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도 직접 넥서스 판매량을 공개한 적이 없다.”
‘픽셀’이란 스마트폰을 내놓은 구글을 두고 제조회사 사이에서 하는 말이다. 구글이 하드웨어 사업에 본격 진입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에 대수롭지 않다고 여긴다. 픽셀 이전에 넥서스 제품군이 2010년부터 나왔다는 이유에서다.
“(픽셀 출시로 안드로이드 파트너와의 관계는) 전혀 다른 문제로 본다. 우리는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있고 삼성은 여전히 자신들의 제품 라인업에 대한 정보를 우리에게 공유하고, 우리는 그 이야기를 LG에게 말하지 않는다.”
안드로이드와 크롬OS를 총괄하는 히로시 로크하이머 구글 수석부사장이 블룸버그와 진행한 인터뷰 가운데 일부다. 픽셀 발표 당일, 안드로이드 파트너 회사와의 관계는 기존과 달라질 게 없다는 점을 인터뷰로 널리 알렸다.
구글은 지난 4일(현지시간) 픽셀을 발표하면서 직접 하드웨어 설계를 챙긴 점과 새 안드로이드 최적화 등을 내세웠다.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을 강조하는데 애를 썼다.
실제 최신 스마트폰의 기본 사양만을 지녔던 넥서스 시리즈와 달리 최고 사양 제품군을 뜻하는 프리미엄폰으로 내놨다. 또 한국식으로 따지면 자체 온라인 판매의 자급제 방식을 고수해왔지만 통신사를 통한 판매도 진행한다.
하지만, 이전부터 넥서스를 통해 레퍼런스폰이란 이름으로 안드로이드의 방향을 제시하는 선에서 달라진 것은 없다는 분석이다.
■ 픽셀이 수익성 사업일까
픽셀은 제품 면으로 봤을 때 훌륭한 수준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스마트폰 선택지 가운데 하나가 더 늘었다. 픽셀을 주도하는 구글 입장에서 보면 이야기는 다르다. 수익을 기대해야 하는 주주회사의 사업 성격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직접 설계와 제조를 했다고 하지만, 픽셀은 결국 대만의 HTC 공장에서 나온 제품이다. 잘 팔린다고 해서 생산량을 마음대로 늘릴 수가 없다. HTC와 맺은 계약에 따라 출하되는 제품을 다시 소비자에 전달하는 수준에 그친다.
위탁생산을 맡은 HTC에게나 계약 조건에 맞는 수익사업일 뿐, 픽셀 스마트폰 자체가 구글에 신규 수익원처럼 돈이 되지 않는다. 잘 팔리는 제품을 회사 뜻대로 더 많이 팔 수 없는 것은 상업적 행위에 맞지 않다는 뜻이다.
실제 생산량과 판매량만 보더라도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픽셀 이전 넥서스 시리즈를 보면 장수 셀링 모델로 꼽히는 넥서스5가 1년간 누적 판매 450만대를 상회하는 선이다. 그나마 잘 팔린 모델이 이 정도 수준이다. 넥서스 시리즈는 국내에서 특히 무약정이 가능한 언락폰에 선탑재 앱이 없다는 이유로 소비자 관심은 매우 높은 편이지만, 연간 글로벌 판매량은 많지 않은 편이다.
대표적인 구글의 안드로이드 파트너인 삼성전자와 비교해보면 구글의 스마트폰 사업이 수익성을 노린 것이 될 수 없다는 점이 드러난다.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7 출시 직후 배터리 문제로 전량 수거한 물량이 250만대 가량이다. 애플 아이폰이 절대적인 강세를 보이는 하반기 시장이다. 때문에 갤럭시노트 시리즈는 상반기에 나오는 갤럭시S 시리즈보다 판매량이 낮다. 이 시점에 삼성전자가 사업자 공급 초도물량이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넥서스 모델 연간 누적 판매량 절반을 넘는다.
■ 수익성이 없으면 자선사업일까
수익성도 없는데 주주회사가 이같은 사업을 전개할 이유는 없다. 좀처럼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북미 시장에서 통신사 버라이즌을 통해 출시한다는 점이 유독 눈에 띄는 부분이다.
