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구글, 넷플릭스와 같은 기업들의 성공비결로 알려진 '롱테일 법칙'은 디지털 금융 분야에서 적용 가능할까?
그렇다는 주장이 많다. 금융사들도 소수의 우량 고객들만 잡으면 됐던 과거 시절과는 달리 80%에 달하는 사소한 다수의 고객들로부터 적지만 꾸준한 수익을 올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10일 은행연합회가 서울 역삼동 소재 은행권청년창업재단에서 주최한 핀테크 기업 및 은행 간 교류증진 간담회에서 주제 발표를 맡은 김종현 아주대 교수는 "수요가 많은 제품에 집중하던 오프라인 기업들이 온라인 기업들로 대체되고 있는 시점에서 금융권도 혁신하지 않으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국내 은행들의 경우 인터넷/모바일뱅킹 서비스를 내놓았지만 80% 사소한 다수 고객들을 사로잡을만한 금융서비스들이 나오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혁신이 필요하지만 덩치가 큰 금융사들과 혁신 기술을 가졌지만 영업력이 부족한 핀테크 기업들 사이 협업은 롱테일 법칙이 통하는 시대에 상당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4개월 전까지 KB국민은행에서 최고보안책임자(CISO)를 맡았던 김 교수는 은행을 포함한 금융사들과 핀테크 기업 간 협업이 어려운 이유를 크게 3가지로 꼽았다.
먼저 금융사 입장에서 핀테크를 새로운 기회라기보다는 경쟁관계에 있는 하나의 리스크로 본다는 것이다. 그는 금융사와 핀테크 기업 간 협업이 금융사 입장에서는 기존에 자신들이 해오던 서비스를 빼앗기는 제 살 깎아먹기(cannibalization)나 다름없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두번째는 보안에 대한 신뢰성 문제다. 금융서비스 특성 상 안전성을 보장하는 것은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하는 사항이다. 금융사 입장에서는 보안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핀테크 서비스와 제휴하기는 어렵다고 여기는 탓이다.
마지막으로는 여러 조건이 맞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기술 자체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금융업의 특성 때문이다.
김 교수는 핀테크 기업이 금융사가 기존에 제공해 왔던 서비스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쟁관계로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또 다른 핀테크 기업과 협업을 통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
예를들어 해외송금 전문 핀테크 기업으로 이름을 날렸던 트랜스퍼와이즈와 피도르 은행은 경쟁관계이지만 이 은행이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기술 전문회사인 리플과 협업해 또 다른 해외송금서비스를 고안해 낸 것을 보면 그렇다.
전통 금융사들과 핀테크 기업들이 협업할 수 있는 포인트는 핀테크 기업이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좋은 아이디어를 판매할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어 제공하면 금융사가 이를 채용해 대대적인 마케팅, 영업을 통해 기술을 제공하면서 추가 수익을 얻는 방식이다.
김 교수는 "기존 금융사들이 이미 스마트 금융이라는 이름으로 저마다 온라인 채널을 갖고 검증된 기술을 제공해 온 만큼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스마트폰 이어폰잭 부분에 꽂아 쓸 수 있는 결제단말기를 제공해 왔던 스퀘어는 해외 주요 은행들과 제휴를 맺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이다. 골드만삭스는 전 세계 120여개 핀테크 기업들과 생태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김 교수는 금융사와 핀테크 기업들 간 협업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금융과 기술을 두루 아는 사이 제3의 금융전문가 조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과거 정맥인식 센서 기술을 확보하고 있었던 핀테크 회사가 기술이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인식을 위해 필요한 센서가 너무 큰 탓에 스마트폰과 같은 단말기에 도입하기 힘들었다는 사례를 예로 들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실제로 상품화해서 고객들에게 판매할 수 있는 정도로까지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이날 주요 은행에서 스마트금융 혹은 핀테크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 실무자들은 어느 때보다도 새로운 핀테크 서비스를 내놓기 놓은 여건이 마련되고 있지만 고객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만들어줬으면 한다는 당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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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은행 권준석 디지털뱅킹부 부장은 "신한퓨처스랩 등을 진행하면서 여러 핀테크 기업들을 만나보면 우리 기술이 최고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며 "정확한 니즈를 파악해서 서비스를 제공해줘야하는데 아직은 그런 부분이 약한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과거처럼 금융사가 우월적인 지위를 남용하는 부분도 없어진 만큼 금융사나 고객이 언하는 기술/서비스라면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부산은행 스마트사업부 장명수 부장도 "많은 핀테크 스타트업들과 미팅하다보면 좋은 소재나 아이디어라고 하더라도 우리 은행을 이용하는 고객에게 유용하고 쓸모 있는 것이어야 한다"며 "은행 관점에서 생각해 줄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