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본사가 위치한 수원디지털시티에 센트럴파크가 생겼다. 시내 한복판에서 시민들의 일상 속 휴식처 역할을 하는 뉴욕 센트럴파크처럼 임직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재충전을 하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공간이다.
센트럴파크는 31개월 간의 공사를 거쳐 지난 2일 삼성전자의 핵심 연구개발(R&D) 기지인 수원디지털시티에 문을 열었다. 연면적 3만7천259평 규모로 지상공원과 지하5층으로 구성됐다. 지하 1층 광장은 편의시설로 채워졌으며 지하2~5층은 2천400대를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으로 활용된다.
센트럴파크가 지어진 부지는 삼성전자 최초의 R&D 건물인 R1과 R2가 있던 자리다. R1은 1980년 사업부별로 산재돼있던 연구개발 부서를 통합해 사용할 연구소로 설립됐다. R2는 1987년 설립된 DMC(디지털미디어&커뮤니케이션)연구소가 있던 건물이다.
이후 2001년 정보통신연구소(R3), 2005년 디지털연구소(R4), 2013년 모바일연구소(R5)가 잇달아 문을 열었고 R1과 R2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삼성인들의 휴식공간 역할을 할 지하 1층에는 은행, 카페, 모바일샵, 마트, 택배 등 편의시설과 R1와 R2의 역사를 담은 히스토리존을 비롯해 커뮤니케이션존, C랩(C-Lab)존, 휘트니스센터, 동호회 시설이 들어찼다.
센트럴파크를 방문한 3일 오후에는 강풍을 동반한 비가 내렸지만 모든 건물이 지하 통로로 연결돼 비를 맞지 않고 건물 간 이동이 가능했다. 또 지하시설이지만 자연채광을 위한 선큰(Sunken)이 설치돼 트인 느낌을 준다.
삼성전자 직원이라면 월 3만원에 이용할 수 있는 휘트니스 시설은 5300명이 사용 가능한 규모로 암벽등반, GX, 스쿼시를 위한 시설과 각종 헬스기구를 갖췄다. 특히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자율출퇴근제를 확대 시행하고 있어 다른 회사들이라면 한창 업무집중시간일 오전 10~11시에 휘트니스센터에서 운동을 한다고 해도 전혀 눈치가 보이지 않는다.
센트럴파크 내에 가장 의미가 큰 시설 중 하나인 C랩존에도 직원들이 차례로 입주를 시작했다. C랩은 삼성전자가 창의적 조직문화를 확산하고, 임직원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굴해 구현하기 위해 2012년 도입한 사내 벤처 육성 프로그램이다.
지난해까지 C랩 소속 직원들은 수원사업장 VIP센터 등 사업장 내 가용공간에서 분산 근무했지만 지난해 12월 서초구 우면동에 만들어진 서울 R&D 캠퍼스에 첫 전용 공간이 생긴 이후 수원 디지털시티에도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됐다.
C랩 존은 데모데이, 워크샵, 교육, 세미나, 토론 등이 이뤄지는 '스퀘어(Square)', 아이디어 구현과 시제품 제작을 위해 3D프린터, 레이저커터, 인두 작업대 등을 갖춘 '팩토리(Factory)', 소규모 협업과 토론과 휴게공간을 갖춘 '라운지(Lounge)', C랩 혁신활동을 공유하는 상설 전시공간인 '갤러리(Gallery)'로 구성됐다.
C랩을 통해 현재까지 119개 과제가 발굴됐다. 특히 위에서 부터 내려오는 '탑다운(Topdown)' 방식이 아니라 임직원 아이디어 공모를 통한 '바텀업(bottom up)' 방식으로 개발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단순히 과제에서 그치지 않고 사업화 추진을 위한 후속 과제로 연계된다는 점도 특징이다. 현재 42건의 과제가 사업부로 이관됐고 별도 법인으로 스핀오프(분사)된 기업도 적지 않다. 지난해 9개 과제가 스핀오프해 법인설립을 완료했고 올해 5개건이 추가 스핀오프 예정이다. 올해 초 CES 신개념 통화기기를 소개한 이놈들연구소, MWC에서 자세 교정용 스마트 슈즈를 선보인 솔티드벤처 등이 대표적이다.
이날 수원디지털시티에서 만난 김현석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 사업부장 사장은 "최근 입사 후 5년 이하인 젊은 사원들의 생각을 많이 끌어올리기 위해 많은 기회를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중견 임원들이야 창의성 있게 일하는 방법을 모르지만 젊은 친구들은 기회가 주어지면 굉장히 쉽게 일하는 방법을 바꿔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미 성과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TV 사업을 담당하는 VD사업부만 예로 들더라도 삼성전자가 지난해 TV에 적용된 채널형 VOD 서비스 'TV 플러스' 역시 C랩 과제를 통해 처음 나온 아이디어다. TV플러스는 별도의 가입이나 앱 설치 없이 인터넷 연결만으로 인기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등을 24시간 시청할 수 있는 서비스로 지난해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시작했다.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가구 디자이너 부훌렉 형제와 함께 협업한 '세리프TV' 프로젝트를 총괄한 것도 당시 과장급 사원이었다. 외신들이 호평한 '에덴 UI'도 아이디어를 낸 것은 임원들이지만 실제 개발 과정을 이끌어간 것은 부장 이하 사원들이었다.
센트럴파크는 삼성전자에도 여러 의미가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각 사업부장과 임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스타트업 삼성 컬쳐혁신 선포식'을 가졌다. 임직원들의 의식과 일하는 문화를 스타트업처럼 바꿔 지속적인 혁신을 도모하자는 의미에서다. 수평적 조직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직급체계를 단순화하고 비효율적인 회의와 보고문화를 개선해 업무 생산성도 제고하기로 했다.
관련기사
- 삼성전자, 스타트업 DNA로 재무장한다2016.05.04
- 삼성전자, 사내 벤처 ‘C랩’ 우수과제 CES 첫 선2016.05.04
- 삼성 대구창조경제센터, C랩 3기 스타트업 모집2016.05.04
- 삼성, C-Lab 우수과제 선정 스타트업 창업 지원2016.05.04
또 지난해 R&D와 디자인 인력 5천여명이 우면동 서울 R&D 캠퍼스로 이동하고 지난 3월 말 서초사옥에 남아있던 삼성전자의 남은 인력도 모두 수원 디지털시티 본사로 옮겨가면서 지난 2008년부터 약 8년간 이어온 '강남시대'가 마감되고 수원 사업장은 확실한 본사 역할을 하게 됐다. 1973년부터 줄곧 본사는 수원이었지만 경영지원인력이 서초사옥에 근무하고 매주 수요일 사장단회의가 열리는 서초사옥이 본사처럼 여겨지기도 했던 터다.
김현석 사장은 "(삼성전자 실적이)제일 좋지 않던 시절에 공사를 시작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턴어라운드가 되는 시기에 센트럴파크를 오픈하게 되어서 직원들이 굉장히 좋아하고 있다"면서 "복리를 위해서 신경 많이 써서 만든 만큼 사원들이 창의력과 열정을 갖는 장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