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특허법 289조에 '삼성 승리' 비결있다

"디자인 특허권자 정당한 이익 보호"가 취지

홈&모바일입력 :2016/12/08 14:48    수정: 2016/12/09 16:21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삼성이 세기의 특허 소송에서 애플에 승소하면서 미국 특허법 289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급법원이 애플 디자인 특허를 침해한 삼성에 대해 ‘전체 이익 상당액’을 기준으로 거액의 배상금을 부과한 근거 조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대법원이 지난 6일(이하 현지 시각) ‘일부 디자인 특허 침해 때 전체 이익 상당액을 배상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삼성 상고를 수용하면서 상황이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물론 대법원은 특허법 289조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다만 289조가 ‘전체 이익 상당액’을 부과하도록 한 ‘제조물품(article of manufacture)’의 범위를 완제품이 아니라 부품으로 확대 해석했다.

이번 판결 덕분에 삼성에 부과된 디자인 특허 침해 배상금 3억9천900만 달러는 크게 경감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우에 따라선 현재 배상금의 10%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삼성과 애플 간 디자인 특허 상고심이 열린 미국 대법원. (사진=미국 대법원)

하지만 이번 소송은 단순히 삼성과 애플 두 회사의 승부 측면에서만 중요한 게 아니다. 대법원의 이번 판례는 앞으로 스마트폰 같은 IT 기기를 둘러싼 특허 분쟁 때 배상금 지급의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엄청난 파급 효과를 몰고올 전망이다.

그렇다면 미국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특허법 289조의 기본 정신 자체를 뒤흔든걸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렇지 않다. 이 조항이 생긴 배경을 잘 따져보면 디자인 특허를 실용특허보다 더 과도하게 보호하기 위한 의도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먼저 미국 특허법 289조 35항에 규정된 배상 관련 부분부터 살펴보자.

"디자인 특허 존속 기간 내에 권리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중간 생략) 그런 디자인 혹은 유사 디자인으로 제조된 물건을 판매한 자는 전체 이익 상당액을 권리자에게 배상할 책임이 있다." (미국 특허법 289조)

■ 전체 이익 상당액, 디자인이 전부이던 시절 만든 규정

이 규정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미국 특허법은 디자인 특허에 대해서만 ‘전체 이익 상당액’을 배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왜 이런 규정이 생겼을까?

이 부분에 대해선 삼성이 상고신청서에 자세하게 서술했다. 일단 그 부분을 한번 살펴보자.

미국 대법원에서 디자인 특허 배상 관련 공방이 벌어진 것은 1885년이었다. 카펫 디자인 특허가 쟁점이 됐던 이 재판 원고 측은 처음엔 특허침해자의 수익에다 자신들이 잃어버린 이익을 합한 배상액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후 잃어버린 이익으로 범위를 좁혔다. 당시 피고가 카펫 판매를 통해 수익을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배상액 산정 과정에도 공방이 거듭됐다. 당초 원고 측은 자신들의 마진에다 피고가 판매한 카펫 개수를 곱한 금액을 요구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이 이 금액이 과하다면서 개당 6센트 배상액을 부과했다.

(사진=삼성 대법원 준비 서면)

항소심에서 뒤집어졌던 이 재판은 대법원에서 다시 원고 승소 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 2년 뒤인 1887년에 미국 의회가 특허법을 제정했다. 여기서 디자인 특허 침해 때 전체 이익 상당액을 배상한다는 기준이 확정됐다.

따라서 289조의 취지를 이해하기 위해선 당시 의회가 왜 '전체이익 상당액 배상’이란 규정을 만들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삼성 측은 대법원 준비서면에서 1887년 법은 크게 세 가지 취지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첫째. 이 법은 카펫이나 화장지, 유로(oil-cloths) 같은 장식적 물품에 적용된다.

둘째. 카펫 같은 디자인 특허 보유자들이 입증의 어려움 때문에 ‘침해 행위에 대한 효과적인 금전 보상을 받지 못하는’ 점을 우려했다.

셋째. 일반적인 인과관계나 형평성 원칙에서 배치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주장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전체 이익 상당액’ 배상을 규정한 건 디자인이 사실상 전부이던 시절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부분이다.

■ "1952년 법 개정 때 침해행위로 얻은 이익 지침 확정"

하지만 더 중요한 부분은 그 다음 부분이다. ‘전체 이익 상당액’은 원래 특허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었다는 것. 다시 말해 정확한 피해액을 산정하기 힘들다는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조치였단 얘기다.

스마트폰 같은 첨단 IT 제품에서 일부 디자인 특허 때 제품 전체 이익을 기준으로 한 배상을 통해 ‘폭리’를 취하도록 해주는 규정은 아니란 얘기다.

이후 이 규정은 몇 차례 개정이 됐다.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1952년 특허법 개정이다.

1952년 개정 법률은 250달러를 웃도는 제품에 한해 전체 ‘제조물품성’에 적용된 특허 침해 때 전체 이익 상당액을 배상하도록 한 점은 1887년 특허법과 동일했다.

하지만 이 법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이전 법과 뚜렷하게 구별된다.

첫째. 1887년 특허법 당시 논란이 됐던 고의 침해 조항을 삭제했다.

둘째. ‘디자인이 적용된 제품 제조 혹은 판매를 통해 얻은 전체 이익'이란 부분을 삭제했다. 대신 ‘전체 이익 상당액'이란 문구를 추가했다.

이에 대해 삼성은 대법원 준비서면에서 “1952년 개정으로 인해 전체 이익은 ‘제조물품’과 ‘침해 행위로 얻은 이익’에 한정해야 한다는 지침이 확정된 셈”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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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배경을 깔고 보면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법 취지에서 크게 벗어난 건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애당초 ‘전체 이익 상당액’이란 규정 자체가 ‘특허권자의 정당한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규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마트폰처럼 복잡한 제품에선 어디까지를 특허권자의 정당한 이익으로 볼 것이냐는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접근할 경우 완제품이 아니라 디자인 특허가 적용된 해당 부품까지 특허법 289조의 ‘제조물품’으로 확대해석한 미국 대법원 판결은 충분히 합리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