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요 IT 기업들이 애플과 특허 소송 중인 삼성을 응원하고 나섰다.
구글, 페이스북을 비롯한 주요 IT기업들이 미국 대법원에 삼성의 상고 신청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는 법정조언자(friend-of-the-court)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들 외에도 이베이, 휴렛패커드 엔터프라이즈(HPE), HP, 델, 비지오, 페가시스템즈 등이 법정 조언자 의견서에 서명을 했다.
법정조언자란 사건 당사자는 아니지만 해당 사건에 이해관계가 있는 개인이나 친구를 의미하는 용어다. 이들은 대법원 상고 허가 여부에 대해 지지 혹은 반대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사실상 삼성과 애플 간 특허 소송에서 삼성 편을 들고 나선 셈이다.
■ 1차 특허소송 상고 때 삼성 지원 의견 제출
이들 중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만든 구글은 삼성과 보조를 함께 할 수밖에 없다. iOS를 앞세운 애플과의 경쟁에서 공동 보조를 맞추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기업들은 직접적인 이해 관계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왜 애플이 아닌 삼성 편을 들고 나섰을까? 애플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IT 기업들에게 직접 피해가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구글, 페이스북 등이 삼성에 우호적인 의견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들은 지난 해 5월 끝난 삼성과 애플간 1차 소송 항소심 직후 “삼성 측에 애플 디자인 특허권을 침해한 일부 제품의 이익 전부를 배상하도록 명령한 것은 과하다”는 법정 조언자 의견을 제출했다.
당시 주요 IT 기업들은 “항소법원 판결을 계속 유지할 경우 혁신을 말살하고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할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번에 대법원에 제출한 법정 조언자 의견도 비슷한 취지다. 이들은 “미국이 특허법을 수정하지 않을 경우 소비자 선택권이 줄어들 뿐 아니라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법정 조언자 의견을 통해 삼성에 대법원에 제출한 상고 신청서를 받아들일 것을 촉구했다.
구글 등의 법정조언자 의견은 삼성과 애플 간 1차 특허 소송과 관련된 것이다. 지난 2012년 본격 시작된 삼성, 애플 간 1차 특허 소송은 지난 해 5월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1심 당시 9억 3천만 달러였던 삼성의 배상금 액수는 항소심에서 5억4천800만 달러로 줄어들었다. 삼성은 지난 해 12월 애플에 배상금을 지급한 뒤 곧바로 대법원에 상고 신청을 했다.
현재 상황으론 대법원은 오는 6월까지 삼성의 상고 신청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결정할 전망이다.
■ 미국 특허법 171조와 289조가 쟁점
삼성은 실용특허 부분을 뺀 뒤 디자인 특허 건에 대해서만 상고했다. 쟁점 특허권은 검은 사각형에 둥근 모서리를 규정한 D677 특허권을 비롯해 베젤을 덧붙인 D087, 검은 화면에 아이콘 16개를 배치한 D305 특허권 등이다.
이 특허권은 구글, 페이스북 같은 다른 IT 기업들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문제는 특허권 인정 범위와 배상액 산정 기준 등이다.
삼성이 대법원에 상고하면서 문제 삼은 부분은 과도한 디자인 특허 인정 관행과 배상액 산정 기준이다.
이 때 쟁점이 되는 조항은 미국 특허법 171조와 289조다. 171조는 디자인 특허 인정 범위를 규정한 조항이며, 289조는 배상 기준을 다루고 있다.
미국 특허법 171조는 “제조물품의 새롭고 독창적이며 장식적인 디자인(any new, original and ornamental design for an article of manufacture)”에 대해 특허권을 부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 중 문제가 되는 부분은 ‘장식적(ornamental)’이란 부분과 ‘제조물품(article of manufacture)란 문구다. 원래 미국 특허법에는 ‘유용한(useful)’ 디자인에 대해 특허권을 부여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는데, 미국 의회가 1902년 ‘장식적’이란 용어로 대체했다.
그런데 정작 어떤 것이 ‘장식적인 디자인’ 인지, 또 ‘제조물품’을 구성하는 건 무엇인지에 대해선 명확한 규정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삼성 측 주장이다.
하지만 더 문제가 되는 부분은 미국 특허법 289조가 규정하고 있는 배상액 산정 기준이다.
"디자인 특허 존속 기간 내에 권리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중간 생략) 그런 디자인 혹은 유사 디자인으로 제조된 물건을 판매한 자는 전체 이윤 상당액을 권리자에게 배상할 책임이 있다." (미국 특허법 289조)
■ "일부 디자인 특허 침해 때 전체 이익 기준은 부당"
항소법원은 디자인 특허 침해에 대한 1심 판결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특허법 289조’ 규정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삼성은 “특허법 289조는 제품 일부가 아니라 전체에 디자인 특허가 적용될 수 있는 제조물품성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선 규정하지 않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 법 자체가 21세기에는 다르게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 삼성 주장의 골자다. 구글, 페이스북, 이베이 등이 삼성에 우호적인 법정조언자 의견에 서명한 것도 이런 부분 때문이다.
스마트폰이나 스마트TV처럼 수 천 개 부품이 들어가는 제품이 연루된 소송에서 한 두 개 특허 침해를 이유로 전체 이익을 환수하는 건 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구글 등은 “항소법원 판결이 그대로 유지될 경우 황당한 결과로 이어질 뿐 아니라 복잡한 기술과 부품에 매년 수 십 억달러를 투자하는 기업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디자인 특허를 다룬 삼성과 애플 간의 1차 특허 소송에 구글 뿐 아니라 페이스북, 이베이 같은 IT 기업들이 많은 관심을 갖는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디자인 특허를 과도하게 인정할 경우 자신들도 언제 직격탄을 맞을 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더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배상 기준이다. 미국 특허법 자체가 일부 디자인 특허 침해에 대해서도 ‘전체 이윤 상당액’을 배상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패소할 경우엔 엄청난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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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시대라면 ‘다자인’이 사실상 제품의 전체 판매와 직접 관련이 있지만 이젠 상황이 다르다. IT 제품이나 서비스는 워낙 복잡한 요소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같은 서비스 업체가 단말기 업체 간의 소송에 적극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이런 달라진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봐야 한다. 가뜩이나 특허 괴물의 공세 때문에 긴장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디자인 특허의 기본 개념과 배상 범위에 대해 재정비할 필요가 있는 판단을 하고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