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부러웠던 것일까?
구글이 직접 만든 프리미엄 폰 ‘픽셀’을 내놓으면서 그 동안의 행보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외신들에 따르면 구글은 4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에서 신제품 공개 행사를 열고 5인치 픽셀과 5.5인치 픽셀XL을 공개했다. 두 제품 모두 안드로이드 7.1이 탑재됐다. 아직 다른 안드로이드 파트너들에겐 제대로 공급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OS다.
물론 이날 구글이 내놓은 건 스마트폰 뿐만은 아니다. 가상현실(VR)기기 ‘데이드림 뷰’를 비롯해 와이파이 라우터인 ‘구글 와이파이’ 아마존 에코 대항마인 ‘구글 홈’과 ‘크롬캐스트 울트라’까지 총 다섯개 제품을 내놨다.
■ 사상 처음으로 'phone by Google'이라고 강조
하지만 초점은 역시 스마트폰이다. 특히 구글이 픽셀을 내놓으면서 ‘구글이 만든(made by Google)’이란 표현을 쓰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런 행보는 그 동안 구글이 보여줬던 전략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당연히 두 가지 질문이 뒤따른다.
첫째. 구글은 왜 하드웨어 쪽에 그토록 강한 야심을 보이는걸까.
둘째. 구글의 이런 전략은 모바일 시장 판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일단 스마트폰 시장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스마트폰 시장은 삼성과 애플, 그리고 구글의 삼각 구도다. 물론 삼성과 구글은 동맹 관계다. 둘이 애플이란 공동의 경쟁 상대와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삼성과 구글 역시 100% 우호적 동맹관계라고 볼 수만은 없다. 둘 간에도 미묘한 견제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삼성은 구글 플랫폼에 의존하는 상황이 부담스럽다. 반대로 구글은 안드로이드 단말기 시장에서 삼성의 비중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는 것이 우려스럽다. 삼성이 플랫폼 쪽에 눈돌리는 것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것도 이런 걱정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관계에도 불구하고 구글의 스마트폰 전략은 ‘안드로이드 연합’ 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전략을 통해 후발 주자인 구글은 양적인 면에선 애플을 압도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전 세계 스마트폰의 약 90%는 안드로이드 폰이다.
안드로이드 동맹의 핵심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분할 정책이었다. 구글은 철저하게 안드로이드 플랫폼 쪽에만 주력했다.
대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판매협약(MADA)을 통해 단말기 제조업체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MADA는 구글 플레이, 검색 같은 핵심 앱들을 반드시 메인 화면에 노출하도록 하는 조건을 담고 있다. 또 화면을 넘길 때마다 구글 앱을 최소한 하나 이상 노출하도록 하는 등 까다로운 편이다.
이 조건을 따르는 단말기업체에 한해 안드로이드란 명칭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소프트웨어 쪽엔 이처럼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었지만 단말기 시장에 야심을 드러낸 적은 없다.
■ 픽셀 내놓은 구글이 '넥서스' 버린 이유는…
그렇다고 구글이 단말기를 만들지 않은 건 아니다. 지난 2010년 넥서스 원이란 구글 브랜드 단말기를 내놓은 적 있다. 이 때도 제작은 HTC가 맡았다.
2012년엔 한 술 더 떴다. 모토로라를 125억 달러에 전격 인수한 것. 당시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하자 수 많은 안드로이드 단말기 업체들이 바짝 긴장한 적 있다. ‘동맹’이 해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하지만 구글은 3년 뒤 중국업체 레노버에 모토로라를 넘겼다. 매각 당시 가격은 29억 달러. 구글이 모토로라 거래를 통해 손해를 봤다는 분석도 적지 않았다.
구글은 또 한 때 ‘프로젝트 아라’란 조립폰 사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PC처럼 스마트폰도 필요한 부품을 구매한 뒤 조립해서 쓸 수 있도록 하겠단 발상이었다.
보기에 따라선 픽셀 역시 이런 프로젝트 중 하나로 넘길 수도 있다. 여전히 단말기 제작은 HTC가 감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픽셀은 그 동안의 단말기 프로젝트와는 조금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구글이 단말기 설계 단계부터 최종 완성 때까지 철저하게 관여했다는 점이다. 구글이 유독 픽셀에 대해 ‘made by Google’ ‘phone by Google’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픽셀은 이전 프로젝트인 넥서스와는 어떻게 다를까?
IT 전문 매체 더버지는 “넥서스는 구글 본사 내에선 약간은 취미에 가까웠던 프로젝트”라고 평가했다. 단말기 자체보다는 제조 파트너들에게 앞으로 나올 안드로이드 플랫폼의 레퍼런스 역할을 하는 측면이 강했단 얘기다.
그런데 구글은 픽셀을 내놓으면서 ‘넥서스 프로젝트’를 버렸다. 모바일 전략에서 중요한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젠 소프트웨어부터 하드웨어까지 모든 것을 통제하겠다는 야심을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씨넷, 아스테크니카, 더버지를 비롯한 많은 외신들이 “픽셀 출시와 함께 구글은 또 다른 애플이 되려하고 있다”고 평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 '하드웨어 없는 소프트웨어는 한계' 절감한듯
그렇다면 구글은 왜 하드웨어 생산에 직접 뛰어드는 것일까? 당연한 얘기지만 하드웨어를 맘대로 할 수 없는 소프트웨어 전략은 한계가 많기 때문이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더버지가 멋지게 표현했다.
