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사가 협상 테이블에 모여 다시 한 번 잠정합의안 도출을 시도했으나 끝내 이견을 좁히는 데 실패했다. 노조의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현대차는 물론 협력업체들의 피해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정부는 '긴급조정권'의 발동을 검토하고 나섰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는 현대차 노조의 파업이 이달 말까지 이어질 경우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는 13억달러(약 1조4천400억원)의 수출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추정했다.
현대차 노사는 28일 오후 3시 울산공장 본관 아반떼룸에서 제 27차 임금교섭을 열었으나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채 1시간 30여분 만에 교섭장을 빠져나갔다.
당초 노사가 이날 2차 잠정합의안 도출에 성공할 경우, 오는 30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극적 타결의 가능성까지 점쳐졌다. 하지만 또 다시 합의에 실패하면서 교착상태에 빠져들게 됐다. 만약 잠정안 도출 실패에 대한 책임 공방으로 노조 내부의 갈등이 심화될 경우 박유기 지부장이 이끄는 현 집행부가 중도 사퇴하게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 경우 연말까지도 협상이 끝나지 않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날 교섭에서 사측은 추가 제시안을 내놓기 힘들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사측은 전날 교섭에서 기존 안보다 2천원 오른 기본급 7만원 인상을 비롯해 주간 연속 2교대 관련 10만 포인트를 지급하겠다고 제시했지만 노조 측이 이를 부족하다고 판단, 거부했다.
노사는 앞서 지난달 24일 ▲임금 6만8천원 인상(기본급 5만8천원 인상 및 개인연금 1만원) ▲성과급 및 격려금 350% + 330만원 ▲재래시장 상품권 20만원 ▲주식 10주 지급 ▲임금피크제 확대 요구안 철회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은 1차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사측은 쟁점이었던 임금피크제 확대안도 철회했다. 하지만 같은달 27일 치러진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78.05%의 반대로 부결된 바 있다.
노조는 이날도 4시간 부분파업을 진행했다. 지난 26일에는 12년 만에 전면파업을 강행해 울산과 전주, 아산공장의 생산라인이 모두 멈추기도 했다. 노조는 지난 7월 19일부터 이달 27일까지 총 21차례 파업을 진행했다. 사측은 이 기간 노조의 파업으로 인해 차량 12만1천여대의 생산 차질을 빚어 약 2조7천억원 규모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했다. 2012년 역대 최고 파업 손실액(1조7천48억원)은 이미 훌쩍 넘어섰다.
협력업체의 피해도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자금력이 약한 협력업체들의 경우 도산 우려까지 불거진다. 현대차의 1차 협력업체는 400여개다. 업계에서는 이번 파업으로 1차 협력업체의 납품 차질액만 이미 1조3천억원을 넘긴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약 5천개 이상으로 추정되는 2·3차 협력업체까지 더하면 손실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현대차 노사의 협상을 난항을 빚으며 노조의 파업이 장기화 국면에 빠져들자 정부가 개입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자동차 산업이 국내 제조업에서 고용의 12%, 생산의 13%, 수출의 14%를 차지하는 기간산업인 점을 감안하면, 국내 최대 완성차업체인 현대차 노조의 파업이 길어질 경우 경제와 고용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기권 노동부 장관은 이날 "대표적인 상위 10% 고임금에 해당하는 현대차 노조가 협력업체,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고 과도한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이어가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장관은 특히 "조속한 시일 내에 현대차 노사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파업이 지속된다면 우리 경제와 국민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긴급조정권 발동 등 법과 제도에 마련된 모든 방안을 강구해 파업이 조기에 마무리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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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정권은 노동조합의 쟁의행위가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거나 국민경제를 해칠 우려가 있을 때 발동하는 조치다. 긴급조정권이 발동되면 해당 노조는 30일간 파업 또는 쟁의행위가 금지되며, 중앙노동위원회가 조정을 개시한다.
정부는 앞서 지난 2003년 현대차 노조가 총 25차례에 걸친 파업을 벌이자 긴급조정권 발동을 검토했지만 협상이 조속히 마무리되면서 실제 발동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긴급조정권이 실제 발동된 사례는 1969년 대한조선공사 파업, 1993년 현대차 노조 파업, 2005년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파업 및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파업 등 4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