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창조과학부가 지능정보사회를 구현하겠다며 추진하고 있는 ‘지능정보기술 플래그십 프로젝트’를 놓고 지능정보기술연구원(AIRI) 특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달 초 미래부는 올해부터 5년 동안 750억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하는 4개 세부사업으로 구성한 지능정보기술 프로젝트의 제안요청서(RFP)를 공개했다. 이 프로젝트는 '정책지정' 형태로 AIRI가 수행할 예정이었지만 최근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AIRI 특혜 의혹 논란이 일자 '경쟁 제한없음'으로 조건이 바뀌었다.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능정보기술 플래그십 프로젝트는 AIRI 정책지정 조건이 사라지면서 현재 몇몇 대학, 관련 업체들이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프로젝트 공모 준비에 한창이다. 인공지능에 관심을 갖고 있는 업체들은 오랜만에 발주된 대형 국책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물밑경쟁에 돌입했다.
이 가운데 RFP 세부항목이 AIRI 중심으로 돼 있어 경쟁 공모 방식은 퇴색했고 몰아주기 국책과제라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항목은 크게 두가지다. 공개 소프트웨어로 개발하라는 내용과 글로벌 연구인력을 활용하라는 부분이다. 특히 글로벌 공동연구는 AIRI가 표방했던 연구 방식과 유사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올해만 150억 투자…5년간 750억 투입되는 대형 사업
‘지능정보기술 플래그십 프로젝트’는 5년 동안 750억원이 투자되는 대형 사업이다. 올해만 이 사업에 150억원이 투자된다. 정부가 내년 클라우드 진흥에 투자하기로 한 총 예산규모가 210억원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올해가 불과 1개월 여 남은 시점에서 150억원 투자금이 얼마나 큰 규모인지를 알 수 있다. 한 소프트웨어 업계 관계자는 "10억원이 넘는 국책과제도 대형이라고 쳐주는데 750억이면 굉장히 큰 사업"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발주된 지능정보기술 국가 프로젝트는 총 4개 사업이다. ▲자율지능 디지털 동반자 프레임워크 및 응용 연구 ▲자율지능 동반자를 위한 적응형 기계학습 기술 연구 ▲사용자의 의도와 맥락을 이해하는 지능형 인터랙션 기술 연구개발 ▲대화 상대의 감성 추론 및 판단이 가능한 감성 지능 기술 연구개발 등이다.
올해 배정된 예산은 각 사업별로 50억, 40억, 30억, 30억원 등이다. 첫 번째 프레임워크 개발 사업은 나머지 응용 사업들과 연계해 지능형 정보 프레임워크를 만드는 큰 그림을 담았다. 다른 사업은 응용 기술을 개발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오랜만에 대형사업이 발주되자 업계의 관심은 뜨겁다. 지난 9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프로젝트 사업설명회는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업계 관계자들이 모였다. IITP는 이날 사업설명회에 60여개 업체 15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추산했다.
■관련업계 AIRI 들러리 서는 것 아닌가 우려
이 프로젝트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업계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특혜 의혹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정책지정을 통해 프로젝트를 수주할 기회를 놓친 AIRI가 경계대상 1호다. AIRI 밀어주기라면 들러리를 서고 싶지 않다는 얘기다.
인공지능 업체 등 관련업계는 ‘경쟁 제한 없음’이라는 항목만 붙였을 뿐 사실상 연구원을 위한 프로젝트라고 반발하고 있다. 공개 소프트웨어 개발 조건이나 외국 연구기관과의 공동 작업도 AIRI에 유리한 조건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첫 번째 프레임워크 세부 프로젝트 수주업체가 다른 두번째부터 네번째까지 프로젝트 수주업체와도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어 AIRI가 총괄 프로젝트를 맡고 다른 업체들에 직접 관여하게 될 것이라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한 민간 업체 관계자는 설명회 자리에서 “소프트웨어를 공개하라고 하면 실질적으로 기업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뭐냐”며 “프로젝트 기간 동안 인건비 정도 받을 수 있다는 것 외에 강점이 없는 것 같은데 기업 입장에서 프로젝트 끝났다고 여기에 투입된 인력을 자를 수도 없는 것 아니냐”고 질문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4가지 모두 민간기업보다는 연구원에 유리한 공개소프트웨어 개발 조건이 붙었다. 소프트웨어를 공개하는 대신 기술사용료는 내지 않는 조건이지만 기업 지적재산인 소스코드를 공개하라는 것은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연구원이 아닌 패키지를 판매해 수익을 얻는 민간기업이 수용하기 힘든 조건이다.
이에 대해 IITP 관계자는 “기술료를 내지 않는 대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모듈화까지 모두 공개하라는 얘기”라며 “정부가 이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이유는 누구든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애써 개발한 프로젝트의 소스코드를 공개하면 인건비 등을 고려했을 때 남는 것이 별로 없다는 건데 차라리 나중에 공개된 소스코드를 사용하는 방식이 비용 투자를 줄일 수 있을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글로벌 공동연구 항목도 AIRI에 유리
일부 인공지능 업체들은 우수 해외 연구인력 활용, 글로벌 공동연구를 권고한 사항에 대해서도 반발하고 있다.
사업설명회에서 김형철 IITP CP는 “제안기관은 해외 연구인력을 활용했으면 좋겠다”며 “이는 강력한 권고(strongly recommend)”라고 말했다.
해외 인력 활용은 AIRI가 출범할 때부터 주장해 왔던 내용이다. AIRI는 지난 7월 출범 기자간담회에서 해외 인공지능 전문인력을 활용하겠다고 한 바 있다. 지난달 출범에 앞서 해외 연구개발 인력 모집을 하면서 해외 연구 네트워크를 쌓는 작업을 했다.
AIRI는 홈페이지에도 글로벌 연구인력 활용의 목적을 직접 명시하고 있다. 홈페이지에는 “글로벌의 연구원들과 소통하면서 그들과 어깨를 나란 히 할 수 있는 수준의 연구를 수행할 것”이라고 적었다. AIRI는 최근 국제 컨퍼런스도 개최하는 등 해외 인공지능 전문인력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서 프로젝트 수주에 유리한 환경을 갖췄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한 인공지능 업체 대표이사는 “우리도 참여를 해보려고 검토를 해봤지만 한달만에 해외 연구기관과 글로벌 공동연구 계획을 작성해 내라는 것은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요식행위를 하라는 것”이라며 “결국 해외 대학에 연구금 일부를 주고 원천기술은 받아오지도 못할 수 있다”고 반발했다.
이어 “프로젝트 기획 단계 때부터 주시했지만 초반에 글로벌 공동연구가 포함돼 있지 않았는데 최근 AIRI에 대한 몰아주기 의혹이 나오면서 갑자기 추가된 내용”이라고도 의혹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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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하다고 지적되는 부분은 또 있다. IITP는 첫 번째 프레임워크 수주업체가 나머지 프로젝트들과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명확한 업무 범위 없이 수주한 업체들끼리 협의하라는 식이다. 인력이 10여명 정도로 적은 AIRI가 전체 프로젝트를 모두 수행할 수 없게 되자 프레임워크 개발을 AIRI에게 주고 다른 프로젝트에 대한 영향력도 행사하도록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 CP는 AIRI에 대한 의혹에 대해 “우리나라 인공지능 산업이 많이 뒤쳐져 있는데 도전적인 과제들을 기획한 것”이라며 “국가는 지난 2013년부터 인공지능 분야에 대한 투자를 해왔다”며 AIRI 특혜 의혹을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