더버지는 ‘픽셀과 함께 구글이 또 다른 애플이 되려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하드웨어를 통제하지 못하면서 모바일 세계에서 경쟁하는 것은 복권 놀이와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최첨단 성능과 디자인을 겸비한 제품으로 시장을 깜짝 놀라게 할 수도 있지만, 때론 배터리 결함 같은 것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부분은 역시 최적화다. 구글은 픽셀 폰 설계 단계부터 하나 하나 개입했다. 최신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 7.1을 탑재하면서 성능을 최적화했다. 하드웨어까지 직접 통제했기에 가능했던 움직임이다.
게다가 픽셀은 구글이 통신사와도 직접 계약을 했다. 미국에선 버라이즌이 픽셀을 독점 공급한다. 물론 구글은 버라이즌 공급 폰과 별도로 ‘언락폰’도 함께 출시할 계획이다. 하지만 무게 중심은 역시 통신사와 제휴 쪽에 있다고 봐야 한다. 이 또한 넥서스 때와는 다른 움직임이다.
구글의 전략 변화는 이미 지난 4월부터 조금씩 감지됐다. 당시 구글은 모토로라 사장 출신인 릭 오스털로를 하드웨어 부문 수장에 앉혔다. 하드웨어 쪽으로 무게 중심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면 굳이 이렇게까지 중량감 있는 인물을 영입할 이유는 없었다.
물론 구글의 이런 행보에 의문이 생기지 않는 건 아니다. 잘 아는 것처럼 구글은 ‘데이터’를 중시하는 회사다.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개방하면서 최대한 많은 파트너사를 확보한 것도 그런 비즈니스 모델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구글이 단말기 사업에 드라이브를 거는 건 ‘양날의 검’일 수도 있다. ‘동맹’의 와해는 곧바로 이용자 감소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구글은 모토로라 인수 때도 ‘동요하는 동맹군’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 적 있다.
■ 안드로이드 동맹 깨려는 걸까…'스마트폰 이후'가 핵심
이런 구글이 왜 갑자기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내놨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좀 더 큰 그림을 봐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스마트폰 시장만 염두에 뒀다면 굳이 구글이 직접 나설 이유는 없다.
시장이 포화 상태에 다다른 상황에서 비용 부담이 있는 단말기 제조에 뛰어드는 건 구글스럽지 못한 행보다.
하지만 이날 구글이 다섯 가지 하드웨어를 동시 출시했다는 점에 눈을 돌리면 얘기가 조금 달라질 수도 있다.
특히 VR기기인 ‘데이드림 뷰’와 인공지능 비서인 ‘구글 홈’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지금 당장은 스마트폰 시장이 가장 뜨겁다. 하지만 시장의 무게중심은 점차 인공지능이나 VR 같은 다른 영역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특히 중요한 곳이 바로 인공지능이다. 구글은 지난 3월 알파고로 인공지능 실력을 과시한 바 있다. 이번에 출시한 픽셀 폰도 인공지능과 무관하지 않다. 하드웨어 수장인 릭 오스털로는 "픽셀폰은 구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AI 기술의 접점에 있는 제품"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이 시장에서 구글의 주요 경쟁 상대는 애플과 아마존이다. 그런데 두 회사는 모두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자신만의 탄탄한 생태계를 갖고 있다.
반면 구글은 상대적으로 하드웨어 쪽이 취약했다. AI 비서 쪽에선 아마존 에코가 한 발 앞서 있다. 스마트홈과 VR의 허브 역할을 할 단말기와 플랫폼의 결합 쪽에선 애플이 강세를 보인다. 구글로서도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가 됐단 얘기다.
선다 피차이 CEO가 이날 행사 때 "모바일 퍼스트를 지나 AI 퍼스트 시대로 가고 있다"고 선언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새겨 들어야 할 말이다.
이 대목에서 구글의 또 다른 전략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바로 ‘안드로메다’ 프로젝트다. 안드로이드와 크롬OS를 통합한다는 전략. 아직은 루머 수준이긴 하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다.
이런 모든 전략의 중심은 스마트폰이다. 차세대 격전지가 될 VR과 스마트홈의 관문이 될 수도 있단 얘기다.
무슨 얘기인가? 구글의 야심은 단순히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과 정면 승부하는 차원이 아니란 얘기다. ‘스마트폰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손에 쥘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많단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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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된 느낌의 애플과 달리 구글은 자유로운 정신이 강하다. 적어도 겉으로 풍기는 이미지는 그렇다. 알파벳이란 우산 속에서 여러 가지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가동하는 것도 구글스러운 행보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전략 역시 변화 가능성은 적지 않다. IT 전문 매체 아스테크니카가 진단한 것처럼 “새로운 하드웨어 전략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를 경우엔 전략을 바로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