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피한 애플, '노키아 늪'에 빠지나

특허전쟁 다른 양상…노키아는 '시장보다 돈?'

홈&모바일입력 :2016/12/27 17:12    수정: 2016/12/27 17:40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최근 몇 년간 애플의 특허 소송 상대는 삼성이었습니다. 두 회사는 2012년부터 4년 동안 전면전에 가까운 특허 전쟁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현재 두 회사 소송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잘 아시는대로 디자인 특허 배상범위를 놓고 다툰 1차 소송 상고심은 최근 삼성 승소로 마무리됐습니다.

반면 삼성 쪽으로 승부의 추가 기우는 듯했던 2차 소송은 애플이 역전시키면서 또 다른 양상으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애플이 또 다른 IT 대표주자와 특허 소송에 휘말렸습니다. 이번에 애플의 발목을 잡은 건 노키아입니다. 노키아는 무려 11개국에서 40개 특허권 침해를 이유로 애플을 제소했습니다.

핀란드에 있는 노키아 본사 건물. (사진=씨넷)

그러자 애플도 가만 있지 않았습니다. 노키아를 독점금지법 위반 혐의로 제소했습니다. 특히 애플은 노키아 특허를 관리한 업체들도 함께 제소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애플-노키아 소송은 앞서 진행된 애플-삼성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를 보입니다. 삼성과 애플 역시 쌍방 소송으로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서로 대응하는 방식은 조금 다릅니다.

■ 임의반소만 제기한 애플, '노키아는 특허괴물' 간주한 셈

여기서 잠깐 법률 용어를 살짝 동원해볼까요.

소송에 대해 반소(counterclaim)를 제기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강제반소(compulsory counterclaim)이며, 또 하나는 임의반소(permissive counterclaim)입니다.

강제반소는 원고의 청구에 대해 동일한 사실 관계를 다투는 겁니다. 이를테면 원고가 주장하는 특허 침해 사실이 없다거나, 해당 특허 자체가 무효라는 등으로 맞서는 겁니다. 대부분의 특허 소송은 강제 반소로 맞서게 됩니다. 삼성 역시 애플의 소송에 대해 강제 반소를 제기했습니다.

반면 임의반소는 원고 청구와 관련되지 않은 것으로 반소를 제기하는 경우입니다. 대표적인 게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한 원고 A에게 “너도 우리 특허를 침해했다”면서 다른 소송을 제기하는 겁니다. 삼성 역시 애플을 상대로 임의반소도 함께 제기했지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 (사진=씨넷)

그리고 또 하나가 바로 특허권 남용 주장을 하는 겁니다. 이 때는 흔히 반독점소송 형태로 제기하게 됩니다.

그런데 노키아 소송에 대해 애플은 ‘임의반소’만 제기했습니다. 특허 소송이 아닌 반독점 소송으로 맞제소한 겁니다.

애플은 노키아 측이 특허사략행위(Patent Privateering)한 혐의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특허사략행위란 생산기업이 특허괴물 같은 특허 주장주체(PAE)를 활용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다보니 노키아와 애플의 특허소송은 조금은 ‘쫀쫀하게’ 전개될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애플이 보기엔 노키아가 ‘특허괴물’과 다름 없는 짓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노키아 자회사 제품 판매 중단…앱도 건드릴까

그 대표적인 사례가 온라인 애플 스토어에서 노키아 관련 제품 판매를 금지해버린 겁니다.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애플은 노키아를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하면서 동시에 자사 온라인 스토어에서 위딩스(Withings) 제품 판매를 중단했습니다.

위딩스는 지난 4월 노키아가 인수한 기업입니다. 헬스케어 전문기업인 위딩스는 스마트 체중계, 스마트 혈압계를 비롯한 건강과 피트니스 관련 제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한 때 애플이 앱스토어에서 위딩스 관련 앱도 내려버렸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 부분은 사실이 아닌 것 같습니다. 특허 전문 사이트 포스페이턴츠에 따르면 현재 위딩스 관련 앱은 정상 판매되고 있습니다.

포스페이턴츠를 운영하고 있는 플로리언 뮐러는 이 부분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위딩스 제품이 온라인 애플스토어 판매 목록에서 제외됐다.

뮐러는 지난 26일(현지 시각) 올린 글을 통해 “노키아의 소송 전략을 감안하면 애플이 (노키아) 자회사가 (자사 온라인 스토어에서) 정상 영업하는 상황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란 점엔 충분히 공감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뮐러는 그 뒷 부분에서 한 가지 단서를 달았습니다.

만약 애플이 위딩스 제품 뿐 아니라 앱까지 (앱스토어에서) 빼버릴 경우엔 얘기가 달라진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건 앱 개발자 생태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그런 보복 행위보다는 로펌을 동원한 대응이 바람직할 것이란 주장을 펼쳤습니다. 온라인 스토어에서 위딩스 제품 판매를 중단하는 것과 앱스토어에서 앱을 제거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란 겁니다.

■ '시장과 돈' 서로 다른 두 가치 중 어디에?

삼성과 애플 소송도 초반엔 만만찮은 ‘진흙탕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두 회사가 무차별 폭로전을 펼치면서 담당 판사에게 경고를 받기도 했습니다. 삼성은 한 때 ‘카피캣(copycat)’이란 오명을 쓰기도 했구요.

하지만 두 회사의 소송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법률’ 테두리 내에서 진행됐습니다. 감정적인 부분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간 겁니다.

그게 가능했던 건 ‘특허는 수단’이란 최소한의 공감대는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건 두 회사 모두 스마트폰 시장에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부분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노키아는 다릅니다. 스마트폰 사업에선 완전히 발을 뺀 상태입니다. 노키아는 최근엔 ‘특허사업’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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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애플 va 노키아’는 ‘애플 vs 삼성’과는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진흙탕 싸움을 벌이다가도 의외로 쉽게 화해에 이를 수 있단 얘기입니다.

삼성과 애플은 ‘돈 보다는 시장’에 더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양보할 여지가 별로 없었습니다. 반면 노키아는 ‘시장보다는 돈’ 쪽에 더 많은 관심이 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