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 한국판 '잊혀질 권리' 급제동…왜?

“본인확인, 역차별 문제 '걸림돌'”

방송/통신입력 :2016/04/12 13:24    수정: 2016/04/12 17:59

방송통신위원회가 통제권이 상실된 본인의 인터넷 게시물을 차단할 수 있도록 한 한국판 ‘잊혀질 권리’ 가이드라인을 수정, 보완하기로 했지만, 업체들의 반발로 난항이 예상된다.

게시물을 올린이와 검색 차단 신청자가 동일인물인지를 판단하는 세부 기준안을 내놓아야 하는데, 사업자들이 동의할만한 해법을 제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구글, 페이스북 등 해외 사업자와 국내 사업자와의 역차별 문제도 큰 걸림돌이다.

방통위는 수정안을 통해 본인 입증 방법을 구체화 한다는 입장이나, 사업자들은 여전히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해외 사업자의 가이드라인 시행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역차별 문제가 불거질 전망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11일 열린 제19차 전체회의에서 ‘인터넷 자기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 가이드라인’ 제정안을 보고했지만 수정 보완 결정이 내려졌다. 이날 자리는 관련 부서가 최종 가이드라인을 확정하기 앞서 전체회의에 참여하는 방통위 상임위원들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마련됐다.

■“본인 확인 어려운 문제 보완해야”

방통위 김석진 상임위원

방통위 상임위원들은 최근 업계와 여러 언론 등을 통해 제기된 여러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개인정보보호윤리과가 보고한 가이드라인에 우려를 나타냈다.

김석진 상임위원은 해당 사안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크고, 치열한 공방이 있는데다 검색 서비스 사업자들한테 너무 많은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상임위원은 “사업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부담을 지울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기준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겠냐”면서 “회원을 탈퇴해 오래 사용하지 않은 계정의 경우 본인 확인이 어려워 삭제 요청을 받아줄 수 없게 된다.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자기 게시물 확인 방식을 더 연구하라”며 “해외 사업자에 대한 통제력이 약해 국내 사업자가 역차별 받는 문제도 고려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재홍 부위원장은 본인이 쓴 글이라도 마음대로 차단하는 것을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게시물을 삭제할 경우 댓글도 함께 지워지는 부분도 좀 더 논의해봐야 한다는 견해를 내놨다.

김 부위원장은 “이미 공론의 장소로 나온 게시물이라면 완전한 개인의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것 아니겠냐”면서 “댓글도 마찬가지로 공론화 되면서 사회적 공유물이 된 것인데, 원래 글을 쓴 사람의 생각에 따라 사회적 공론이 일시에 없어진다고 하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구글, 페북 등 해외 사업자 참여 불투명

박노익 방통위 이용자정책국장

박노익 방통위 이용자정책국장은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해외 사업자들도 자기 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 가이드라인에 참여하는 데 동의했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11일 전체회의에서도 “외국 사업자가 거부할 경우 제재할 수 있냐”는 김석진 상임위원의 질문에 박 국장은 “계속 협의해 왔고, 특별히 안 하겠다고 한 곳은 없다”면서 “글로벌 사업자들도 한다고 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날 밤 방통위는 해명성 보도자료를 내고 “(글로벌 사업자들도 한다고 한 발언은)해외 인터넷기업들이 협의에 동참하고 있다는 의미”라면서 “해외 인터넷 기업들에게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면 이를 준수하겠다는 확약을 받은 것은 아니다”는 말로 사실상 기존 입장을 번복했다.

즉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트위터 등 국내에서 정식으로 서비스 하는 해외 사업자들이 이번 가이드라인을 준수할지 아직 불투명하다는 뜻이다. 결국 강제성이 없는 가이드라인조차 국내 사업자만 따르고, 해외 사업자들은 서버가 해외에 있다는 이유 등으로 무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 관측이다.

자기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 절차 개요

개인정보보호윤리과 최윤정 과장은 “해외 사업자들도 가이드라인 제정에 동참해 논의하고 있지만 아직 본사로부터 확답을 받지 않아 반드시 준수하겠다는 입장을 전달 받지는 못했다 ”면서 “이번 가이드라인은 법이 아닌 자율준수 형태로, 해외 사업자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또 “본인을 입증하는 방식과 방법에 대해 이미 사업자들과 충분히 공감대를 이뤘고, 5월 말 시행을 생각하고 있다”며 “별도의 토론회나 세미나 없이 내부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수정, 보완해 위원회 보고를 한 차례 더 진행한 뒤 5월 말이나 6월 중 시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본인 입증 방식에 있어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많다 보니 해주고 싶어도 못해주는 경우가 많을 것이고 법적 분쟁의 소지가 있다”며 “구글, 페북 등 해외 사업자는 정보통신망법에 있는 임시조치도 본사 핑계로 제 때 따르지 않는데, 이번 가이드라인을 따를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또 “정부는 강제성이 없는 자율적인 가이드라인이라고 말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고 법제화를 추진할 예정이기 때문에 쉽게 여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면서 “유럽은 잊혀질 권리에 대한 결정을 사법 재판소가 하는데 한국은 행정기관인 방통위가 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사업자들에게 전가하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한국판 ‘잊혀질 권리’란?

유럽 최고 재판소인 유럽사법재판소. (사진=씨넷)

방통위가 만든 한국식 잊혀질 권리인 자기 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 가이드라인은 회원탈퇴 등으로 통제권이 상실된 본인 게시물에 한정해서만 검색 차단할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다. 또 사자(死者)의 게시물일 경우 미리 권한을 위임 받은 자가 검색 차단을 요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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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촉발된 잊혀질 권리는 제3자의 게시물을 검색 차단시키는 것이 목적이지만, 국내에서는 이미 정보통신망법이나 저작권법, 언론중재법 등으로 해결이 가능해 그 범위가 ‘본인이 올린 글’로 축소됐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고인으로부터 생전에 권한을 위임 받은 지정인도 검색 사업자에 접근배제 요청을 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은 세계 최초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