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은 문학에선 쉽게 판정하기 힘든 공방이다. 물론 문장을 통째로 베낄 경우엔 바로 가려낼 수 있다. 애써 갈고 닦은 문장을 도용한 건 변명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티브 차용’에 이르게 되면 상황이 조금 복잡해진다. 공정 이용으로 인정할 수 있는 범위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문학 작품 대부분은 그리스 신화와 성경에 그 젖줄을 대고 있다. 예수가 최후의 만찬 때 사용했다는 ‘성배(holy grail)’를 찾는 모험은 영문학의 영원한 주제 중 하나다. 영화에서 이런 모티브를 구현한 대표적인 작품이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다.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나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 역시 비슷한 모티브를 갖고 있다. 특히 현대 판타지 소설 절대 다수는 ‘반지의 제왕’에서 모티브를 많이 갖고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다시 삼성과 애플의 특허 소송이 시작됐다. 이번에 개막된 건 지난 2014년 5월 1심 판결이 나온 2차 특허 소송의 항소심이다.
디자인이 핵심 쟁점이던 1차 소송과 달리 이번엔 실용 특허가 이슈다. 그러다보니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게 쉽지가 않다. 조금 애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 모티브와 표절, 그 애매한 경계선
삼성이 이번 소송에서 1억 달러를 넘는 배상 판결을 받은 건 ‘데이터 태핑’(특허번호 647)’이란 애플 특허 때문이다. 이 특허 때문에 삼성에 부과된 배상금이 9천800만 달러에 이른다. 전체 배상금의 80%를 넘는 수치다.
‘퀵링크’로도 불리는 이 특허는 스마트폰 이용자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사용하는 기능이다. 이를테면 이런 기능이다. 문자 메시지에 있는 전화번호를 그대로 누르면 곧바로 통화가 된다. 이메일 주소를 누르면 바로 메일을 보낼 수 있게 된다. 말 그대로 필요한 기능에 ’퀵링크’ 해주는 기술인 셈이다.
언뜻 보기엔 쉽게 가려낼 수 있을 것 같다. 애플이 먼저 퀵링크 기능을 구현한 뒤 삼성이 따라한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문학에 비유하자면, 애플의 문장이나 플롯을 삼성이 그대로 도용한 형국이다. 물론 애플 주장이 그렇단 얘기다.
하지만 삼성 얘긴 조금 다르다. ‘퀵링크’ 자체는 더 이상 고유한 아이디어로 독점해선 안 된다는 게 삼성 논리다. 역시 문학에 비유해보자. 퀵링크는 이를테면 ’잃어버린 성궤를 찾는’ 플롯 같은 차원이란 주장인 셈이다. 그 정도는 이젠 공동 아이디어로 풀어야 한다는 얘기다.
대신 삼성은 ‘잃어버린 성궤를 찾는 플롯’을 자기만의 이야기로 좀 더 정교하게 발전시켰다고 주장한다. 서버 단에서 ‘퀵링크’ 기능을 구현하는 애플과 달리 자신들은 애플리케이션에서 비슷한 기능을 구현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애플 특허와는 별개 기술이란 게 삼성 논리다.
두 주장을 가려내는 건 쉽지 않다. 미국 법조계에서조차 상반된 의견이 팽팽하게 맞설 정도다.
■ 치열한 특허공방, 승패 못지않게 논리에도 관심 가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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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난 삼성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이 글을 쓴 건 아니다. 난 지금 특허 공방이란 게 겉으로 드러난 모양새로만 판단하기 힘든 부분이 있단 얘길 하고 있다. 이건 문학에서 모티브나 플롯의 독점성을 어느 수준까지 인정할 것이냐는 것과 비슷한 공방이란 얘기다.
자, 글을 맺자. 거듭 얘기하지만 난 1심 판결이 삼성에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나왔단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한 동안 계속될 특허 공방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 게 좋을 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번 판결이 ‘특허 기술 무단도용 인정 범위’와 관련한 중요한 잣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