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 기술보다 더 중요한 '시스템 혁신'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수평적-열린 사고가 핵심

데스크 칼럼입력 :2016/10/18 17:06    수정: 2016/10/19 11:09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혁명은 불온하다. 기존 질서를 뒤엎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혁명이란 단어엔 (상징적 혹은 실질적) 피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다. 기득권층이 혁명을 싫어하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지금 이 나라에선 혁명 열풍이 불고 있다. 앞에 붙은 ’4차산업’이 조금 희석시켜주긴 했지만 그래도 혁명인데, 다들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예사롭지 않은 이 열풍의 비결은 뭘까?

18일 오전. 국회에선 의미 있는 모임이 하나 있었다. 4차산업혁명 전도사인 클라우스 슈밥 경제경제포럼(WEF) 회장 초청 특별 대담이었다. 제법 넓은 국회 회의실에 참가자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자리가 없어 통로에 보조 의자를 가득 채웠을 정도였다.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가운데)이 18일 국회에서 열린 4차산업혁명포럼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이상엽 카이스트 교수, 송희경 새누리당 의원, 한 사람 건너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그리고 신용현 국민의당 의원.

■ 기술보다 더 중요한 건 정체성 변화

슈밥 회장은 이날 4차산업혁명의 특징을 네 가지로 요약했다. 변화의 속도. 융합. 상품이 아닌 시스템 혁명. 그리고 정체성 변화. 크게 네 가지가 4차산업혁명을 아우르는 특징이라고 했다. 3차산업혁명은 하고 있던 것을 더 빠르게 하는 것이라면 4차산업혁명은 우리 자체를 바꿔놓고 있다는 얘기였다.

특히 이날 중요하게 주고받은 얘기는 정체성 변화였다. 이 말은 사고방식 변화란 말로 바꿔 읽어도 큰 무리는 없다.

이를테면 이런 얘기다. 그 동안의 산업혁명은 파괴적이었다. 증기 기관이 나오면서 이전 생산동력이 뒷전으로 밀려났다. 마찬가지로 전기는 증기를 밀어냈다. 이런 변화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4차산업혁명은 다르다. 기존 산업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존 산업과 (신기술을) 융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슈밥 회장이 말했다. 그게 4차산업혁명이 다른 점이다.

좀 더 직접적인 얘기도 나왔다. 재벌 위주 한국 경제 구조에 대한 얘기였다. 그 동안은 거대 물고기가 시장을 주도했다면 앞으론 작은 물고기들의 조합으로 기민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이날 좌장을 맡은 카이스트 이상엽 교수는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시대가 아니라 빠른 물고기가 느리게 가는 물고기를 잡아먹는 시대”라고 풀어줬다.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

슈밥은 또 4차산업혁명 시대엔 맥락적인 지성을 키워야 한다고도 했다. 칸막이식 조직이나 사고는 4차산업혁명시대에 효과를 발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개별적 요소를 연결할 수 있는 열린 사고를 갖지 않으면 혁명의 흐름에서 뒤쳐질 수도 있단 얘기였다.

여기까지 듣고보니 처음 가졌던 의문이 어렴풋하게 풀렸다. 많은 사람들이 왜 (4차산업) 혁명이란 말을 그토록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를.

많은 사람들은 4차산업혁명에서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기술을 연상한다. 때 마침 우리에게 충격을 안겨준 알파고를 떠올리는 분들도 적지 않다. 물론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은 중요하다. 그 기술들이 4차산업혁명의 물꼬를 튼 것도 맞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의식변화, 정체성 변화다. 규제 개혁과 제도 개선도 꼭 필요하다. 지디넷코리아가 지난 달 '4차산업혁명 소통회'에서 제도 개선과 소통을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기술'이나 '남의 일'이 아니다. 나 스스로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 대한민국의 미래, 진지한 소통서 희망 읽었다)

(☞ 4차혁명 규제개혁, 민관소통이 먼저다)

혹시 우리는 4차산업혁명을 얘기하면서도 '정체성 변화'란 부분을 머릿 속에서 지워버린 건 아닐까? 그래서 '고독해야 할' 혁명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 한국과 독일의 차이, 그리고 3차혁명과 4차혁명의 차이

이날 오고간 4차산업혁명 담론 중에서 유독 '정체성 변화'란 말이 내 가슴에 강하게 꽂힌 건 그 때문이었다. 물론 그건 곧 우리들의 근본을 바꿔야 한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우리나라 경제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수직적 구조로 돼 있다. 대부분의 조직들 역시 상명하복에 더 익숙하다. 수평적 소통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편이다.

슈밥을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은 4차산업혁명 시대엔 이런 구조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작지만 강한 기업’이 경제의 주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그러자면 기득권을 가진 측에서 협력적 소통에 나서야 한다. 물론 기득권을 상당 부분 내려놓을 준비가 돼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슈밥 회장은 이날 “한국과 독일은 비슷하지만 다르다”면서 “독일엔 강소기업, 히든 챔피언들이 있다”고 했다. 뒤집어 얘기하면, 한국엔 그런 기업들을 찾기 힘들단 얘기였다. 왜 그럴까? 수평적, 협력적 문화 부재 때문 아닐까?

슈밥 회장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 “지금 미국과 유럽에선 새로운 간극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바로 옛 것을 지키려는 정당과 새로운 문을 여는 정당 간의 차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열린 마음으로 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난 엉뚱하게도 김수영의 싯구절을 떠올렸다. ‘푸른 하늘을’이란 시의 한 구절이었다.

지디넷코리아 주최로 지난 9월 20일 서울 한 호텔에서 열린 4차산업혁명 대비 민관 특별 소통회.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4차산업혁명. 분명 우리가 앞서 나가야 할 분야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냉정하게 반성해야 할 대목이 있다. ‘4차산업혁명’에서 진짜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소통'과 인간이란 사실을 잊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처절한 반성. 시스템과 정체성 변화 없는 기술 발전은 '속빈 강정'이 될 수도 있다는 또 다른 반성.

혹시 우린 4차산업혁명의 핵심은 빼 놓은 채 기술 발전에만 눈이 팔려 있는 건 아닐까?

정말 냉정하게 반성해야 할 것 같다. 제 아무리 뛰어난 기술로 무장하더라도 수평적 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는 마음가짐이 없다면, 진정한 혁명은 완수하기 힘들 터이기 때문이다. 난 그게 '4차산업혁명 전도사' 클라우스 슈밥 회장 대담이 던진 핵심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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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그런 측면에서 이날 모임은 조금 아쉬웠다. 주인공인 슈밥 회장은 무려 5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국회의장과 만나느라 늦었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두 가지가 아쉬웠다. 하나는 그가 얘기하는 ’변화의 속도’와 ‘수평적 사고’ ‘협력’이란 키워드와 살짝 엇박자를 보였단 점이다. 또 하나는 플로어를 가득 채운 현장 전문가들이 4차산업혁명 전도사와 주고받을 날선 질문과 답변이 생략된 점이었다. 내가 오늘 가장 많이 기대했던 건 슈밥의 원론과 각계 전문가의 각론이 ‘행복한 결합’을 하는 멋진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