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되면 ‘데자뷰’란 말이 절로 나온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당대 최고 운영체제(OS) 보유업체들의 ‘다른 듯 같은 행보’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 지 관심이 쏠리고 잇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가 20일(현지 시각) 구글의 반독점 혐의가 인정된다고 공식 발표했다. 지난 해 4월 정식 조사를 시작한 지 꼬박 1년 만이다.
물론 이번 조사가 최종적인 것은 아니다. EC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한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연합(EU) 최고 규제 기관이 저 정도 발표를 했을 땐 반독점 규제는 불가피하다고 봐야 한다.
자연스럽게 2000년대 초반 10년 동안 EC와 줄다리기를 했던 MS가 오버랩된다. 각각 PC와 모바일 시대 대표 플랫폼 보유업체인 둘은 비슷한 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 조사당시 윈도 점유율 95%…구글, 유럽 검색-모바일OS 90% 독식
EU가 처음 MS를 조사한 것은 1999년이었다. 당시 MS는 세계 PC OS시장의 95%를 독식하던 업체. MS가 시장 독점 상품인 윈도를 남용해 자사 다른 제품을 끼워팔기했는지가 핵심 쟁점이었다.
이 조사는 4년만인 2003년 8월 결론에 이르렀다. '미디어플레이어 끼워팔기’ 혐의가 있다는 판정이 나온 것. 그리고 법정 공방 끝에 이듬해인 2004년 10월에는 4억9천720만 유로란 천문학적인 벌금이 부과됐다.
EC의 공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8년 5월에는 오피스2007 서비스팩2가 오픈도큐먼트포맷(ODF)을 지원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듬해인 2009년 1월에는 윈도OS의 독점 지위를 남용해 익스플로러 브라우저 끼워팔기를 한 혐의가 있다고 선언했다. EU는 2013년 3월 MS에 5억6천100만 유로 벌금을 또 부과했다.
그렇다면 구글은 어떨까? EC의 심사보고서(Statement of Objections)를 중심으로 한번 살펴보자.
EC는 구글이 인터넷 검색 서비스, 스마트폰 운영체제, 안드로이드용 앱스토어 등 세 개을 지배하고 있다고 간주했다.
구체적인 수치도 제시했다. 일단 유럽 시장에서 안드로이드 점유율은 80%를 넘는다. EU 회원국 대부분 지역에서 검색 점유율 90%를 넘어섰다. 안드로이드용 앱 스토어 점유율도 90%를 웃돈다. EC는 “안드로이드는 대다수 고객들이 구입하는 저가 스마트폰과 태블릿 거의 전부에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구글은 자신들의 지위를 보호하기 위한 많은 장벽들을 구축하고 있다. 여기엔 “안드로이드를 쓰는 사람이 많은 수록 관련 앱 개발자도 증가하는” 네트워크 효과까지 작용한다고 EC는 지적했다.
그런가하면 안드로이드를 쓰다가 다른 운영체제로 바꿀 경우 적잖은 전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EC는 앱이나 단말기에 저장된 데이터, 연락처 등을 잃게 되는 등의 사례를 꼽았다.
구글 플레이 역시 EU 역내 안드로이드 앱 다운로드 건수의 90%를 웃돈다. 따라서 단말기 제조업체 입장에선 구글 플레이 스토어를 사전 탑재하는 것이 상업적 성공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다. 그러다보니 EU 이용자들은 플레이 스토어 이외 다른 앱스토어는 내려받을 수 없게 돼 있다.
안드로이드 이용자들이 다른 운영체제용 앱스토어로 전환하지 않는 건 이런 상황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새로운 단말기를 구입해야 할 뿐 아니라 적지 않은 전환 비용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설명을 한 EC는 구글에 크게 세 가지 혐의를 제기했다. 즉 구글 검색과 크롬 브라우저 사전 탑재 요구, 경쟁 운영체제 구동 금지, 구글 검색 사전 탑재 때 인센티브 제공 등이 바로 그 혐의들이다.
■ "MS와 달리 구글은 경쟁말살 의도 약해" 반론도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MS 때와 굉장히 유사하다. MS가 윈도를 무기로 다른 응용 프로그램을 끼워 판 것이 문제가 됐던 것처럼 구글 역시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무기로 검색과 브라우저 같은 서비스나 응용 프로그램을 기본 탑재하도록 했다.
하지만 구글 텃밭인 미국 쪽에서는 다른 주장들도 나오고 있다.
미국 연방무역위원회(FTC)에서 정책 책임자로 일했던 데이비드 발토는 지난 해 4월 씨넷과 인터뷰에서 “구글과 MS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MS의 끼워팔기는 새로운 경쟁을 말살하려는 의도가 있었지만 구글은 소비자들을 이롭게 하는 측면도 있다는 게 발토 주장의 골자였다.
안드로이드란 존재 자체가 시장에서 스마트폰 가격을 낮추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한 측면이 있다는 것. 그런 논리를 토대로 그는 EC가 반독점 혐의를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달라진 기술 상황 역시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10년 전 브라우저 전쟁 때는 익스플로러 외에 다른 제품을 다운받는 게 쉽지 않았다. 소비자들에겐 굉장히 성가신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경쟁 앱을 다운받는 게 훨씬 자연스럽다. 이를테면 구글 검색이 깔려 있더라도 경쟁 앱들을 또 다운받는 게 예전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란 얘기다.
1년 전 처음 조사가 시작될 당시 이런 점을 들어 ‘혐의 입증’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EC는 과감하게 구글에 ‘반독점 행위’를 한 기업이란 주홍글씨를 씌웠다.
소비자 편의성 같은 외적 요인보다 ‘선택권 제한’이란 독점금지법 본연의 원리에 더 무게를 실은 결정인 셈이다.
■ MS 기세 꺾은 건 기술 변화…구글은?
10년 전 MS는 유럽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MS의 위세를 꺾은 결정적 요인은 EU의 제재가 아니었다. 그 무렵부터 불기 시작한 모바일 바람이 PC 제왕의 텃밭을 갈아 엎어버린 것이 결정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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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역시 그 부분이 더 두려울 수도 있다. EC와 만신창이가 되도록 싸우는 사이에 기술 환경 변화로 안드로이드의 위세가 확 꺾여버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과연 구글은 MS의 전철을 밟을까? 아니면 ‘제3의 길’을 찾아낼까? 막 시작된 EC의 반독점 조사가 10년 시차를 둔 두 기업에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안겨줄 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