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사들이 이들과 적극적인 협업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는 어떻게 믿을 수 있냐는 것이다.
혁신적인 기술이 등장한다고 해도 고객들의 돈을 다뤄야하는 은행 입장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기술이나 서비스를 선뜻 도입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이런 와중에 제1금융권과 P2P 대출 스타트업의 협업 사례가 주목된다. 전북은행과 피플펀드가 주인공이다.
개인들로부터 투자금을 모아 이를 필요로 하는 개인들에게 대출서비스를 제공하는 P2P대출은 기본적으로 이자율이 낮지만 고신용등급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은행권 대출과 이자율이 높은 대신 저신용등급자들도 쓸 수 있는 저축은행, 대부업 대출 사이 중금리 대출 수요를 겨냥한다.
문제는 현행 법상 P2P대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이들 회사가 대부업을 하는 자회사를 갖춰야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국내 주요 P2P대출 플랫폼을 제공하는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대부업으로 등록한 자회사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조금 다른 피플펀드-전북은행표 P2P 대출
1일부터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피플펀드는 대부업 자회사를 세우는 대신 전북은행과 협업하는 길을 선택했다. 투자자와 대출자를 모집하고, 자체 개발한 알고리즘을 활용한 신용평가를 거쳐 대출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역할은 피플펀드가 맡되 나머지 신용기록을 관리하거나 투자금 정산, 연체관리 등은 전북은행이 관리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서비스가 이뤄진다.
대출을 신청한 고객은 신청정보를 입력하고 비대면 방식으로 신용보고서를 제출하면 피플펀드의 신용평가 알고리즘을 통해 40초 안에 실시간으로 대출조건을 확인할 수 있다. 대출이자는 2.99%~23.17%까지 책정된다. 제시된 조건에 고객이 동의하면 소득 증빙 자료만 제출하면 피플펀드를 통해 전북은행 대출 계약으로 연결된다. 피플펀드에서 대출을 받는 고객은 은행 지점 방문, 공인인증서 등 복잡한 절차 없이 모바일에서 손쉽게 제1금융권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은행들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가 대출이자수익이고, 안정성을 중요시 하는 은행 문화에 비춰보면 나름대로 파격적인 협업 방식이다. 두 기업은 어떤 이유로 이례적인 협업을 선택한 것일까.
■은행통합시스템, P2P대출 수익성-안정성 두 마리 토끼 잡아
피플펀드는 초기 사업을 구상하는 과정에서부터 은행과 협업하는 모델을 고민해 왔다.
기존 은행권 대출과 달리 영업점에 직접 방문해서 심사를 받아야하는 불편함을 없애면서도 투자자들로부터 모은 자금을 담보로 은행이 대출을 집행하는 방식을 취해 부실대출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를 구현한 것이 전북은행과 공동으로 마련한 은행통합시스템이다.
대출심사를 위해 이 회사가 개발한 신용평가알고리즘은 KCB, NICE와 같은 개인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수집한 200여개 개인 금융거래 관련 원본데이터와 함께 대출자가 별도로 제출한 소득정보, 재직정보를 반영해 대출한도와 금리를 거의 실시간으로 결정해 알려준다.
피플펀드 리스크 총괄 김진호 이사는 "대출자 입장에서는 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투자자 입장에서도 P2P대출 플랫폼이 아니라 은행에서 투자금을 관리하는 방법을 취하면서도 연평균 2.97%~15.8%에 달하는 예상 투자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투자자들과 대출자들을 모아 중개해주는 플랫폼 역할을 하되 투자금을 담보로 은행이 직접 대출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부실대출 위험성을 줄인 것이다.
■렌딩클럽 초기 개발자가 꼽은 P2P 대출 성공 조건은?
피플펀드는 초기에 사업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렌딩클럽 초기 개발자로 근무했던 엘버트 임으로부터 기술개발에서부터 관련 사업 전반에 대한 자문을 받기도 했다.
피플펀드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렌딩클럽을 나와 다른 IT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엘버트 임은 P2P대출로 성공하기 위한 조건으로 크게 2가지를 꼽았다. 첫번째는 신용평가를 잘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반드시 은행과 함께 성장해야한다는 것이다. 대출자가 돈을 갚을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는 신용평가는 P2P 대출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대출 비즈니스에서 핵심적인 역량이다.
흥미로운 점은 P2P대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존 은행들과 협업이 필요하다는 대목이다.
실제로 렌딩클럽 성공 배경에도 웹뱅크라는 작은 지방은행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금융서비스에 대한 역량이 부족했던 렌딩클럽에게 대출금을 관리해주는 역할을 해왔던 웹뱅크의 역할이 컸다. 현재 웹뱅크는 렌딩클럽을 통해 약 16조원에 달하는 대출자금을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에 없던 아이디어를 금융서비스에 접목시키려는 핀테크 스타트업들에게 그동안 금융사가 안정적으로 고객들의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활용해 온 노하우를 활용하는 것은 그만큼 안정적인 서비스 운영을 가능케 한다.
피플펀드 입장에서 보다 현실적인 이유는 투자금이 대출자들에게 송금되고 다시 회수하는 과정에서 드는 송금 수수료 부담때문이다. P2P대출이 기본적으로 큰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건당 부과 되는 수수료가 만만치 않다. 현재 이러한 수수료는 전북은행이 자체적으로 부담하는 중이다.
■전북은행, 새로운 서비스로 젊은 고객 모시기
전북은행은 왜 P2P대출 서비스를 끌어 안기로 했을까? 이 은행의 지주회사인 JB금융그룹은 전라도 지역을 기반으로 한 자사 금융서비스들을 수도권으로까지 확대하고 싶어하는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 지역에 주요 기업들이 거의 없는 탓에 기업이 아니라 개인들을 대상으로 수익을 내야하지만 이제는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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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여의도 등 서울 주요 지역에 전북은행이 자리잡고 있는 것도 새로운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행보다. 피플펀드와 협업을 통해 JB금융그룹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P2P대출 서비스 사용 고객이 늘어날수록 자사 계좌를 유치할 기회도 늘어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김대윤 피플펀드 대표는 "금융당국과 은행과 1년 간 준비 끝에 개인과 개인을 연결하는 P2P의 장점과 제1금융권의 안정성이 더해져 대출고객과 투자고객 모두에게 제도권 금융 수준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며 "피플펀드와 전북은행이 공동 개발한 은행통합시스템을 활용해 모든 과정을 자동화해 불필요한 경비 지출을 최소화하면서 금융과 기술을 융합한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