 실제로는 지금 여기가 온프레미스 시대에서 클라우드 시대로 가는 전형적인 과도기라 봐야 한다.

SW라이선스 감사는 제품이 계약대로 쓰이는지, 공급업체가 고객사에 따지는 절차다. 감사 권한은 SW제품 공급계약 조항에 담기는 게 보통이다. 공급업체는 감사를 통해 고객사 SW제품 사용자 수, 구동 시스템, 활성화된 기능 따위를 본다. 계약 범위가 넘어간 요소를 찾아 추가 라이선스 구매 또는 저작권 침해 보상 합의를 유도한다. 액수야 SW제품 성격과 조직 규모에 달렸지만, 기간시스템에 쓰인다면 억단위를 넘겨 경영자를 괴롭히기 쉽다. '라이선스 리스크'가 이럴 때 쓰라고 나온 표현 같다.

라이선스 리스크였을진 모르겠지만 골치깨나 썩겠다 싶은 사례가 있었다. 한국 기업들과 ERP업체 SAP간 불거진 SW라이선스 초과 사용 시비다. 내막은 이랬다.

SAP가 2015년부터 자사 ERP를 쓰는 국내 여러 대기업에 초과 사용 공문을 보냈고 곳곳에서 합의금을 수십억원에서 백수십억원씩 받았다. 그런 공문을 받은 곳 중 '한국전력'은 SAP의 감사를 거부했다. SAP은 한전 감사를 위해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넣고, 그게 기각되자 2016년 5월 싱가포르 국제상업회의소(ICC)에 중재를 요청했다. 8월 국내 언론에서 이를 기사화할 무렵 양측의 중재가 진행된 것으로 보이지만, 이후 현재까지 약 4개월 진행 현황은 확실치 않다. SAP코리아 측 예상 합의안 도출 시점은 2017년말. 더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 ICC는 사법기관이 아니고 국제중재를 돕는 조직일 뿐이라, 결국은 양측 합의가 중요하다.

2017년엔 오라클의 감사가 업계를 달굴 수도 있다. 오라클은 6년간 구글과의 소송에서 아무 실익을 못 얻었다. 이제 일반 기업을 통해 '수익 창출'에 나설지 모른다. 어떻게?

외신은 오라클이 몇 달 전부터 개별 사용처에 대대적인 자바 라이선스 감사를 벌였다고 전했다. 알려진 구체적인 위반사례가 없어 더 문제다. 불확실성 리스크다. JDK와 JRE를 포함한 자바SE는 통상 무료지만, 임베디드 환경에선 유료다. 상업용 기능을 활성화하는 코드를 돌리거나 미션컨트롤, 플라이트레코더같은 추가기능을 묶은 판본을 쓰거나 윈도PC용 JRE 배포 자동화 툴을 쓰면 유료다. 과금하는 경우의 수가 적지 않은데 표준 정보가 없다. 수많은 국내 공공, 금융 기관, 기업 조직에서 자바를 써왔지만, 한국오라클 측은 라이선스 관련 문의에 공식 답변이 어렵고, 본사의 감사 정책과 관련한 질문에도 전달받은 내용이 없다는 얘기 뿐이다.

정반대 분위기를 연출하는 다른 다국적 SW업체도 있다. 어도비는 2016년 세계각지서 자사 SW제품 라이선스 감사 활동을 이미 중단했거나 중단을 예고했다.

어도비는 북미와 남미 지역, 일본에서는 감사를 중단했다. 유럽, 중동, 아프리카(EMEA) 지역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감사 전환 과정을 이행 중이다. 아태지역에 포함되는 한국 역시 전환 과정을 이행 중인 지역에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같은 지역 안에서도 나라별로 중단 일정은 다르겠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세계 공통 정책이 될 수 있다. 어도비는 핵심 사업 모델의 축을 성공적으로 전환한 결과 이같은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어도비는 불법 사용을 막기 위해 SW라이선스 감사를 수반하는 영구 라이선스 제품 공급 대신 기술적으로 감사가 불필요한 구독형 라이선스 제품과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형SW(SaaS) 판매 모델을 사업 중심에 놨다.

현재 SW라이선스 감사라는 관습을 취하거나 버리는 이들간엔 이런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오라클과 SAP처럼 기업의 기간시스템에 설치되는 SW제품은 한 곳에 짧아도 5년, 길게는 십수년에 한 번 공급된다. 이걸 바꾸는 건 대공사다. 신제품 도입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시장에서 공급업체가 클라우드 모델인 구독형 라이선스, SaaS 판매로 사업 방향을 급선회하긴 사실상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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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어도비의 주력 SW제품은 개별 사용자가 워크스테이션 및 PC나 모바일 기기같은 단일 시스템에 깔고 지울 수 있는 형태로 작동한다. 길어야 1~2년, 짧으면 몇 달만에도 바꿀 수 있다. 그만큼 새 버전도 자주 나온다. 이런 짧은 출시 주기는 사업 무게중심을 구독형 라이선스 제품이나 SaaS 판매로 옮기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 3D디자인 SW업체 오토데스크도 비슷한 경우다. 올해 나왔던 임원 발언을 비춰볼 땐 어도비와 달리 SW라이선스 감사를 없애겠다 공언하는 입장이 아니지만, 어도비처럼 구독형 SW제품 공급 전략에 무게를 실었고 현재 이런 짧은 제품 도입주기의 덕을 보고 있다.

진짜 클라우드 시대는 어딘가에서 SW라이선스 감사를 할지 말지가 대단한 이슈가 되지 않는 시점 아닐까 싶다. 영구 라이선스 기반 설치형 SW 도입 환경은 마이너가 되고, 클라우드 SaaS와 구독형 라이선스가 SW산업의 주류 수익모델로 남고, SW제품 개발업체들이 원하는 만큼 투명하게 고객사의 제품 사용 행태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대. 그 때 가서, 개발업체가 SW라이선스 감사라는 원시적인 측정 방식을 운영하기 위해 고객사와 법정까지 갔었단 사실을 기억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