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년만의 디자인 특허 상고심의 최종 승자는 삼성이었다. 삼성 스마트폰이 ‘카펫이나 스푼 시대 특허법’까지 흔든 셈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6일(현지 시각) 일부 디자인 특허 침해 때 전체 이익 상당액을 배상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공방에서 삼성 손을 들어줬다. 특허 침해로 발생한 손실 부분에 대해서만 배상해야 한다는 삼성의 주장을 받아들인 셈이다.
하급심이 ‘전체 이익 상당액’을 기준으로 삼성에 배상금을 부과한 근거가 된 것은 미국 특허법 289조였다.
이에 따라 상고심이 시작되기 전부터 특허법 289조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디자인 특허 소송 때 배상금 지급의 기준이 된 조항이기 때문이다.
"디자인 특허 존속 기간 내에 권리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중간 생략) 그런 디자인 혹은 유사 디자인으로 제조된 물건을 판매한 자는 전체 이익 상당액을 권리자에게 배상할 책임이 있다." (미국 특허법 289조)
■ "스마트폰과 양탄자는 다르다" 주장 관철
대법원 상고심에 이르기까지 삼성은 특허법 289조를 스마트폰 같은 소송에 문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부적합하다고 주장해 왔다. 자동차의 컵 받침대 특허를 침해했는 데 자동차 전체 판매 이익을 기준으로 배상금을 매기는 것이 과연 타당하냐는 게 삼성의 일관된 논리였다.
이 같은 주장은 삼성의 상고신청서에도 그대로 담겨 있다.
“스푼이나 양탄자 등에선 디자인 특허는 아마도 핵심적인 기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그렇지 않다. 디자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놀랄만한 기능들을 제공하는 셀 수 없이 많은 요소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휴대폰과 컴퓨터를 혼합한 스마트폰은 미니 인터넷 브라우저, 디지털 카메라, 비디오 리코더, GPS 내비게이터, 뮤직 플레이어, 게임기, 워드 프로세서, 영화 재생 장치 같은 것들이 담겨 있다.”
애플 승소 판결을 했던 항소법원은 삼성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그 문제는 정책과 관련된 것”이라면서 “(디자인 특허 배상 범위는) 의회에 가서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판결했다.
사법부는 어디까지나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법 취지대로’ 판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 셈이다. 반면 삼성은 항소법원이 특허법 289조의 입법 취지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길 회피했다고 비판했다.
이번 대법원 소송이 관심을 끈 건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양탄자나 스푼, 카펫처럼 디자인이 사실상 제품의 전부나 다름 없는 시대에 만들어진 특허법을 첨단 IT 시대에 그대로 고수하는 게 과연 타당하냐는 문제제기였던 셈이다.
실제로 최근 120년 사이에 미국 대법원이 디자인 특허 관련 소송을 한 것은 스푼 손잡이(1871년), 카펫(1881년), 안장(1893년), 양탄자(1894년) 등이 전부였다. 1894년 양탄자 디자인 특허 문제를 다룬 뒤엔 단 한차례도 관련 상고심을 열지 않았단 것이다.
■ 제조물품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큰 의미
디자인 특허 배상 기준과 관련해 또 다른 쟁점 중 하나는 ‘제조물품성’이다. 제조물품성은 디자인 특허의 기본 개념을 규정하는 미국 특허법 171조에 나온다. 미국 특허법 171조는 ‘제조물품의 새롭고 독창적이며 장식적인 디자인(any new, original and ornamental design for an article of manufacture)’에 대해 특허권을 부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 중 문제가 되는 부분은 ‘장식적(ornamental)’이란 부분과 ‘제조물품성(article of manufacture)’이다. 원래 미국 특허법에는 ‘유용한(useful)’ 디자인에 대해 특허권을 부여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는데, 미국 의회가 1902년 ‘장식적’이란 용어로 대체했다.
이번 판결에서도 그 부분을 문제 삼았다. 미국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연방항소법원의 ‘제조물품성’ 해석은 특허법 289조와 일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항소법원은 스마트폰 부품은 소비자들이 독립적으로 구매할 수 없기 때문에 제조물품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그 부품들이 구성하는 제조물품인 스마트폰의 전체 이익 상당액을 기준으로 배상금을 산정하는 게 타당하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제조물품성은 소비자들에게 판매되는 제품 뿐 아니라 그 제품의 부품까지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이다”면서 “따라서 특허법 289조의 제조물품을 최종 제품으로 해석하는 것은 그 법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한 것이다”고 지적했다.
미국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스마트폰 같은 복잡한 IT 제품 디자인 특허 소송의 잣대가 됐던 미국 특허법 289조를 적극적으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 것으로 풀이된다.
첨단 기술이 총동원된 삼성 스마트폰이 양탄자 시대에 만들어진 특허법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을 이끌어낸 셈이다.
■ 미국 대법원, 특허법 289조 자체는 안 건드려
하지만 미국 대법원은 특허법 289조 자체는 건드리지 않았다.
이와 관련 미국 대법원 전문 사이트인 스타커스블로그는 “이번 판결에선 쟁점이 된 실제 스마트폰에서 제조물품성을 어떻게 구분할 지에 대한 명확한 지침은 제시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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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스마트폰 부품도 특허법의 핵심 개념인 ‘제조물품성’으로 볼 수 있다는 선에서 다시 검토하라는 정도의 지침을 보냈다는 게 스카터스블로그의 분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판결은 양탄자 시대에 만들어진 특허법을 새롭게 해석했다는 점에서도 향후 유사한 여러 소송들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