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무심(無心)과 이세돌 유심(有心)

[이균성 칼럼]AI 위력이 던지는 메세지

인터넷입력 :2016/03/09 18:26    수정: 2016/03/09 18:28

세계 최강 바둑 프로기사 이세돌 9단과 세계 최고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의 대결에서 예상을 깨고 알파고가 승리하자 바둑계와 우리 사회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이를 두고 갖가지 해설과 분석 그리고 인공지능에 대한 다양한 전망들이 나오게 생겼다. 그중에서도 인간이 기계에 지배당하는 암울한 미래사회를 걱정하는 목소리들도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이게 바둑만의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먼저 바둑 이야기부터 하자. 당초 승부를 예측하기 어려웠던 첫 대국에서 이 9단이 불계패를 한 결정적인 이유 가운데 나는 ‘유심(有心)과 무심(無心)의 차이’를 첫 손가락으로 꼽고 싶다. 구글 측이 이야기한 대로 알파고는 마음이 없다. 불안하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형세에 따라 흔들린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유심이 무심을 이길 확률은 매우 낮은 것이다.

패배 이유를 하나 더 꼽으라면 ‘계산능력의 월등한 차이’다. 대국 중반 이 9단이 우세한 상황에서 막판 끝내기를 앞두고 뒤집힌 까닭이 그게 아닐까 싶다. 중반에 알파고가 두세 번 실수할 때 이 9단 스스로나 관전하는 대부분의 프로기사나 이 9단의 승리를 점쳤다. 이 9단의 형세가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건 다만 형세였을 뿐이다. 집 수는 달랐다. 알파고는 그걸 다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 장면

바둑 전문가들과 인공지능 전문가들은 아마 그 지점을 연구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인간의 바둑과 달리 알파고의 바둑은 첫 수부터 집계산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인간은 대국의 형세가 어느 정도 완성되고 난 뒤에 집계산에 들어가지만 알파고는 첫 수부터 계산해내는 능력이 있는 지도 모르겠다는 뜻이다. 만약 그러하다면 알파고는 대결을 하는 게 아니라 ‘승리를 관리하는 셈’이다.

정리하면, 고도의 컴퓨팅 능력으로 무장한 알고리즘의 계산 능력이 인간의 직관을 무참하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살맛이 안 난다”는 관전평을 내놓는 이가 적잖은 것도 그런 이유다. 이 대결이 그리고 그 승부 결과가 주목 받는 까닭 또한 거기에 있다. 이게 단순한 바둑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과 기술 그리고 사회 구조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결정적인 화두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화두의 초점은 결국 인공지능의 순기능과 역기능 논란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순기능은 인공지능이 인류 문명의 수준을 한 차원 높게 끌어올릴 것이라는 점이다. 역기능은 ‘노동에 대한 인간의 소외’ 그리고 ‘부와 권력의 편중 심화’ 등이 떠오른다. 순기능은 이야기할 것도 없다. 그것이 인간을 이롭게 한다면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하지만 역기능은 간단치 않다. 큰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에 대한 인간의 소외’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면 참혹한 상황을 불러올 것이다. 이는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도 심각하게 논의된 주제다. 인공지능 등의 기술을 기반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이 불러올 세계적 실업문제 말이다. 사실 말이지 수많은 알파고가 등장할 때 은행 증권 등 금융 분야를 비롯해 다양한 정신노동 분야에서 인간이 필요할 까닭이 뭐 있겠는가. 그럴 날이 성큼성큼 오고 있다.

이런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면 ‘부와 권력의 편중 심화’는 저절로 뒤따르는 결과다. 이는 나라 사이의 세계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각 나라에서도 소속 집단 사이의 국가적 문제이기도 하다. 어쩌면 지금 세계 경제는 그 초입에 들어가 있는 지도 모른다. 과학기술은 발전해 생산성은 고도로 높아졌는데 개인의 노동시간은 되레 길어지면서도 소비 능력은 떨어져 경기가 극히 침체된 이유가 그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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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아는 뻔한 분석이고 전망이지만 우리 사회 그 어디에서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아주 뻔하다. 뒤처진 기술을 하루속히 따라잡자는 이야기가 먼저일 수도 있다. 그러기 때문에 미래부 장관이 대국 현장에까지 갔을 것이고 인공지능 기술 발전대책도 내놨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이 화두는 단지 IT 등 기술집단만 고민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알파고의 승리 후 구글의 하사미스는 "우린 달에 착륙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 달이 인류를 이롭게 하기만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