단말기 대리 판매와 서비스 가입을 거쳐 월간 이용료를 받는 통신사업 모델 특성상 예상 판매량이 뛰어난 휴대폰은 무조건적인 영업 대상이다. 통신사가 발벗고 나서서 판매를 자처한다는 이야기다.
반면 구글 픽셀은 위탁생산에 따라 제한된 생산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수요가 높아도 통신사가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이 크지 않다. 즉, 버라이즌에 픽셀 판매를 구애한 쪽은 구글에 가깝다는 말이다.
실제 크롬캐스트와 같은 일부 제품을 빼고 구글이 하드웨어 제조 유통 사업모델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제조사의 제품수리나 반품 등 사후지원(AS) 문제로 통신사들은 넥서스폰 대리 판매를 꺼려왔다.
반대로 애플이 본격적인 아이폰 판매를 전개할 때는 구글과 다른 전략을 폈다. 두 회사는 제품 유통과 판매를 두고 통신사를 대하는 방식이 다르다.
애플은 늘 버라이즌과 같은 가입자 1위 통신사에 아이폰을 먼저 주지 않았다. 가입자 유치 이탈 경쟁을 펼치는 통신사들의 사업 행태를 이용한 것이다. 1위 통신사를 따라 잡으려는 2위 통신사에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아이폰 물량을 내준 뒤, 아이폰으로 가입자 이동이 일어나면 1위 사업자에도 제품을 공급하면서 서로 더 많이 팔게 싸움을 부추긴다.
애플이 통신사를 이용했다면, 구글은 통신사에 기댔다는 것이다.
픽셀 프로젝트에 구글의 상당한 인력이 투입된 점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가상현실 헤드셋 등 픽셀과 함께 공개된 다른 제품을 놔두고 보더라도 스마트폰 설계 제작에만 안드로이드팀, 구글서비스팀, 하드웨어팀이 투입됐다.
사회공헌활동과 같은 자선사업이 아닌 이상 수익성이 없는 사업에 회사 인력을 낭비할 이유가 있을까?
■ 결국 플랫폼 고도화로 돈 버는 회사
구글이 픽셀이란 스마트폰을 어렵게 만들고 힘들게 유통경로를 마련한 이유가 필요하다. 안드로이드라는 플랫폼이 그 이유다. 온라인 검색 엔진으로 출발한 회사가 스마트폰 보급 확산 이후 급격히 모바일로 돌아선 세상에서 영향력을 더욱 키운데에는 안드로이드가 있다.
구글이란 검색 사이트가 쥐어주는 사업 못지 않게 모바일 인터넷 세상에서도 구글플레이를 통한 앱 중개 수수료, 유튜브 광고 등 여러 수익사업을 이끌어내면서 PC 온라인 세상의 사업 영향력을 이어왔다.
픽셀은 그런 안드로이드의 발전을 위해 구글이 내세운 무기다. 레퍼런스 스마트폰이라며 넥서스를 내놓을 때와 같이 구글이 직접 안드로이드 표준을 세웠다는 설명이다.
하드웨어 직접 설계에 이목이 쏠렸지만, 결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소프트웨어 쪽인 안드로이드를 쳐다본다.
무엇보다 눈여겨 보는 지점은 구글 어시스턴트다. 아이폰 시리와 같은 음성인식 비서와 같은 기능이다. 구글 나우와는 다르다. 특별할 것 없어보이기도 하지만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인공지능(AI) 관련 서비스로 이끈다고 받아들인다.
모바일 컴퓨팅 환경에서 고도의 인공지능 서비스가 나오기 어렵지만, 스마트폰의 최대 장점은 연결성이다. 외부의 컴퓨팅 자원을 활용하기에 적합하다. 아직은 인공지능이 인간과 기계의 바둑 대결이나 자연어 학습 선에 머물고 있지만 언젠가는 상업적인 서비스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모바일 환경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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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내세워 새로운 가능성에 뒤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했고, 안드로이드 진영에 인공지능 힘싣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결국 구글이 픽셀에 선보인 것처럼 안드로이드 제조사들은 비슷한 길을 걸어야 하는 판이다. 차세대 안드로이드 방향을 구글이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다. 안드로이드라는 모바일 플랫폼에 힘을 싣는 구글의 방식이 픽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